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올해 지방 취재 때문에 여러 차례 열차를 이용했지만 미녀가 옆자리에 앉았던 적은 없습니다. 도대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는 ‘청춘남녀 자동분리 시스템’이라도 있는 걸까요.
코레일 홍보실 아무개 대리에게 물었습니다. 이분도 비교적 젊은 남성이십니다. 열차 이용 고객층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죠. “그런데 대리님, 혹시 기차에서 예쁜 여자분 옆에 앉은 기억이 있습니까?” 몹시 당황하시더군요.
“네? 아 그러니까, 대체로 연세가 좀 있는 분들이 많이 앉았던 것 같기는 합니다.”
“예쁜 여성이 앉은 적은 없다는 이야기군요.” 재차 확인하자, 수화기 너머 아무개 대리의 땀 흘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못하는 성격인 것입니다. ‘그렇다’는 대답을 굳이 에둘러 하더군요. “하하하. 그러게요. 저도 궁금한데요.”
하루 뒤 코레일로부터 열차 이용객 특성에 대한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자료를 보면 ‘시크한 도시 남자’님은 앞으로도 예쁜 여성 옆에 앉을 기회가 별로 없을 듯합니다. 열차 이용객의 절반 이상(53.6%)은 30대 이상 남성으로 나타났거든요.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죠. 지난해 10월 초 코레일이 여론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이용객 1200명의 특성을 분석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의 68.6%가 남성이었습니다. 반면 ‘예쁜 여성’일 가능성이 있는 20~30대 여성 이용객은 17.8%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연령 분포로 따진다면 40대 이상 장년층 고객이 절반 가까이 되는군요. 48.7%입니다.
KTX 일반실 한 량의 정원은 56명 혹은 60명입니다. 56명 정원의 열차가 가득 찼다면 20~30대 여성은 10명 정도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들 가운데 기혼 여성은 ‘기차에서의 불륜’이라면 모르겠지만 ‘기차에서의 로맨스’ 주인공으로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지난 2005년 서울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5~34살 여성 가운데 미혼 비율은 50%였다고 합니다. 대충 절반만 깎죠. 5명 남네요. 남은 5명 가운데서도 애인 등 동행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동행이 없는 미혼 여성이라 해도 ‘시크한 도시 남자’님의 마음에 차지 않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몇 명이나 남을까요.
게다가 KTX가 가장 붐비는 주말 경부선 노선의 탑승률이라고 해봤자 80% 안팎입니다. 주중 호남선은 절반도 차지 않은 채 운행할 때가 많다고 하죠. 탑승률이 떨어질수록 승객이 나란히 앉게 될 가능성도 떨어집니다. 열차 탑승권 판매는 2인 좌석을 차례로 채워가는 방식이 아니라 열차 양쪽 창가 좌석을 우선 판매한 뒤, 복도 쪽 좌석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혹시라도 ‘예쁜 그녀’ 뒤에서 표를 사더라도 부질없다는 뜻입니다. 공연히 스토커라는 오해만 받을 따름이죠. 영화 에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비엔나행 열차에서 만나 정분을 나눈다는 이야기는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인 겁니다. ‘시크한 도시 남자’님께는 죄송하지만, 그런 일은 앞으로도 기차에서는, 쭈욱 안·생·겨·요.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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