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7월16일 제669호
신정아는 주도권 다툼의 산물인가

예술총감독의 학력 조작 사건으로 위기맞은 광주 비엔날레의 수구적·관료적 운영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주 비엔날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1995년 광주항쟁의 문화정신을 바탕으로 창설돼 내년에 13년째를 맞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이 국제 미술축제가 심각한 존립 위기에 부닥쳤다. 내년 7회 행사의 예술총감독으로 파격적으로 선임된 신정아 동국대 조교수의 주요 학력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씨의 선임이 철회됐다. 세계 비엔날레 역사상 전례가 없는 기획자의 학력 조작 사건이다. 광주 비엔날레는 신생 비엔날레들이 무한 경쟁하는 국제 무대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재단 쪽이 업무방해죄로 형사고발을 검토하는 가운데 신씨의 밀실 선정 과정, 비엔날레 운영을 둘러싼 의혹과 난맥상은 계속 쟁점으로 부각될 조짐이다.

“10년이 지나도 기저귀 차고 있어”


△ 가짜 박사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동국대 조교수. 7월4일 광주 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 발표 때 오쿠이 엔위저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대 학장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중장기 발전 계획 용역을 발주하면서 경쟁력 확보에 부심해온 광주 비엔날레가 나락 속에 빠진 까닭은 무엇인가. 미술계와 현지 시민단체, 언론 등은 한결같이 10년이 지났는데도 비엔날레가 스스로 서지 못한 채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버둥거린다고 꼬집고 있다.

비엔날레 재단 쪽은 10년 이상의 역사를 쌓아왔지만, 예술감독 인선 파문을 통해 시스템이 여전히 부재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근본적으로 예술감독 선임이나 기구 운영 등에서 독창적인 운영 노하우가 10년이 지나도록 확립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5년 이상 경력을 쌓은 운영 전문가도 거의 내지 못했다. 사단이 된 공동예술감독제는 지난 연말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 지명도 상승을 위해 명망 있는 외국인과 국내 기획자의 공동 큐레이팅을 얼개로 제안됐던 것이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줄줄이 고사하고, 재단 쪽이 선정위원회의 기본적 권한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빛바랜 구두선으로 전락했다. 지난 3월 1차 공동감독 후보선정위에서 평론가 두 사람을 최종 후보로 골랐다가 외국어 능력을 이유로 전면 백지화한 뒤, 2차 선정위에서 9명의 후보를 다시 올려 벌어진 이후의 상황은 임기응변의 극치였다. 최고 점수를 받은 후보가 조건이 맞지 않아 배제되자 차점자를 검토해 전시감독으로 승인하는 관례를 무시하고, 한갑수 재단 이사장은 일부 이사진의 ‘강력한 추천’으로 선정위가 애초 9명을 선정할 당시 관심밖의 군소후보였던 신정아씨를 나이의 파격을 앞세우며 낙점했다.

1년도 채 안 남은 시간의 촉박함, 잇따른 변수의 발생으로 다급해진 재단 쪽은 참고할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자질 검증조차 지나쳤다. 신씨를 7월4일 선임할 당시 조계종단과 언론 등에서는 신씨의 동국대 가짜 학위 임용이 심각한 이슈로 비화돼 가짜 박사 의혹을 제기한 전 학교 이사와 대학 이사장 사이에 연일 기자회견과 지상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광주 전남문화연대, 광주 경실련 등 현지 시민단체들은 “선임 과정에서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제대로 된 검증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선출직 이사의 연임 제한도 없애 종신직화

재단 쪽은 이와 관련해 지난 연말 경희대 쪽에 연구 용역을 맡겨 비엔날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력 감축, 사무국 직원 전문성 강화 등의 대안을 모색한 바 있으나 조직 쇄신안을 본궤도에 올리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단의 행보를 취재해온 <광주일보>의 윤영기 기자는 “고급한 인력 풀로서 이사회의 전문성 강화를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실행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비엔날레의 실질적인 중추인 이사회는 거꾸로 3월15일 회의를 열어 선출직 이사들의 2년 임기를 한 차례 연임만 가능하도록 한 연임 횟수 제한 규정을 없앴다. 관료적 간섭의 뿌리가 되는 당연직 이사의 자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화권력이 될 소지가 다분한 미술계 출신 선출직 이사들의 연임 제한을 없애 종신직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현지 시민단체들은 이를 일부 이사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수구적 행보라고 비판하고 나섰고, 이런 혼란 와중에 예술감독 선정 작업은 더욱 늦춰지는 빌미를 주었다.

일부 진보진영 미술인들과 현지 문화단체 관계자들은 이같은 이사회의 수구화와 파행 운영의 책임자로 박광태 광주시장과 향토작가 황영성 조선대 교수 ·이용우 5회 총감독, 이종상 전 서울대 미대 교수 등을 지목한다. 대개 연임하거나 세 번 연임한 실세 이사들이다. 이들이 지자체와 밀착해 광주 비엔날레에서 생기는 미술판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신씨를 누가 추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씨의 선임을 둘러싸고 일어난 인선 파동도 내부의 이해관계 구도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회의 향후 운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는 기획자를 정략적으로 천거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신씨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이사진 자체에 대한 검증과 솎아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한갑수 광주 비엔날레 재단 이사장이 7월12일 신정아씨의 예술총감독 임명을 철회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강경하게 반론하고 있다. 한갑수 이사장을 비롯한 재단쪽과 광주 문화계 일부 인사들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나 음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사진의 연임 제한을 철폐한 것은 운영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사진을 특정해 공격하는 것은 비엔날레의 이권에 개입하려는 외부 세력들의 의도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우 전 감독도 “신정아씨를 추천하지 않았고, 만난적도 없다”며 “다만 9명의 후보들 가운데 상당수가 개인사정이나 비엔날레 틀과 맞지 않아 배제되면서 신씨의 선정 가능성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립과는 별개로 국내 미술계에서 광주 비엔날레를 철저히 개인적 경력관리나 입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특정 주제를 내세운 기획자가 선임되면 수하의 스태프들을 데리고 행사를 치렀다가 썰물처럼 떠나버리는 상황이 1회 이래 10년 이상 되풀이되고 있다. 감독의 명칭, 전시 주제 설정 방식, 기획자 조직 구조가 거의 매회 바뀌었다. 수차례 전시감독을 맡았던 기획자들도 전시의 노하우나 학술 성과들을 축적하고 재활용하는 데 인색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평론가 강수미씨는 지난해 6회 행사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성공적 비엔날레에 대한 욕심이 난무하지만 정작 성공한 비엔날레는 없었다”고 꼬집은 바 있다.

관료적인 지자체와 냉소적인 중앙 미술계

총체적인 시스템 개혁의 기회는 지난 2000년 3회 행사 때 있었다. 당시 예술총감독으로 지명된 최민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는 총감독이 인사 등의 운영 전권을 가지고 행사 전반을 주도하는 기획자 중심주의를 표방했으나, 지자체의 강력한 반발에 막혀 해촉되고 준비위원들도 총사퇴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중앙의 미술계 쪽은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자가 팀을 우르르 이끌고 와서 전시를 기획하고 썰물처럼 떠나버리는 상황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사무국을 틀어쥐고 예산 운용이나 인사권을 쥔 광주시 공무원들의 관료주의가 광주비엔날레를 공무원들의 중간 경유지나 쉬는 거처로 인식되게끔 했다는 것이다.

이미 광주행사의 위상과 지명도 하락은 지난 6회 행사에서 뚜렷이 감지된 바 있다. 한류의 미술계 확산을 표방했던 6회 행사는 싱가포르, 상하이 비엔날레와 패키지 행사로 공동 홍보를 진행했으나 행사의 질적 수준이나 참가 규모 등에서 가장 뒤처진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고, 국내 언론에서도 경쟁 행사인 부산 비엔날레보다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 광주전남문화연대 등 10여 개 현지 시민단체들은 한갑수 이사장 퇴진과 박광태 광주시장의 비엔날레 관여 철회를 요구하는 비엔날레 개혁연대 운동을 본격화할 방침이어서 비엔날레 개혁을 위한 진통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비엔날레는 주요 도시들의 지역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내용이 진부해지고 아트페어에 밀려 효용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는 비관론의 포화를 맞고 있다. 현재 광주 비엔날레가 보여주는 파행은 어쩌면 이런 비엔날레의 운명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미술인 ㅈ씨는 “광주 비엔날레는 지자체와 한국의 미술판이 떠안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돌덩이가 됐다”고 말했다.


미술동네의 이상한 관대함

신정아 이전에도 이원일·이용우·한젬마 등의 학력·경력·실력 논란 끊이지 않아

미술동네는 학력 부풀리기, 표절·대필의 무풍지대일까? 개인 저작이나 경력 검증에 관한 한 미술판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관대(?)한 편이었다.

‘가짜박사’파문을 일으킨 기획자 신정아씨의 경우 1997년 금호미술관에 입사한 이래 학력을 둘러싼 의혹들이 따라다녔다. 기획전시의 질이나 도록 수준을 놓고 뒷말들도 많았다. 그런 그를 감싸주고 스타 기획자로 키운 것은 사실 언론들이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 주요 중앙 일간지들은 신씨의 신참 시절부터 칼럼 지면을 주거나 인터뷰 전시 소개 기사들을 비중 있게 실었다.


△ 저서 대필 의혹을 낳았던 한젬마씨.

그는 <동아일보>에 지난 6월까지 칼럼을 썼고 <조선일보>에는 ‘추천! 이 전시’ 등에 전시를 소개하는 전문 필진이자 ‘도시와 미술’ 칼럼을 썼다. <조선일보>의 경우, 미술대전 비리를 다룬 5월17일치 기사에 “미술계가 자정하지 못하고 외부의 힘에 의해 정화할 수밖에 없게 된 점이 안타깝다”는 신씨의 소감을 실었다. <국민일보>는 2005년 가짜로 판명된 박사학위 논문 통과를 화제거리로 다룬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신씨는 또 지난해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28회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중견 미술인 ㅈ씨는 “10년 전부터 미술담당 기자들이나 언론사 간부들이 신씨를 비호하고 잘 봐달라는 부탁을 많이 해서 의아했다”며 “서울대 미대를 중퇴했다는 말도 곧잘 했는데, 왜 서울미대 교수들이 문제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신씨 말고도 의혹을 피해간 인사들은 적지않다. 국제전시 기획자로 활동 중인 이원일(신씨의 성곡미술관 전임자였다)씨의 경우 지난해 10월 상하이 비엔날레 공동 전시감독을 맡으면서 전시 서문 내용의 절반 가까이를 네덜란드 평론가의 원문을 짜깁기해 자기글처럼 실었다가 당사자 항의를 받고 비엔날레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삭제당했다. 표절 의혹이 일자 그는 “번역자가 인용한 원문 각주를 실수로 빠뜨린 것”이라고 밝혔을 뿐 구체적 해명을 하지 않은 채 외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표절 의혹은 잠잠해졌고, 이씨는 올 6월 독일에서 갤러리 현대의 후원 아래 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하는 등 건재하며 활동 중이다. 앞서 그는 언론에 상하이 비엔날레 총괄 감독인 것처럼 자신을 소개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 5회 전시감독이자 현 이사인 이용우 전 고려대 교수는 홍익대 대학원 재학 때 거의 출석을 하지 않고 석사 학위를 받은 것이 화근이 되어 재학생들의 항의와 투서로 갈등을 빚었다. 그는 약력에 영국 옥스퍼드대학 박사 혹은 박사과정 수료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논문도 지인들에게 공개한 바 있으나, 미술계에서는 국제 기획자로 바쁜 그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영국 대학을 다녔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또 이씨가 2003년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선정된 직후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는 이씨가 백남준의 작품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고인 서명을 도용하는 편지를 보내도록 고인 측근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적도 있으나 진상은 명쾌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작가 한젬마씨의 경우 지난 연말 <그림 읽어주는 여자> 등의 미술대중서가 언론의 대필 의혹을 받았으나 현재 문제의 책들은 그대로 팔리고 있다. 차원은 다르나, 미술사학계의 경우 올 초 문화재위원장인 안휘준 서울대 교수는 제자인 변영섭 고려대 교수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 <한국미술사>에서 변 교수가 자신의 저술을 베꼈다며 표절 공방을 벌인 바 있으나 양쪽의 갈등은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기획자 김영순씨는 “공개 검증이나 학위 판별을 껄끄럽게 여기는 미술계 특유의 분위기가 맹목적인 인맥, 학벌 선호 풍토와 맞물려 후진적인 망각의 관행을 빚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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