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비에 흠뻑 젖어가며 심었던 콩을 11월 중순에 수확했다. 메주콩 두 종류, 퍼런콩, 쥐눈이콩, 서리태를 수확했다. 콩이 다섯 종류가 되니, 방수포가 여러 개 필요했다. 커다란 방수포 2개를 더 마련했다. 메주콩이 두 종류다. 섞이면 큰일 난다. 쥐눈이콩과 퍼런콩, 서리태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니 섞여도 괜찮다. 한 방수천에 거리를 두고 놓는다. 집에서 거리가 있는 콩밭이지만, 젖을까봐 아침엔 열어두고 저녁엔 방수포를 꼭 감싸놓았다. 옆 밭을 일구시는 할머니가 지나가시다가 “뭐 하는 거여?”라고 물으셔서 “콩 젖을까봐 덮어두게요. 이러면 안 돼요?”라고 하니 할머니는 “아니 뭐 정성이야 대단타마는 누가 그렇게 한대”라며 “허허허” 허탈하게 웃으시곤 보행기를 끌고 지나간다.
콩밭이 멀어 콩 털기는 자꾸 미뤄졌다. 출근도 해야 하고, 집 앞 텃밭에 월동하고 봄에 먹을 작물을 심어야 했다. 밀도 심어야 하고, 완두콩, 마늘, 상추, 봄동까지 심었다. 하지만 계속 마음은 콩밭에 머물렀다. 콩도 빨리 털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것이 이런 걸까.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조금씩 집 앞으로 가져왔다. 그제야 조금씩 털기 시작한다. 아침 일찍 방수포를 열어놓고, 퇴근 뒤 저녁에 집 앞에서 털고, 근무 날이 아닌 날엔 반나절 콩을 털고 골랐다.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작업하다보니, 목부터 허리까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이럴 땐 하늘이 어떻게 생겼나 보면서 허리를 쫙 펴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콩이 붙어 있는 가지를 대나무 막대기로 사정없이 두드린다. 전체적으로 열심히 두드린다. 툭툭툭 대나무 치는 소리에 후두두 콩이 방수포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나씩 들어서 흔들어보면 콩이 있는 콩깍지는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콩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게 알뜰살뜰 콩을 거둬들인다. 잘게 부서진 나뭇잎과 함께 남아 있는 콩들은 선풍기로 먼지를 날리고 콩을 거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뭇가지나, 잔챙이를 제거하기 위해 한참을 들여다보고 정선한다. 기계로 했으면 금방 마쳤을 테지만, 그럴 정도로 양이 많은 것 같지 않아 손으로 했다.
예쁜 콩과 못생긴 콩을 골라야 한다. 예쁜 콩은 내년 종자용이나 판매용, 못생긴 건 우리가 먹을 용이다. 겨우내 따뜻한 집에서 넷플릭스를 켜놓고 콩을 골라야겠다. 귤 까먹으면서 콩 갈무리하면서 넷플릭스 보는 건 겨울이 돼야 부릴 수 있는 여유다.
서리태는 밥에 넣어 먹거나, 콩자반을 해 먹을 수 있다. 퍼런콩은 한나절 물에 불린 다음 끓이고 갈아 두유로 마신다. 쥐눈이콩은 물에 불리고 콩나물시루에 넣어 콩나물을 키워 먹을 수 있다. 메주콩은 귀한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데 쓰인다. 평상시 이렇게 자주 먹는 것까지 자급해 먹을 수 있다는 뿌듯함이 강하게 올라온다. 내년에는 무슨 콩을 길러볼까. 일단 먹어보면서 최애 콩을 찾아봐야겠다.
내일 아침은 밥에 콩을 넣어 먹어야겠다. 뜨거운 백미와 함께 씹을 때 알알이 터지는 알싸한 맛이 일품이다. 콩을 많이 넣으면 맛이 없어 안 된다. 콩은 밥에 조금 얹어 먹어야 제맛이다. 옛 교도소에선 콩을 50% 이상 섞어서 지급했단다. 콩밥을 먹을 사람은 따로 있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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