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보자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디지털 갈비세트-추석 무렵, 최고급 갈비세트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는다. 고마운 분들께 전송한다. 고맙지 않은 분들께도 전송한다.’
이것은 모바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 캠페인 ‘현대생활백서’ 중 하나다. 이외에도 식사 뒤 다이어트 차원에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으로 드라마 보며 걷기, 팔 아프게 필기하는 대신 폰카로 칠판 찍기 등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생활의 기술이 망라돼 있다.
젊은 세대들이 이 캠페인에 초공감하며 후속 시리즈들까지 생산해낸 까닭은 무엇일까? 단지 유용성이나 재미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휴대전화가 일상의 바탕화면이자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들로서는 이왕이면 그것을 더 잘, 기발하게, 숨은 1인치의 기능까지 알뜰하게 활용함으로써 휴대전화 함께하는 일상을 한층 새롭고 드라마틱하게 꾸미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비단 휴대전화에 그치지 않고, 바야흐로 우리 삶의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는 중이다.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일상의 지리멸렬함이라도 벗어나고픈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색다른 달걀 요리에 도전하고, 십자수로 가을용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만들고, 마사이족처럼 걷는 법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무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만한 생활의 기술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앞서 예로 든 광고 캠페인과 같은 제목의 (사만다 에터스 지음, 북플래너 펴냄)는 바로 그러한 기술들의 목록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의 기본을 제대로 익’히고,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소소한 일들을 좀더 확실하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다루는 대상이 미시적인 만큼 그 일들을 잘하기 위해 제시된 노하우도 매우 구체적이다. 예컨대 ‘손 씻기’ 항목을 보자. 손을 씻을 때는 비누칠 뒤 20초 동안 계속 비벼야 세균이 확실하게 제거된단다. 언제 20까지 세고 앉았냐고 투덜거릴 당신을 위한 처방전은 ‘속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두 번만 부르라’는 것이다. 이번에는 나의 오랜 고질병이기도 한 ‘이름 기억하기’ 항목을 펼쳐본다. 처음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헤어질 때 상대방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보면 훨씬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머리 감기, 면도하기 같은 습관적인 일부터 셔츠 다리기, 와인 마개 따기 같은 사소한 테크닉들과 사진 찍을 때 미소짓기, 키스하기처럼 종종 의도와 다른 결과(?)를 빚는 일들, 나아가 임금 인상이나 승진 요구하기, 협상하기 같은 비즈니스 스킬에 이르기까지, 과연 우리 생활의 온갖 잔기술들이 망라돼 있다. 물론 100가지 목록 중에는 시간관리나 외국어 배우기 등 백날 읽어봐야 결국 저 하기 나름인 항목도 있고, 품위 있는 파티 호스트 되기나 잔디 깎기처럼 대부분의 한국인은 평생 해볼 일이 없는 항목들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전문가들이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The experts’ guide to 100 things everyone should know how to do’라는 원제에서 보듯이, 100가지 생활 기술의 노하우를 해당 분야의 전문가 100명이 알려준다는 콘셉트다. 스타벅스의 커피 교육 전문가가 커피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알려주고, 자신의 이름이 곧 세계적인 메이크업 브랜드인 바비 브라운이 립스틱 잘 바르는 법을 가르쳐주는 식이다.
결국 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어차피 일상적으로 하는 일들을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좀더 잘해낸다면 삶이 한결 근사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자기 삶의 작은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에 이른 ‘생활의 달인’들이 무수히 많다. 아이들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캐릭터 도시락으로 유명해진 담덕공자, 여기저기서 주운 각목들로 멋진 간이의자를 만드는 등 집안 꾸미기에 일가견이 있는 땅꼬마 같은 수많은 인기 블로거들이 대표적인 예다. 진리 탐구 같은 거창한 지식이나 세계에 대한 상식과 윤리로서의 교양보다는 자기 삶을 즐기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생활 기술로서의 지식이 주목받는 시대인 것이다. 이렇듯 이미 시작된 우리 시대 지식의 코드, 혹은 가치 척도의 변화가 앞으로 또 어떤 ‘생활의 발견’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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