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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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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과학과 사회 사이


‘사회과학자 대 자연과학자’ 가상토론…
‘이학 박사’ 가능성 열어두고 판단 유보, ‘소시열 박사’ 최악 상황 가정한 정책 강조
등록 2010-04-14 10:56 수정 2020-05-03 04:26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공부한 박상욱 박사가 한겨레 과학웹진 (scienceon.hani.co.kr)에 ‘과학자 대 과학자’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과학과 사회의 여러 쟁점을 두고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자연과학자(‘이학 박사’)와 사회과학자(‘소시열 박사’)가 가상논쟁을 벌이는 형식이다. 규칙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되 배려하며, 자기 논리를 설득하되 솔직할 것!”. 편집자

사이언스온 기자(이하 온기자): 오늘은 추상적인 주제로 토론하기보다도 어떤 분명한 관심사를 두고서 두 분의 시각이나 접근법을 대조해보는 식으로 가면 어떨까 합니다. 저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의 속내를 들어보려 합니다.

이학 박사(이하 이박):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며 중대한 위기로 여겨지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과학자가 확신이 부족한 탓에 중립적인 입장이에요. 데이터가 더 필요합니다. 좀더 긴 시간 동안 관측해봐야 하고요. 기후변화라는 큰 테마를 다루는 데 근대적인 과학적 관측이 이루어진 지는 수십 년, 아무리 길게 보아도 수백 년이 채 되지 않아요. 하지만 기후변화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에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은 냉소적 회의론으로 치부된 채 소수 의견에 머무르고 있지요. 과학자는 이성적 토론을 계속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힘겨루기나 다수결로 날 수 있는 결론이 아니니까요.

기후변화는 자연의 사이클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한 결과이다. 남극 킹조지섬의 여름, 바다표범이 해변에서 쉬고 있다. REUTERS/ BOB STRONG

기후변화는 자연의 사이클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한 결과이다. 남극 킹조지섬의 여름, 바다표범이 해변에서 쉬고 있다. REUTERS/ BOB STRONG

이산화탄소 증가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면

소시열 박사(이하 소박): 기후변화 논의에는 사회·경제·정치·외교 등 다양한 요소, 인자 그리고 주체가 엮여 있습니다. 즉, 기후변화 담론은 과학적인 동시에 사회적입니다. 사회적 논쟁에서 파워게임이 작동하기 마련이죠. 제가 묻겠습니다. 이 박사님은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일반 대중보다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기후변화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이 일으키는 것이 맞습니까?

이박: 말하기 조심스러운데요. 기후변화는 다양한 관측 데이터에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년간 인간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이 있었고, 그것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크게 증가시켰습니다. 지질학 데이터를 보면 먼 과거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상 평균기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고요. 따라서 우리가 기후를 변화시킨다고 볼 수 있겠죠.

온기자: 일부러 교과서적인 대답을 하신다는 느낌인데요, 이 박사님. 기후변화가 ‘하이프’(hype), 그러니까 일종의 ‘과장’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죠?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박: 저도 주워들은 수준입니다만…, 예를 들어 태양 활동의 주기적 변화야말로 지구 온도에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의견이 있지요.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에 용해되고 식물에 저장되는데, 지질학적 과거의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기온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논리도 있습니다. 온도가 높아지면 해수에 대한 이산화탄소 용해도가 작아지거든요. 특히 남극의 아이스코어(ice core)로부터 지질학적 과거의 기온 변화를 살펴보면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와 대략 일치하지만, 전후 관계나 변동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아요. 결국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감과 기온의 변화는 자연의 사이클일 수 있다는 거죠.

소박: 문제는, 그 자연의 사이클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했다는 거겠죠. 과거 지구상의 생명체가 수백만~수천만 년간 축적해 땅 밑에 묻힌 탄소를 인간이 고작 200년간 캐내어 대기 중으로 퍼붓고 있어요. 앞으로 몇백 년은 자연이 완충해주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닐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임계점을 지나버리면 일방통행식으로 온난화가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이박: 소 박사님은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신 것 같네요, 맞습니까?

소박: 네. 저는 기후변화가 인간이 만든 시급한 문제며, 이것을 완화하고 이후 벌어질 일을 극복해나가려면 전 인류의 즉각적이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주류 의견이기 때문에 신뢰한다?
히말라야 빙하의 위성사진.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는 2007년 보고서에서 빙하 축소 속도를 신뢰할 수 없는 출처로부터 인용하며 과장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히말라야 빙하의 위성사진.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는 2007년 보고서에서 빙하 축소 속도를 신뢰할 수 없는 출처로부터 인용하며 과장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박: 저도 기후변화 회의론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과학자로서 여러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려 합니다. 소수 의견을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외람되지만, 과학을 좀더 알고 과학적으로 사고한다고 자부하는 저보다도 오히려 소 박사님의 입장이 분명한 것은… 저로서는 참 신기하네요.

소박: 저도 주어진 정보를 종합해 합리적 결론을 도출할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정보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보고서와 같은, 자연과학자가 쓴 책이나 보고서겠지요. 제가 보기엔, 적어도 현재까지는, 기후변화는 진행 중인 과학적 사실이며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원인입니다. 반면 기후변화 회의론은 비주류 의견으로 보이는군요.

이박: 그러니까 단지 주류 의견이기 때문에 기후변화 현상과 제기된 위협을 신뢰한다는 말씀이신지요?

소박: 그건 아닙니다. 물론 사회과학자가 자연과학의 논쟁에서 어느 한편을 들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과학계의 주류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과학자는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연과학자 의견을 경청하는 거죠. 저희는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의 정책적 활동에 조력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해 당사자를 조율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하죠. 대중의 이해를 도모하고 반응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 지출이나 규제 분야에서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해야 하죠. 시급한 당면 과제를 선별하고, 그 수행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몇 가지 가정을 해봅시다. 첫 번째 가정, 만약 기후변화가 단순히 사실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감소할 원유 생산량과 그에 따른 산업경제적 문제, 국지화된 자원과 에너지 안보, 나아가 세계 평화, 도시 대기환경의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습니다. 두 번째 가정, 만약 기후변화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이 아니라고 판명되면? 사람들은 예전처럼 자유롭게 화석연료를 소비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는 여전하고, 무엇보다 ‘자연적으로’ 변할 기후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새로운 기후에 대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더 더운 여름과 더 추운 겨울, 더 강해진 태풍에 대비한 사회간접자본을 갖춰야 하고, 제도상 변화도 필요할 겁니다. 유럽 국가는 이 문제에 특히 예민하죠. 세 번째 가정으로, 최악의 경우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기후변화가 가속된다면, 화석연료 사용을 즉시 줄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로 빠르게 전이해가야 합니다.

이박: 소 박사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나쁜 경우일 때 사회과학자가 할 일이 더 많아지는군요.

해프닝 때문에 심각성이 훼손되진 않아야

소박: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두는 것이 잠재적 위험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기 때문이죠. 근래 자연과학에서도 기후변화 때문에 지구과학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말할 것도 없죠. 자연과학자의 영향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봐야겠죠.

이박: 그건 현실이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국제정치적 담론이 과학 연구의 방향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 과학자조차 위기를 강조하는 형국이에요. 과학의 목표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상적 상황은 아니지요.

온기자: 얼마 전 떠들썩했던 ‘기후게이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뢰도가 떨어지는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반대파의 논문을 배척하는 일이 일종의 사회적 압박 탓이라는?

이박: 진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저는 적어도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과학자나 IPCC 과학자가 그들의 신념이나 주변 정치·사회적 압박 때문에 사실을 왜곡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기후게이트로 대표되는 해프닝 때문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희석되고 회의론이 고개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거지요. 지표면 빙하 총량은 1980년대 중반 이후 17년 연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온대 지역의 식생과 생태가 변하고 있고요. 바닷물의 열팽창 때문에 해수면은 매년 평균 1.8mm씩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기후변화를 보여주는 근거로 충분하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미 기후변화를 사실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온기자: 이 자리에서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니었고요. 사회과학자와 자연과학자의 시각 차이를 살짝 들여다본 것으로 일단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제 억제는 ‘사다리 걷어차기’

이박: 한마디 추가하고 싶네요. 사실 자연에는 에너지가 넘치게 흐릅니다. 인간이 그것을 잡아서 쓸 노력을 게을리한 채 화석연료에만 의존하는 것이 문제죠. 과학기술 발전으로 에너지 문제는 반드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소박: 기후변화 담론은 에너지 체계를 바꾸는 동력을 제공하는 셈이죠. 화석연료는 에너지원이면서 저장·운송·변환이 쉬운 환상적인 자원이죠. 화석연료가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압축적 발전에 기여한 점도 인정됩니다. 물질문명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인권이 신장된 것, 위생과 건강, 문화와 예술 등 모두 석탄과 석유에 의존한 산업화와 사회 변화에 닿아 있습니다. 아직 경제적·기술적으로 화석연료에 대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춘 대체에너지는 없습니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화석연료에는 사회적 비용으로 작용하고, 대체에너지에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박: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은 죄다 선진국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가난한 나라 국민에게 신재생에너지는 ‘녹색 사치’입니다. 개발도상국의 화석연료 사용을 강제로 억제한다면 그것은 ‘사다리 걷어차기’일 뿐입니다.

소박: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 협상, 예를 들어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 등에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것이죠.

온기자: 처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토론을 마치는 것 같습니다. 신재생에너지에 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더 토론할 기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기후게이트(Climategate): 코펜하겐 총회가 열리기 직전인 2009년 11월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기후연구소(CRU)에 있던 1천여 건의 전자우편과 문서 파일이 해킹당해 인터넷에 공개된 이래 이어지는 파문을 말한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를 중심으로 “공개된 문서 자료를 통해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과장됐음이 드러났다”는 주장이 제기돼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슷한 시기에, 히말라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 2035년이나 그 이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보고서가 과학 논문이 아닌 어떤 잡지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은 더욱 커졌다. 기후게이트는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의 산업활동이냐 자연현상이냐를 둘러싼 논란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과학의 신뢰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박상욱 서울대 강사·이학박사(화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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