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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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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의 엄청난 위력

등록 2007-01-26 00:00 수정 2020-05-03 04:24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생산자의 입이 되는 커넥티드 마케팅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저스틴 커비 외 지음, 구자룡 편역, (주)지아이지오 펴냄)은 일단 제목부터가 길고 어렵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 마케팅 방법론은 실행하는 과정도 그리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소비자와 소비자 간에 마케팅이 일어나도록 하자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우리 속담에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했는데 바이럴, 버즈, 입소문 마케팅은 이 발 없는 말을 이용한다. 바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소문이다. 지금까지의 마케팅이 생산자인 기업이 소비자인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방적 판촉활동으로 정의되었다면, 이 책에 소개된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생산자의 입이 되어 다른 소비자들에게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마케팅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아마도 마케팅이라는 말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던 고대에도 ‘누구누구는 이런 걸 만들었대, 세상에!’라는 소문은 위력을 발휘했을 터이니, 입으로 전하는 마케팅은 역사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마케팅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되살아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커넥티드 마케팅’이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마케팅 전문가들로, 다년간 마케팅 현장을 휘젓고 다니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 책의 편역자 역시 한국에서 수년간 홍보와 마케팅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런 그들이 왜 새삼 사람들의 ‘입’에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소비자들이 더 영리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그 원인으로 ‘과도한 광고 소음화, 미디어 채널 세분화,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업적 수법들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광고 회피 전술’ 등을 꼽고 있다. 기업들의 일방적 마케팅 활동에 질린 소비자들은 웬만하면 우선 의심부터 하고 보는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이럴, 버즈, 입소문 마케팅’ 기법을 활용한 여러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한 예를 살펴보는 게 빠른 이해를 돕는 길일 것이다.

바이러스처럼 빨리 전염된다는 의미의 바이럴 마케팅 사례로 소개된 것이 영국의 버진 모바일이라는 휴대전화 회사다. 이 회사는 새로 나온 휴대전화를 홍보하기 위해 TV 광고를 기획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마케팅 절차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TV 광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만든 편집본에 TV에서는 다룰 수 없는 ‘야한 내용’을 포함시켜 웹 배포용 편집본을 만들고, 이것을 TV보다 먼저 인터넷에 유포시킨 것이다. 네티즌들은 의도적이지만 비의도적으로 보이게끔 유출된 이 편집본에 흥미를 보였고, TV 광고가 나가기도 전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퍼날랐다. 회사로서는 많은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입과 손을 빌려 효과적인 마케팅을 수행할 수 있었던 셈이다.

세계적 광고대행사인 유로RSCG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자발적인 소문을 타게 되면 TV나 인쇄매체 광고보다 10배는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휴대전화나 인터넷 메신저,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통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의 와중에 수많은 마케팅 메시지들을 유포한다. 방금 본 흥미로운 UCC, 재미있는 이야기, 써보니 정말 좋았다는 신제품 사용후기 등은 하나하나가 모두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마케팅 메시지들이 된다. 게다가 전달자의 자발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물론 소비자들의 자발성까지 의도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일반적 마케팅의 효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기업이 처한 현실이다. 커넥티드 마케팅은 이런 절박한 생존 정글에 떨어진 기업들이 구명줄로 선택하고 있는 절박한 트렌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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