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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는 이랜드보다 도덕적인가

등록 2007-07-20 00:00 수정 2020-05-03 04:25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응하는 전혀 다른 방식, 이마트의 정규직화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선택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상파와 케이블TV 방송에서 그야말로 ‘잘나가는’ 아나운서들은 대개 프리랜서다. 중세 서양에서 어느 영주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free) 용병(lance)’을 뜻하던 프리랜서는, 오늘날에는 일정한 집단이나 회사에 전속되지 않고 자유계약 아래 일하는 사람이다. 흔한 말로 비정규직이란 얘긴데, 이들은 왜 스스로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일까?

방송사 소속인 아나운서들은 정해진 급여에 회당 몇 만원 정도의 수당을 받을 뿐이라고 한다. 일도 정해주는 대로 해야 하고, 시간 쓰는 일도 자유롭지 않다. 대중 앞에 얼굴을 내비칠 일이 적은 이들이라면 그런 보상 체계에 큰 불만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가 되면 맘이 흔들릴 만도 하다. 전문 진행자가 되면 회당 1천만원 가까운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상업광고에도 출연할 수 있다. 시청률을 의식해야 하는 긴장감과 고용 불안이 뒤따르지만, 프리랜서로서 짧더라도 굵게 사는 길을 택할 유인은 충분하다.

노동력 공급 많을수록 프리랜서 열악

아나운서들의 프리 선언은 방송 채널이 다양해져 방송사 간 고급 인력 경쟁이 불붙으면서 시작된 일이다. 예전에는 방송사 간 장벽이 있어서, 다른 방송사로 옮기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방송사도 프로그램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스타’를 골라 쓴다. 스타 아나운서들의 프리 선언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방송사들은 점차 그런 업무에 정규직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일을 꺼리게 될지도 모른다.

‘스타 시스템’이 작동하는 분야의 프리랜서들처럼 자발적으로 프리랜서를 택하는 이들은 사실 많지 않다. 대개는 장기 고용을 해주는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의 길을 걷는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정규직으로 채용해 고용을 보장하기보다는 필요한 때만 일을 맡기는 게 비용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번역·통역자, 방송작가 등 지식산업에만 프리랜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건설공사장 인부도 넓은 의미에서 프리랜서다. 계절에 따라 일감이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기에 기업들은 이들을 일용직으로 쓴다. 프리랜서들은 언제든 일감이 끊어질 수 있는, 그래서 ‘파리 목숨’이라고 자조하는 뜻에서 자신을 ‘파리랜서’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비슷한 숙련도의 노동력 공급이 많은 분야일수록 프리랜서의 처지는 열악하다.

상시 업무에도 기업이 노동자를 기간제나 일용직으로 고용해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통업체의 계산원이 바로 그런 사례다. 유통업체들은 늘 일정 수의 계산원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을 계약직으로 채용해,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곤 한다. 정규직으로 쓰면 인건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런 편법을 써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일할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기업으로선 아쉬울 게 별로 없다. 이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

7월부터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비정규직 보호법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대우하지 못하게 했다. 또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한을 2년으로 제한해, 그 이상을 사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하도록 했다. 비정규직 고용의 남발을 막자는 뜻인데, 그 효과는 양면성을 띤다. ‘2년 제한’ 조항에 따라, 기업들은 크게 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비용이 들더라도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기간제로 고용하되, 계속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노동자를 주기적으로 새로 뽑는 것은 번거로우니, 아예 용역업체에 일을 맡기는 선택도 가능하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사가 상생하는 길

법이 시행되자 정규직화와 계약 해지 및 외주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를 비롯해 여러 유통업체는 계산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랜드는 대부분을 외주화하는 쪽을 택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기간제 고용 2년 제한’ 조항은 노동자의 숙련도나 소속감을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노동자 보호 효과가 미친다. 기업들은 그런 업무에서 2년이나 일한 사람을 자르고 새로 뽑기보다는, 정규직으로 계속 고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 업무라면 굳이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고 용역업체에 일을 넘기려 할 것이다. 용역업체 직원으로 처지가 바뀌는 사람들은, 처우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최저임금의 인상이 일부 노동자에게는 해고의 계기가 되듯이, 고용을 보호하는 입법들은 이렇게 양날을 가진 칼이기 십상이다.

재계는 “기업들에 불필요한 규제를 해서 오히려 대량해고라는 부작용이 일어났다”고 비판한다. 노동계는 “보호장치가 미약해서 부작용이 생겼다”며, 기업이 비정규직을 쓸 수 있는 사유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처방은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일시적으로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기업들이 고용 자체를 기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법만으로 문제를 다 풀 수는 없다. ‘생산성 향상’을 공동의 목표로 하여, 노사가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게 중요하다. 신세계 이마트가 계산원들을 정규직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고객 서비스의 최일선에 선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임금 비용 증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세계는 이랜드보다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현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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