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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법

등록 2006-1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유행과 트렌드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를 읽어라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패드(fad)란 ‘for a day’의 이니셜을 조합한 말로 ‘짧은 기간 동안 급속히 인기를 얻었다가 정점에 도달한 뒤 곧바로 인기를 잃는다’는 특징을 가진 현상을 말한다. 1915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의 사회학자 에모리 보가더스는 매년 100여 명의 사람들에게 패드라고 생각되는 현상 5가지를 골라달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의 예상대로 사람들이 고른 패드들은 길어야 2년 이상 인기를 끌지 못했다. 2년이 지나면 또 다른 현상들이 패드의 목록에 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패드의 목록에 오른 제품들 중에는 오늘날 우리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예컨대 손목시계가 그러하다. 당시 제대로 된 신사 복장을 갖춘 남성들은 체인으로 양복 조끼에 매다는 회중시계를 기본적인 액세서리로 여겼기 때문에 손목시계의 인기는 곧 사그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손목시계는 지금도 필수적인 결혼식 예물의 하나이며, 심지어 휴대전화 같은 대체품을 비롯해 수많은 디지털 시계들 틈바구니에서도 젊은이들의 손목을 장식하곤 한다. 손목시계는 패드가 아니라 지속적인 확산을 이룬 혁신제품이었던 것이다.

미국 델라웨어대학의 사회학 및 형사사법학부 교수인 조엘 베스트는 신작 (사이 펴냄)에서 단기적인 패드와 유행이 중장기적 흐름인 트렌드나 혁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왜 우리가 일시적인 패드나 유행에 빠지며 어떻게 트렌드를 예측하고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의 의도는 목차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책의 앞머리인 1부에서 왜 우리가 패드나 유행에 현혹되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일시적 유행들이 뜨고 지는 3단계의 사이클을 추적하고, 마지막 3부에서 일시적 유행의 패턴 등에 대한 인지를 통해 저항력을 갖추기를 권하고 있다. 독자에게 조금 아쉬울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주로 사회현상과 제도를 핵심 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분석의 틀은 비즈니스를 포함한 사회 변화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으므로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그는 2부의 첫머리에서 1980년대 말 경영계의 패드였던 전사적 품질관리(TQM)와 뒤를 이은 관리기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패드들의 지향점은 분명했다. 제품 생산과 고객 봉사를 위해 오류를 최소화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런데 TQM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초기에 부풀려진 기대에 걸려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다’(, 1992년)는 평가를 받았고, 뒤이어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BPR)에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BPR 역시 ‘리엔지니어링은 곧 사양길에 들어설 것으로 봐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리엔지니어링은 정말로 실제적인 것이다’(, 1993년)라는 평가를 받았던 시기도 잠깐, 고작 2년 뒤에 ‘리엔지니어링은 패드다’(, 1995년)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이 바로 식스 시그마다. 조엘 베스트는 경영계의 이런 변화가 부상(emerging)-대유행(surging)-퇴출(purging)이라는 3단계 사이클을 전형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권위 있고 영리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패드들을 퍼뜨리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론은 우리가 이런 패드에 흔들리지 않고, 중장기적 흐름인 트렌드를 예측하면서 진정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시적 유행과 패드에 휩쓸리지 않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진심으로 알고 싶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모 라디오 프로그램의 저자 인터뷰 코너에 출연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진행자들에게 유행과 트렌드의 결정적 차이가 시간, 즉 어떤 새로운 현상이 얼마 동안 인기를 얻게 되는가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날 차를 몰고 가면서 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진행자가 누군가와의 인터뷰 도중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건 ‘단기적인 트렌드’가 아니겠지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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