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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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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어느 날이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안 되려면

한수원 사장의 금품 로비, 내부 인사 청탁 거래 밝혀진 사상 최악의 원전 비리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핵심 부품, ‘교체’가 아닌 ‘재검증’은 말도 안 돼
등록 2013-09-18 16:29 수정 2020-05-03 04:27

9월10일 검찰의 ‘원전비리수사단’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이명박 정권의 실세라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 이종찬 한국전력 부사장을 포함해 97명을 기소했고, 그중 43명을 구속했다.

7억8천만원 챙긴 국정원 전직 직원

비리는 온갖 양태로 저질러졌다. 원전 핵심 부품의 품질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 한수원 직원들은 납품과 관련해 거액을 받아 챙겨왔다. 조직 내부의 부패도 심각했다. 김종신 전 사장은 한수원 직원들의 인사와 관련해 청탁을 받고 돈을 받았다. 한수원 출신인 이종찬 한전 부사장도 인사 청탁을 받고 돈을 받았다. 이 정도면 한수원은 총체적인 비리 공기업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납품·인사 등과 관련해 서슴없이 돈을 주고받는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2011년 9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 원자력안전 고위급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후쿠시마 사고가 났지만 원전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김봉규

2011년 9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이 유엔 원자력안전 고위급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후쿠시마 사고가 났지만 원전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김봉규

더 충격적인 것은 한수원 사장이 한수원의 이익을 위해 권력 실세에게 직접 금품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김종신 전 사장은 ‘원전 관련 정책 수립에 한수원의 입장을 고려해달라’며 박영준 전 차관에게 돈을 준 것으로 돼 있다. 돈을 주고받은 시기에 박 전 차관은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박영준 전 차관은 2010년 10월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200만원, 2011년 4월 집무실에서 5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2011년 4월이면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다. 이 시기에 한수원을 봐달라며 돈을 준 것은 무슨 의미일까?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 확대 정책을 계속해야 한다고 부탁하기 위해 돈을 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은 안전’하다며 원전 확대정책을 계속했던 것일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런 의혹은 앞으로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원전 문제를 두고, 공기업 사장이 권력 실세에게 돈을 주며 청탁을 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한편 박영준 전 차관은 원전 확대 정책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원전에 설비를 공급하게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5천만원을 챙겼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은 덤핑계약을 하는 바람에 우리 쪽이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 계약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본인은 ‘검은돈’을 챙겼다니, 할 말을 잃게 한다.

비리를 주선한 브로커들의 존재도 밝혀졌다. 여당의 당직자 출신도 있고, 전직 국정원 직원도 있었다. 전직 국정원 직원인 브로커는 한전 자회사 직원의 인사 청탁 명목으로 무려 2억8천만원을 받았고, 공무원에게 각종 청탁을 한다는 명목으로 5억원을 받기도 했다.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고 몰두하는 사이에, 국정원 전직 직원은 원전 비리에 관여해 돈을 챙겨온 셈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어디까지 비리의 고리가 이어져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에도 울산지방검찰청 특수부가 원전 납품 비리 등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에도 한수원의 본사 간부부터 일선 발전소 직원까지 광범위하게 부패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전업계에서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다닌다는 사실도 이때에 이미 드러났다.

검찰의 오지랖 ‘그래도 안전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리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데 있다. 이번 원전 비리 수사의 발단이 된 사건은 신월성 1·2호기와 신고리 1·2·3·4호기에 공급된 ‘제어용 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일이다. ‘제어용 케이블’은 인체의 신경계통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원전의 핵심 부품이다. 원전에서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종 설비에 신호를 보내 사고를 막는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그런 부품이기 때문에 극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기 위해 시험성적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이니, ‘제어용 케이블’의 성능도 믿을 수 없다.

시험성적서 위조에는 제조업체(JS전선), 검증업체(새한TEP), 승인기관(한전기술), 발주처(한수원)가 모두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제어용 케이블’ 이외에도 많은 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29건의 시험성적서가 위·변조됐던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사고가 안 일어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할 상황이다. 검증도 되지 않은 불량 부품으로 원전이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기계를 돌려온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래도 안전하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 원전은 일본보다 안전하다고 한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이 다수 공급됐으나, 원전 안전에 직접 영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수사 결과 발표에 포함시켰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자신의 임무도 아닌 부분에 대해 검찰이 얘기한 셈이다. 검찰은 범죄를 수사해서 발표하는 것만 하면 되는데, 원전이 안전한지 아닌지까지 언급한 것은 아무래도 수상하다.

특히 앞으로 유심히 봐야 할 대목이 있다. 그것은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제어용 케이블’ 중 신고리 3·4호기에 설치된 케이블 문제다. 지금 이 케이블에 대해서는 ‘재검증’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이라면 교체하는 게 상식일 것인데, ‘재검증’을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이 말을 뒤집어보면, 재검증만 통과하면 그 부품이 설치된 채로 원전을 가동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은, 요구되는 조건을 충족시킬 자신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그 부품은 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 부품을 교체하지 않고 그냥 가동할 수도 있다니?

아랍에미리트의 ‘페널티’ 조항

따라서 신고리 3·4호기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신고리 3·4호기는 신형가압경수형 원자로인 APR1400 모델이다.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원전과 같은 모델이다. 한수원이 국내 기술로 개발한 원전이라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만큼 검증이 안 된 모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랍에미리트는 이 기종을 수입하면서 ‘신고리 3호기가 2015년 9월까지 정상 가동되지 않으면 페널티를 물리겠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게 했다. 그런데 이 신고리 3·4호기에 공급된 핵심 부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데도 문제를 덮고 그냥 가동하려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신고리 3·4호기는 핵심 부품의 신뢰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가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어느 날이 ‘2011년 3월11일의 후쿠시마’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원전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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