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진보로 쓸모없어지는 전통적 남성성, 대안은 무엇일까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온라인 데이트 산업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가장 성장한 산업 중 하나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남성 회원들은 들끓는 반면 여성은 상대적으로 소수다. 여성이 훨씬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는 셈이다. 따라서 남성 회원들은 자신을 더 훌륭한 상품으로 꾸미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찍이 다윈은 성 선택 이론에서 ‘남자는 과시하고, 여자는 선택한다’라는 말로 인류 진화의 비밀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사이트에서 보여주는 남자들의 행동이 ‘과시’가 아니라 ‘구걸’에 가깝다면? 남자는 여자 없이 못 살겠는데 여자는 남자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례라면?
이번에 소개할 책 (매리언 살츠먼 외 지음, 김영사 펴냄)는 지난 수십 년간 진행돼온 여성의 사회 진출과 남녀의 역할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남성의 진로 등을 조명한 책이다. 그동안 남자에 관한 이야기들은 남녀의 연애심리와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미나 지음, 중앙M&B 펴냄) 시리즈나 기피할 남자의 목록을 주관적으로 나열한 (김지룡·이상건 지음, 흐름출판 펴냄), 그리고 남녀의 심리 차이에 관한 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존 그레이 지음, 친구미디어 펴냄)처럼 주로 심리와 성격에 주목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본격적으로 남자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얼핏 ‘실용서 산책’이라는 칼럼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는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메트로섹슈얼, 위버섹슈얼 등 새로운 남성 소비자들의 등장과 그들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삶의 변화를 트렌드적으로 해석할 때, 빌 게이츠나 앨빈 토플러가 말한 ‘속도의 충돌’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령화라는 메가 트렌드는 수명 연장이라는 생물학적 진화를 사회문화적 토대가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속도의 충돌을 우리 사회에 야기한다. 모든 세대들이 젊음을 추구하기 시작함으로써 청년-중년-노년이라는 생애주기가 낳았던 고정관념이 도처에서 도전받고 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도 속도의 충돌이 발생한다. 고령화와는 반대로 남녀의 역할 변화라는 사회적 진보를 생물학적 진화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야기되는 충돌이다. 특히 남자들이 그렇다. 남자들은 여전히 유전자가 지시하는 공격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여성은 그걸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남자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과학과 경제 분야에서의 발전, 그리고 사회 심리학적 변화로 여성이 남성을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 생물학적인 것, 즉 ‘출산 능력’으로 보는 정도까지 감소된 것이 남자들이 부딪치는 현실이다. ‘심지어 그것조차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과학의 진보가 거론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진정한 남자의 정의는 융통성 있고 이해력 있으며 가족관계에서 동등하게 공헌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오늘날의 여성은 이전에 여성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남성성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여자들은 남자들의 변화를 강력히 요구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남자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보호해줘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대상들이 정작 보호를 요청하지 않으니 남자들은 어디서 자기 역할을 찾을 것인가?
저자들은 ‘M-ness’(전통적 남성성과 여성의 긍정적 특징을 결합한 남성성)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좋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 남자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본격적인 페미니즘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30여 년. 수만 년 동안 누려온 지배적 권력을 포기하는 데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수십 년 이상, 남자들은 지속적인 변화를 요청받을 것이다. 남자의 미래는 아직도 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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