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재활용과 순환 · 나눔의 경제를 생활에서 배우는 순천시 어린이 나눔장터
▣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전남 순천시 금당근린공원에서는 매월 첫쨋주 토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어린이 ‘장돌뱅이’들이 모여든다. 8월7일에도 어김없이 그들이 나타났다. 평소 80여명 안팎이 모이지만, 찜통더위와 휴가철이 겹쳐 이날은 30여명 남짓의 어린이들이 참여했다. 어린 장사꾼들은 돗자리 위에 갖가지 상품들을 내놨다. 학용품, 동화책, 카드, 딱지, 학습지, 인형, 장난감, 비디오테이프, 옷, 신발…. 오후 5시까지 열린 장터에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온 부모들과 장사하러 나온 어린이들의 친구까지 몰려들어 500여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부모들은 책과 옷을 고르느라 분주했다.
“물건 아껴쓰는 버릇 생겼어요”
어린이들이 주인인 장터에도 상거래의 원칙은 있다. ‘가격이나 물건 등 장터에서 결정할 것은 어린이 스스로 결정하되, 이용료는 무료’라는 것이다. 카드 한 묶음에 100원, 작아서 못 신는 운동화 한 켤레 500원, 작은 장난감차 100원, 학습지 3권에 1500원, 연필 한 자루 100원, 예쁜 스티커는 그냥 덤으로…. 경품을 걸기도 하고, 파격세일이라는 홍보물도 붙는다. “깎아달라”는 또래 ‘고객’의 요구에 가져온 물건 가운데 덤으로 하나 더 주기도 하고, 딱지와 카드를 교환하기도 한다. 장사가 잘 안 될 경우에는 시장조사를 해서 물건 가격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 스스로 장사하는 법을 배운다. 일부 어린이들은 더운 날씨에 지친 나머지 장사는 뒷전이고, 어머니들이 준비한 음료수를 마시며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드느라 손님은 안중에도 없었다.
“인형 사세요. 500원입니다. 핀은 200원….” 정한솔(11)양이 손님들을 부르느라 목청이 터진다. 한솔이는 일찌감치 자리를 펴고 앉아 머리핀·인형·필통·가방·공 등 ‘상품’을 100원에서 500원, 비싸게는 1천원에 팔고 인형 몇개만 남아 있었다. 한솔이는 좌판을 편 지 1시간 반 만에 인형 몇개만 남기고 돗자리를 접기 시작했다. 장사를 끝내려는 참이다. 집안에 굴러다니는 머리핀이 가장 잘 팔렸단다. “이렇게 모은 돈은 유치원 다니는 동생 장난감을 사주거나 가족 생일에 선물을 사주려고요.” 한솔이는 4200원이 든 지갑을 보여줬다.
나눔장터에는 단골 장사꾼도 생겨나고 있다. ‘하면 된다’는 가게이름을 목에 걸고 좌판에 참고서를 늘어놓은 박지현(11)양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올해 4월부터 나눔장터에 빠지지 않고 나왔다”며 “7월에는 5천원어치 팔았는데 계속 돈을 모아서 11월 말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선물을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물건을 아껴쓰는 것에도 열심이다. 더 이상 못 쓰게 된 몽당연필은 반을 갈라 심을 빼서 설계일을 하시는 아버지께 드린다고 했다. “여기 나오기 전에는 부모님께 용돈 달라고 졸라서 사고 싶은 걸 사고, 쉽게 잃어버리고, 잃어버려도 찾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나눔장터에 참가하면서 돈이나 물건을 아껴쓰고 저축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이렇게 순천의 어린이들은 한달에 한번 나눔의 축제를 경험한다. 또 소비자로 머물던 어린이들이 소비자와 판매자의 세계를 경험해 경제 마인드를 키우고 재활용과 순환·나눔의 경제를 생활에서 배운다. 아이들과 함께 들렀다는 장경아(37)씨는 “아이들이 직접 물건값을 매기고 흥정하면서 돈의 개념도 알고, 어떻게 쓰는 게 올바른 것인지 스스로 체득하는 게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나눔장터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수원 환경운동센터 김종태씨는 “어린이들이 싫증난 물건을 버리지 않고 또래와 바꿔쓰는 습관을 가질 수 있어 좋은 것 같다“며 참여 열기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곳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즐기는 것도 이곳의 자랑거리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모형 로켓이 발사되는가 하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이벤트도 벌어졌다. 종이 찰흙으로 잠자리, 호랑이 등의 모양을 만드는 곳도 있었다. 장터 입구에는 ‘청소년 만화 그리기 축제’에 참가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지역사회의 볼거리와 체험 코너도
어린이 나눔장터는 그린순천21, 순천YWCA 등 지역시민단체가 시작했다. 2003년 6월5일 ‘환경의 날’을 맞아 순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돼 ‘재활용한마당’ 행사를 열었고, ‘클린2704’라는 시민행동 프로그램의 하나로 ‘나눔장터’를 마련한 것이다. 클린2704는 27만 순천 시민의 참여로 재활용을 생활화해 시민 1인당 하루 쓰레기 배출량을 절반(0.4kg)으로 줄이자는 범시민운동이다.
나눔장터는 주민공동체 문화와 나눔문화를 이끌면서 어린이들에겐 절약과 경제교육의 장이 되고, 어른들에겐 지역사회의 정보를 교환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순천YWCA에서 소비자 상담을 맡고 있는 정혜운 간사는 “놀이를 통한 경제교육·소비자교육이라는 면에서 무척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나눔장터에서 펼쳐지는 볼거리와 체험 코너도 지역사회의 공동 생산물이다. 환경단체는 야생동물 보호 사진들을 전시하고, 생협은 음료수와 먹을거리 테스트로 안전한 먹을거리 홍보를 한다. 또 미술학원에서는 학원 선생님들이 나와 점토 만들기와 페이스페인팅 행사를 진행하고, 대학의 동아리들은 수화와 댄스와 전통무예로 자신들의 솜씨를 뽐내기도 한다. 놀이마당의 주제도 달라진다. 6월에는 환경, 7월에는 평화 등 사회의 흐름에 맞춰 주제를 바꾸는 식이다. 다른 지역의 ‘벼룩시장’과 다른 면모다. 그린순천21 이복남 사무국장은 “각 지역마다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나눔장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앞으로 나눔장터가 순천 시민들의 자산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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