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소통하는 세상,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원숭이에게 리모컨을 건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이 이것을 가지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 <ubiquitous space junk book>(유비쿼터스 공간백서, 김용성·정철오 지음)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리모컨이 생활의 모든 것을 지배할 미래 사회를 희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한 장면이라고 말하는 것은 책 전체가 모두 168개의 장면(이미지+간단한 캡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장면은 ‘004 환웅의 예언’에 소개된 것이다.
‘146 집 도주’라는 장면도 있다. 불타는 집을 배경으로 거북이 새끼 거북을 등에 태우고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다. “옆집에 화재 등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 집으로 피해가 올 수 있는 경우, 집 코너에 발이 생겨 신중히 그리고 신속히 집이 알아서 피해주는 System.”
또 ‘039 嚴U侍下’라는 장면을 보면 양푼에 밥 비벼먹는 손의 이미지가 보이고, “다이어트 모드. 집에서도 맘껏 먹을 수 없는 밥, 부엌에서 도망 나와서 몰래 먹는다”고 쓰여 있다. 이쯤 되면 결심이야 어떻든 유비쿼터스 도구들의 감시를 받는 생활이 연상될 수밖에 없다.
책의 저자들인 건축가들은 상상한다. 모든 물체와 물체, 물체와 인간, 인간과 인간이 무선 연결망을 통해 소통하는 세상, 바로 유비쿼터스 세상이다. 그들의 상상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지나치게 인간을 이해해주는 세상, 혹은 그로 인해 감시받는 세상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바뀔 것인가?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며 살게 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일찍이 과학문명의 시대를 탁월하게 예언했던 한 사람을 알고 있다. 바로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이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등을 쓴 작가다. 19세기에 쓰인 그의 소설에는 달여행 로켓, 텔레비전, 잠수함, 휴대전화 같은 첨단기술들이 이미 선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20세기는 베른의 꿈을 과학이 쫓아간 시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쥘 베른의 신념은 ‘미래는 상상력만큼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1세기가 지난 지금, 이 건축가들의 상상을 쫓아가는 21세기를 살게 될 것인가?
유비쿼터스 기술이 삶을 바꾸리라는 예측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이 기술이 우리를 지배할지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시 쥘 베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의 상상력보다 그의 관찰력과 모험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불과 열두 살 때 호기심과 모험심에 불타 부모님 몰래 항구로 가 배를 탔던 쥘 베른은 커서도 끊임없이 여행을 다녔다. 또한 그는 한 작품을 쓰기 위해 도서관과 박물관을 제 집처럼 들락거렸고, 과학계의 뉴스나 최신 이론을 습득하고자 전문 과학지도 치밀하게 조사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노력을 통해 미래를 예측했고, 그래서 정확한 예견이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사람은 소비자의 마음속을 쥘 베른처럼 돌아다녀야 한다. 모험심과 관찰력, 그리고 집중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유비쿼터스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결국 미래의 소비자들이고, 그들이 원치 않으면 아무리 첨단기술이라도 용도 폐기의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그 자체의 발전 논리로만 성장하지 않는다. 철저히 수요 공급의 법칙에 귀속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하나의 출발점이다. 수요 공급의 법칙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의 현실화라는 또 다른 관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건축가와 공무원, 분야별 과학기술자, 문화산업 종사자, 기업가, 경제학자, 트렌드 연구자 등이 모여 이런 종류의 책을 다시 써봤으면 싶다. 그들의 지식과 경험의 퓨전으로 펼쳐질 섬뜩한 미래 예언서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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