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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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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길’은 달리고 싶다

등록 2004-07-23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font color="darkblue">도심철도 폐선을 푸른길공원으로 조성하는 광주… 진정한 ‘시민 참여’로 전시행정 벗어나야 </font>

▣ 광주=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지난 7월9일 오후 광주 학동 남광주 네거리와 조선대 정문 네거리 구간. ‘필문로’라고 불리는 이곳에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의 대학교수와 시민환경단체의 활동가들로, 경전선(광주~밀양) 도심철도 폐선 터에서 이뤄지고 있는 ‘푸른길공원 조성사업’의 마무리 과정을 둘러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폐선 터를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결정한 뒤 첫 성과물이 나타난 곳이어서 이들의 얼굴은 흥분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도심 속 ‘숲길’ 역할 제대로 하려면

폐선 터 푸른길공원 조성사업의 첫 성과물인 필문로 구간은 약 600여m로 광주지역 건설업체가 14억여원을 들여 설계·시공했다. ‘철길 신호기’가 이곳이 폐선 터였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상징물이었다. 공원은 자전거로 한가롭게 지나는 아저씨, 벤치에 누워 라디오를 들으며 더위를 쫓는 어르신들로 한가로웠지만, 바로 옆 차도는 차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오후 내내 북새통이었다. 조선대 정문 네거리앞에서 출발하자마자 필문로 들머리에 설치된 정체불명의 조형물이 운동본부 사람들을 막는다. 이곳 조형물은 미적인 요소도 없었고,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좁게 만들어 오히려 통행에 지장을 주는 장애물이었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의 경계도 모호했다. 그나마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할 자전거 도로도 시설물이나 도로 개설로 인해 중간중간 끊어지게 돼 있었다. 전남대 병원쪽으로 차량 진입이 가능하도록 도로를 내면서 공원이 중간에서 절단된 대표적인 구간이었다.

조사단이 나타나자 지역주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무슨 전시행정을 하려는 거냐? 자꾸 사진만 찍으면 뭐하느냐. 변화가 없다. 지역주민 얘기를 듣기나 하냐.” 근처에 산다는 금강(61)씨는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는 현장조사단을 공무원들로 착각했는지 불편함을 조목조목 늘어놨다. 쓰레기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며, 화장실이나 수도시설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근처 주민들이 터의 땅심을 높이려고 잡초도 베는 등 나름대로 애정을 쏟는 이가 늘고 있다”고도 했다. 세살배기 아이와 산책을 나온 최선희(30)씨도 “광주는 무등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생활녹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며 “도시속 ‘녹색 띠’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경희 광주폐선부지푸른길가꾸기운동본부 간사는 “첫 번째 성과물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지 못하면 나머지 구간의 성공도 장담하기 힘들 것”이라며 도면을 펼쳐놓고 조사단이 지적한 문제점을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하기에 바빴다. 송인성 교수(전남대 지역개발학과)는 “시민들이 3년여 싸움 끝에 광주시의 경전철 건설 계획을 포기시키고 얻어낸 공간이지만 도심 속 숲길이라는 당초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 실망이 크다”며 “광주시가 설계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지도 않은 채로 공사에 들어갈 경우 기형적인 공간이 될 우려가 커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장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정리해 광주시장 권한대행을 면담할 예정이다. ‘광주광역시 푸른길공원조성 자문위원회’도 의견서를 시에 전달하기도 했다. 의견서의 핵심은 몇몇 구간에 대한 재설계의 필요성을 제기한 점이다. 자문위가 주장하는 설계의 문제점은, 푸른길 터와 주변도로와의 연계도 미흡하며 설계의 객관적 수준이 저급하다는 것이다.

푸른길 공원이 도로건설로 축소·왜곡될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도 문제다. 자동차 중심의 도로정책에서 벗어나려는 바람을 담고 있는 푸른길 공원임에도 자동차 도로건설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광주시 교통당국은 백운고가 철거 뒤 연장 재기공 계획을 하고 있어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되면 대남로 푸른길 일부가 자동차 도로로 둔갑할 것이고, 푸른길 공원을 횡단하는 도로가 만들어져 푸른길 공원이 ‘졸작’이나 ‘누더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광주시는 여전히 ‘검토중’이라는 말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우여곡절의 핵심에는 ‘시민 참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동신대 조진상 교수는 “용역회사가 만들어온 설계안에 몇몇 전문가들이 자문해주는 것을 ‘시민 참여’라고 생각하는 행정기관의 ‘용역 행정’ 의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광주 시민과 전문가들이 기본구상 수립 단계에서부터 집행과 사후관리에 이르는 일련의 전 과정에 참여해 새로운 ‘시민 참여형 도시발전 모델’을 만드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 대신 환경을 택한 주민들

광주 도심 한가운데 길이 10.8km, 넓이 4만8천평 규모로 선형으로 이뤄진 ‘알짜배기’ 땅인, 폐선 터의 탄생은 사실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었다. ‘개발’과 ‘환경’의 두 가치를 둘러싸고 지역 사회가 둘로 나뉘는 형국이었다. 결국 녹지공간 조성을 바라는 주민들의 뜻에 따라 2000년 12월 광주시는 녹지공간 조성 결정을 내렸다. 폐선 터를 생명의 공간으로 만드느냐는 광주의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공원 반경 1km 안에 34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65개 학교에서 13만명의 학생이 공부한다. 그만큼 생활 속 녹지공간으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광주대 김병완 교수는 “무등산이 광주 시민들에게 주말의 녹지공간으로 특별한 곳이라면 푸른공원은 일생생활 속의 도심 녹지공간으로 아주 특별한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푸른길가꾸기운동분부에 참여한 이들은 녹색도시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녹색도시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푸른길 공원을 통해 도시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어렵지만 이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 힘입니다.” 이경희 간사의 말이 서울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들은 7월 말께 ‘도시숲길-푸른길 새로운 출발과 다짐 한마당’ 행사를 시작으로 시민참여형 푸른길 공원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다시 펼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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