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보다 수많은 사례들에 주목해야 하는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아무튼 감명을 받았다.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다. 일주일이나 걸려서 다 읽었는데 내가 대견하다. 나중에 다시 꼭 읽어봐야겠다.”
이것은 15년 만에 내놓았다는 앨빈 토플러의 신작 에 대한 어느 독자 서평의 일부다. 온라인 서점에서 를 검색해보면 이와 비슷한 독자 서평이 꽤 많다. 너무 유명한 인물이 쓴 책이니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과 너무나 방대한 내용에 대한 당혹스러움(600쪽이 넘는다), 그래도 뭔가 배운 것 같다는 막연함이 뒤섞인 반응들이다.
앨빈 토플러의 통찰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를 설명한 리뷰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례없이 긴 추석 연휴를 이용해 이 책을 꼭 읽어보겠다고 한 최고경영자(CEO)들도 꽤 여럿인데, 그들은 좀 다른 독후감을 쓸 수 있을까?
경제학사에도 이와 비슷한 평판을 받는 유명한 책이 둘 있다. 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의 으로 ‘만인이 칭찬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토머스 맬서스의 은 ‘아무도 읽지 않으면서 만인이 매도하는 책’으로 유명하다. 앨빈 토플러의 이번 책에는 어떤 별명을 붙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후광을 접어두고 이 책의 가치를 찾아보자.
우선 그가 책에서 주장한 부의 심층기반인 시간, 공간, 지식이나 새로운 문명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인 프로슈머, 데카당스 등의 개념은 전작들이 가진 파괴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앨빈 토플러가 20여 년 전에 쓴 책들에서 이미 등장했던 개념들이기도 하거니와, 총명한 후배 저자들 덕분에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 메시지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굳이 시대의 통찰을 담은 기념비적 저서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동원해 수많은 사례들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기존에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개념들의 실제적 의미와 지평을 크게 넓혀준다.
예컨대 그는 시간이 변화시키는 부의 기반에 대해 설명하면서 ‘미디어 타임’을 사례로 든다. 기존의 방송은 30분이나 1시간 등 예측 가능한 프로그램 시간을 정해놓고 광고도 60초, 30초, 15초 등의 단위로 전파를 탄다. 그런데 미래의 프로그램은 시간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거나 규칙적인 편성표를 짤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이 유동적으로 되면서 자유시간을 얻는 시간대가 다양해지고, 방송도 그들의 시간에 맞춘 디지털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프로그램은 불규칙하고 다양한 길이로 엮은 단편들로 구성될 것이며, 이미 NBC에서 실험을 시작했다고 소개한다. 미디어 타임은 우리네 라이프 사이클이 표준시간표에서 이탈할 때, 그것이 어떻게 비즈니스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다.
프로슈머를 소개하는 대목도 그러하다. 그는 화폐경제를 위해 일하지 않는 프로슈머들이 화폐경제에서 자본재를 구입하고, 스스로 수리함으로써 주택가치를 상승시키며, 영리기업들에 무료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프로슈머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프로슈머라는 개념은 그가 이미 26년 전 에서 다룬 바 있지만, 이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비화폐경제와 화폐경제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책은 대표적인 지식상품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부를 창조할 수도,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앨빈 토플러도 지식을 부의 강력한 심층기반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권위 때문에 무조건 진실로 받아들이거나 유명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더라도 인정해버리는 태도로는 좋은 지식을 판별할 수도, 활용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가 ‘많은 이의 서가에 꽂혀 있지만 뭘 배웠는지는 모르는 책’이 되지 않기를 빈다. 잘 모르겠는데도 감명받아서는 곤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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