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여성 작가가 펼치는 세계화와의 대결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아룬다티 로이.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1961년 인도 케랄라주에서 태어나(인도 남부의 가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여성’으로 자랐다는 말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도시로 건너온 뒤 건축가, 시나리오 작가, 심지어 에어로빅 강사로도 일했던 여자. 30대 중반에 이라는 소설을 써서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리고 영국의 부커상까지 움켜쥔 여자. 출판사의 주선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인도 핵실험과 댐 개발 사업에 대한 신랄한 정치평론을 써대며 자신의 소설을 기꺼이 사준 인도 상류층의 얼굴에 침을 뱉은 여자(인도 주류사회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빨갱이년’이라는 욕을 보냈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작가 겸 활동가’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가 쓴 정치평론과 연설문을 묶은 (박혜영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에서 로이는 자신에게 붙은 ‘작가-활동가’라는 이중적 꼬리표를 거부한다. ‘작가와 세계화’라는 짧은 글은 로이의 언어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발화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나는 을 쓴 사람은 왜 작가로 불리고 정치 에세이를 쓴 사람은 왜 활동가로 불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작가들이 논픽션을 쓸 권리를 포기했는지요?” 그는 작가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생명까지 상품의 단두대에 오르는 세계화 시대, 전문가의 위선적 언어를 깨부수는 것은 작가의 언어다.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상식적인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사건들간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사람들은 작가, 시인, 예술가, 영화제작자들입니다.” 로이가 인도 빈민들과 시위를 함께 하고,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하고, 법정모독죄로 피고인석에 앉는 것도 모두 ‘작가의 이름’으로이다.
여기저기에서 글을 끌어모아 다소 두서없긴 하지만 는 로이의 궤적을 보여준다. 작가가 된 뒤 그는 줄곧 ‘세계화’라는 끔찍한 화두와 대결하고 있다. 인도의 댐 건설 현장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의 포연이 공통으로 대면하고 있는 것은 모든 ‘작은 것들’을 짓밟으며 작동되는 세계화다. 9·11 이후(혹은 훨씬 그 이전부터) 제국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에 대한 로이의 비판은 ‘작가’만의 열정과 대중적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과 구별된다. 2002년 9월29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로이의 강연 ‘9월이여, 오라’는 그의 강렬한 언어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제국의 심장부에서 로이는 9월11일에 대해 말한다. 이 날짜는 큰 슬픔을 겪은 미국 시민들에게만 중요한 날이 아니다. 1990년 9월11일 아버지 부시는 양원합동회의에서 미국이 준 병기로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1973년 9월11일 칠레에서 피노체트 장군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 아래 쿠데타를 감행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켰다. 1922년 9월11일 영국 정부는 아랍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시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신탁통치를 선포했다. 그 무수한 9월들은 결국, 제국이 던진 부메랑이었다.
로이는 2001년 9월11일 이후 세계를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주먹’은 ‘보이지 않는 손’과 함께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슬픔은 ‘자유시장’과 함께 진행 중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권력에는 수명이 있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을까? 로이의 마지막 말이다. “여러분을 여기서(미국) 뵙고 토마토가 내게 날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한 저의 믿음이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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