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3월, “하늘이 미쳤다”는 탄식을 넘어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3월인데도 창밖으로 눈발이 날린다. 금세 구름 너머로 햇빛이 고개를 내미는가 했더니 다시 어두워지고, 눈발은 어느새 주먹만 해졌다. 우산이 필요하려나 싶자마자 또 그친다. 하늘이 미쳤다.
이런 날씨를 보고 그야말로 천변만화(千變萬化)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저절로 ‘이 뭐꼬’라는 소리가 입에서 터져나온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화두인 ‘이 뭐꼬’에서 ‘이’는 세상의 복잡한 변화를 가리킨다. 이런 날씨가 바로 ‘이’다. 선승들은 이 화두를 하나 챙겨서 용맹정진한다. 나를 떠나 변화를 꿰뚫고, 변화를 넘어서기 위해서 평생을 바친다. 그러나 속인인 나는 그냥 하늘이 미쳤다고 탄식하고 말 뿐이다.

하지만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변화에 대한 깨달음은 필요하다. 아니, 날이 갈수록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현대인의 최대 과제가 되고 있고, 그래서 쉬운 길을 찾게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깨달음을 주기 위한 단답형 서적들이 출간되고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독자들의 이같은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간단히 돌이켜보더라도 칭찬, 설득, 배려, 용서, 화, 소통 같은 키워드들이 우리를 움직였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 (닐턴 본더 지음, 김우종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도 크게 보면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은 유대의 오랜 전통이 쌓아온 문제해결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특정한 키워드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하늘이 미쳤다고 탄식해버리고 마는 단순함을 넘어설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간단하게 키워드를 제시하는 책보다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단답형 문제해결법들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유대교의 랍비인 저자는 선배인 알터 레베의 세상 보는 법을 기초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네 영역으로 구분한다. 이 네 영역을 두루 여행할 수 있는 여행자가 되어야 세상의 변화에 도달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제1영역은 드러난 세계의 드러난 영역이다. 논리를 바탕으로 보는 시야에 잡히는 세상이 제1영역이며 세상은 온갖 정보를 제공한다.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된 세계다. 하지만 이 영역의 정보는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주지 못한다. 파도의 거품만 보고 바다는 원래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오류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제2영역을 살펴봐야 한다.
이곳은 드러난 세계의 숨겨진 영역이다. 빠른 말(馬)과 느린 말이 있다고 할 때 제1영역적 사고를 하게 되면 틀림없이 빠른 말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감춰져 있을 수 있다. 만일 틀린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면 오히려 느린 말이 상황을 쉽게 되돌릴 수 있다. 바른 길이냐 틀린 길이냐라는 새로운 질문은, 드러난 세계의 숨겨진 영역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보이는 것들에 감춰지고, 흔히 무시하고 마는 숨겨진 것을 찾으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제3영역은 직관의 영역이다. 저자는 이것을 숨겨진 세계의 드러난 영역이라고 표현한다. 논리나 이성 너머의 잠재의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찰나적으로 지각되거나 이미 사라졌지만 아스라이 남아 있는 이미지들의 세계다. 이곳에는 지도가 없다. 개가 왜 꼬리를 흔드냐는 질문에 그야 개보다 꼬리가 가볍기 때문이라는 어리석은 답이 역으로 실존적 문제를 인식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곳이다. 숨겨진 곳에 진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마지막으로 숨겨진 세계의 숨겨진 영역이 있다. 이곳은 머리와 분별로는 도달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래서 저자는 ‘참여’를 제안한다. 경험하고, 행동하고, 오류를 일으키는 과정 속에서만 제4영역의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
저자는 숨겨진 세계를 탐구하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와 세상의 변화들을 제1영역적 논리로만 파악할 때 우리는 어리석어지고 해답은 오히려 달아나버린다.
하늘은 미친 적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 숨겨진 인과의 맥락을 제대로 보려 들지 않을 뿐이다.
* ‘실용서 산책’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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