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제각기 취향 부린 그들의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들이 보인다
▣ 김경/ 패션지 피처 디렉터
얼마 전, 의 김선주 논설위원으로부터 젊을 때는 ‘시간’을 즐기고 ‘공간’은 나이 들어 즐기는 것이라는 멋진 말을 들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10대 때부터 줄곧 공간에 집착해왔다. 10년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엄마 지갑에서 달랑 10만원을 훔쳐서(훔친 건지, 빌린 건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길음동 옥탑방으로 독립할 때부터 줄곧 그랬다. 세계 어디를 가도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걸핏하면 길을 잃었고, 때로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집들을 책으로 구경하며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문화평론가 강영희 선생이 쓴 이라는 책을 보고 내가 왜 그토록 공간에 집착했는지 깨달았다. 그건 ‘악착같이 벌어서 내 집 장만하자’ 식의 어머니 세대의 구호와는 좀 다른 의미였다. 그 크기로 보나 방식으로 보나 나만의 이런저런 취향을 제 멋대로 부려놓기에 집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집은 책이며 음반, 책상, 꽃과 나무 등 내가 좋아하는 오브제들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놓인 나만의 우주였다. 그러니까 집은 나라는 인간의 가장 가시적이고 가장 거대한 ‘일부’였다.
내가 취재원 집에 놀러가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취향이나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그 사람이 사는 공간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보였다. 한대수 선생의 집에 가면 샤워할 수 있고 기타를 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히피 뮤지션의 일상이 보였고, 만화가 이우일 집에 가면 영화나 책 같은 자기 취미에 빠져 낙천적으로 사는 어린아이 같은 30대 남자가 보였다.
최근에 방문한 집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이라는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집이었다. 자동차로 진입할 수 없는 좁디좁은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낡은 슬레이트 집인데, 집 한복판에 오랫동안 가꾸지 않은 야생의 정원을 품고 있어서 홀로 사색하기 좋아 보였다. 그런데 씨네월드라는 견실한 영화사의 대표이기도 한 이준익 감독은 그 누추한 집의 사랑채를 전세 내어 혼자 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집도 사람도 눈곱만큼도 허세가 없었다. 어느 스태프가 이준익 감독을 두고 “촬영하는 내내 고환에 습진이 생길 정도로 생고생을 다 했는데도 걸핏하면 그 망할 놈의 감독이 자꾸 보고 싶어진다”고 했는데 그의 집도 그랬다. 누추하지만 편안하고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가고 싶어지는 집이었다. 마침 부암동이라는 동네 전체가 그런 고졸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나는 이사할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그 동네에 전셋집을 보러 다닐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
반면 최근에 나를 가장 숨막히게 한 집은 ‘대한민국 1% 아파트’로 불리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였다. 일단 초고층 건물이라 창문을 열 수 없다는 점이 ‘쥐약’이었다. 게다가 집약된 고도의 기술력으로 가장 편리하게 지어졌다는 최고의 홈네트워크 주거 공간이 내게는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거대한 기계장치처럼 보였다. 또 입주하기 전부터 완벽하게 세팅된 곳이라 거주자가 그곳에 자신의 취향을 부려놓을 만한 여지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타워팰리스에 못 살아서 난리일까? 그건 4억원에 분양받는 순간 곧 10억원이 되는 집이기 때문이다. 강영희 선생 말마따나 그 경제성이 공간에 대한 인간의 취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내 눈에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대한민국 상위 1%’가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 ‘닭공장’에 가는 화이트칼라처럼 좀 안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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