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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수학으로 검증해볼까



아줌마들의 과학수다… 존 내시의 균형이론은 ‘선택의 기로’에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가치분배론
등록 2010-05-14 13:41 수정 2020-05-03 04:26
‘미팅에서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방법’이라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발상에서 존 내시의 ‘균형이론’이 시작됐다. 존 내시의 일생을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

‘미팅에서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방법’이라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발상에서 존 내시의 ‘균형이론’이 시작됐다. 존 내시의 일생을 다룬 영화 〈뷰티풀 마인드〉.

길었던 꽃샘추위가 수그러들던 어느 봄날, 이런저런 일로 심신이 지친 과학수다팀은 오징어와 커피를 들고 란 영화를 봤다. ‘뷰티풀 마인드’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를 보살피며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한 여인의 마음인지, 경쟁적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려 했던 존 내시의 균형이론에 담긴 마음인지, 매 순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딛고 삶을 선택하는 모든 이의 마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다시금 존경을 표하고 싶다.

1+1=2, 원인이 있어 결과를 얻는 사유
수다꾼 박문영·신지원·최동수·이인숙

수다꾼 박문영·신지원·최동수·이인숙

인숙: “가장 인기 있는 여자를 제외한 나머지 여자들과의 미팅이 데이트를 원하는 남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발상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의 바탕이라니 재밌네요.

문영: 생각을 수식으로 표현하고 갈등을 경우의 수로 풀어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자 존 내시는 확실히 우리와 다른 뇌 구조를 가진 사람 같아요. 생활 속 상황을 수와 식을 이용해 27쪽짜리 논문으로 만든 그의 발상이 놀라울 뿐이에요.

인숙: 라는 범죄수사 드라마를 보면서 범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하고 실제로 그 예상이 적중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영화를 보니 실제로 수학자들은 사람의 행동도 수로 해석하는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지원: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지문도 없고 목소리와 얼굴도 성형한 어느 국제 테러리스트를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공항 검색대에서 잡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에요. 발걸음과 제스처 등을 분석해 그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거죠.

문영: 이런 행동 분석은 범죄 수사뿐만 아니라 나를 인증하는 암호로 실제 사용되고 있어요. 서명을 하는 내 행동이 숫자화되고 패턴으로 분석돼 나를 인증하는 암호가 되는 거지요. 아직은 선진국의 정보기관만이 활용하고 있지만 조만간 많은 분야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스크린을 터치하는 개인의 행동 정보가 패스워드 구실을 하는 날이 올 거예요.

인숙: 행동과 생각을 수와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수를 즐기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사고의 틀이 아닐까 싶어요. 나도 오늘부터 모든 상황을 숫자로 해석할까봐요. 나의 기대치를 5에 두고 남편의 하루를 평가하는 거죠. 나를 위한 행동은 3점, 내게 했던 말은 2점, 사용 가치는 2점, 그래서 평균 2.33…. 오늘의 점수가 기대치에 못 미치니 내일은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자료를 제시하며 요구한다면 어떤 반응일지 심히 궁금해지는데요? 이왕이면 멋지게 표도 만들고 그래프도 그려서 하루와 일주일 단위로 자료를 분석해야겠어요.

지원: 받아보는 상대는 황당 그 자체겠어요. 하지만 화내거나 싸우지 않고 요구를 전달할 좋은 방법이네요. 수학자 오일러가 무신론자인 디드로에게 신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한 듯이 당당하게 “(a+b)/n=X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합니다. 당신의 답변을 듣고 싶군요”라고 해서 말문을 막았다는 얘기를 읽은 적 있는데, 그와 비슷한 방법이군요.

동수: 수학을 배운 적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를 풀 때 괄호에 주어진 조건이 중요하다는 걸 알 거예요.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 있을 때 이 주어진 조건을 적용해, 복잡한 식을 단순화하고 1이나 0 같은 단순한 답을 얻는다는 것도. 그래서 모르는 문제의 답은 언제나 1이나 0으로 썼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면 조건이나 변수를 전혀 생각지 않고 직관적으로 대처해서 문제를 더 크고 복잡하게 하죠.

문영: 대부분의 사람이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수학 문제를 풀면서 논리적·이성적 사고를 연습했는데, ‘1+1=2’라는 것은 기호나 약속이라고 생각할 뿐 원인이 있어 결과를 얻는 사유의 의미로는 받아들이지 않지요. 고민이나 갈등을 수와 식을 이용해서 단순하게 정리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 있지요. 숫자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심을 걷어내고 문제를 명확히 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인숙: 예전에 풀리지 않는 고민을 상담전문가와 상담할 때 하루에 내가 했던 말과 생각을 시간 순서대로 적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어요. 실제로 해보니, 머릿속에 있던 것과 달리 밖으로 끄집어내 문자화한 고민은 요모조모 뜯어보니 그 안에 해결책이 있더라고요. 형용사와 부사를 빼고 주어와 동사로 정리하면 더욱 단순하고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되더라고요. 이런 과정이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과 닮았어요.

균형이론은 손해 보지 않는 타협

문영: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너의 하루가 수학으로 가득 찼다고 하면 기절하겠지요. 매 순간 선택의 상황에서 분류하고, 과거의 경험과 비교하고, 필요한 조건을 생각하고, 중요하고 긴박한 인자를 우선순위에 놓는, 복잡하지만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많은 결정이 연습된 수학적 사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지원: 다시 존 내시의 균형이론으로 돌아가지요.

문영: 존 내시의 균형이론이야말로 가치 분배의 기준을 모든 사람의 만족에 두는 이상적인 수학이에요. 사람들 간의 사회적 소통이고, 경제적 책략이며, 군사적 전략이지요.

대부분 존 내시의 이론을 말할 때 ‘죄수의 딜레마’를 얘기하더군요. 어떤 사건의 피의자 2명이 각각 다른 방에서 취조를 받을 때 자백을 권유받지요. 두 명 다 자백하지 않으면 모두 석방되지만, 한 사람이 자백하면 그는 석방되고 상대편은 두 배의 벌을 받게 되는 거지요. 이럴 경우 각 피의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냐는 거예요. 각 피의자의 선택은 자백과 침묵이고, 경우의 수는 네 가지가 되지요. (자백, 침묵) (자백, 자백) (침묵, 침묵) (침묵, 자백). 두 사람에게 최선의 선택은 (침묵, 침묵)으로 모두 석방되는 거지요. 하지만 미리 약속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편에 대한 믿음이 높지 않을 때 각 피의자 입장에서 최적의 선택은 자백하는 거죠. 둘 다 손해 보지 않는 최적의 선택으로 합리적이죠.

인숙: ‘존 내시의 선택’은 언제나 최고나 최선이 아니라 나쁘지 않은, 서로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타협하거나 인정하는 거지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긴 하지만, 조금은 철학과 신념이 없이 이익과 성공만을 추구하는 방법이지요. 우리 생활에 적용하면 ‘얍삽한’ 인간이 되기 십상이죠. 하지만 무한 경쟁사회에서 회사의 전략으로, 전쟁 중 군사 전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문영: 애덤 스미스의 경제가 가치 생산이고,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공 이익이 실현되는 것이라면, 존 내시의 경제는 가치 분배이고, 수요자를 만족시키는 측면에서 가격이 결정되며, 예상한 전략과 경쟁자와의 소통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새로운 이론이지요. 자유주의경제에 경쟁자 간의 담합과 국가 개입을 이끌어 낸 혁명적 생각이에요.

인숙: 존 내시의 이론을 이번 선거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드는데요. 경우의 수와 최적의 선택으로, 내 결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고 싶어요. 예들 들어, 먼저 후보들을 신념, 실제 일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후보가 동원할 인적 네트워크 같은 정치적 뒷받침을 점수화해 표로 만드는 거예요. 그러곤 그 점수를 비교하면서 선택하는 거죠. 그러다보면 최고 점수를 받은 후보와 내가 생각하기에 정치인의 최고 덕목인 신념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후보가 같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두 후보씩 짝지어 점수가 높은 후보를 차례로 선택해보는 방식으로 하면 또 달라질 수 있겠고, 아니면 각 항목에서 최하 점수를 받은 후보를 차례로 뺐을 때 선택되는 후보도 다를 수 있고…. 생각이 복잡해지네요. 결국엔 내가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내 후보가 결정되겠네요. 그래도 느낌으로 후보를 선택했을 때와는 다른 명확한 근거가 생기지 않을까요?

뭔 속인지 알 수 없고, 그놈이 그놈이라

지원: 하지만 주어진 정보가 너무 불분명하지 않나요? 공약은 진위를 알 수 없고, 신념도 확인할 길 없고, 그 후보와 보좌진의 능력도 학력만으로 평가할 수 없고….

동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각 후보자에게 미션을 주고 다큐멘터리를 찍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신념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면 좋겠어요. 그래야 유권자도 투표를 하는 근거가 생기고 선택한 후보를 믿고 지지할 수 있지요. 떨어진 후보자에게도 다시금 노력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도 되고요.

인숙: 아주 재밌겠어요. 도대체 뭔 속인지 알 수 없고, 그놈이 그놈인 정치판이라 무시하고 살아온 사람들도 조금은 솔깃한 제안이네요. 밉상인 정치인들이 보통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실제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본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즐겁네요. 적극 추천이에요.

지원: 옳소, 옳소! 그리고 앞에서 말한 후보자의 선택은 표로 만들어주면 훨씬 이해가 쉽겠어요. 저도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해요. 선택에 그런 비밀이 있는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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