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마차를 향해 달려갔지. 바로 그때 그 어린애들을 본 거야. 아이들은 웃고 있지 않았어. 똑바로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어. …내 눈에는 어린애들만 보였어.” 칼리아예프는 ‘인민의 적’인 대공이 타고 있는 마차에 끝내 폭탄을 던지지 못했다. 불타는 적개심도, 혁명의 대의도 한순간 얼어붙게 만든 것은 대공과 함께 앉아 있는 조카들의 얼굴이었다. 냉철한 혁명가 스테판은 나무랐다. “우리의 희생과 승리에 의해서 폭정으로부터 해방된 러시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면,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인간이 지배자와 편견들에서 해방되어 진정 신들과 같은 얼굴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어린애 둘쯤 죽는 것이 뭐 그리 문제가 된단 말인가?” 그러나 도라는 칼리아예프를 두둔했다. “만약에 우리가 던진 폭탄에 어린애들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단 한순간이라도 허용한다면, 그때야말로 (혁명) 조직의 권위도 영향력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는 거야. …파괴 행위에도 어떤 질서가 있고 한계가 있는 법이야.” 알베르 카뮈가 에서 던진 이 질문에 당신은 뭐라 답하겠는가.
2.
가자 전쟁의 현장을 전하는 외신 사진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정의감이란 걸 아직 놓지 않은 언론인이라면 그 참혹한 현실을 가장 핍진하게 전달하고픈, 식도 끝에서 치미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 골라든 사진 한 장. 한 아이의 머리가, 정확히는 머리만 보인다. 폭격에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아이의 주검을 파내는 도중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먼지를 뒤집어쓴 아이의 얼굴은 자고 있는 듯하다. 눈 감은 표정이 처참하게 평화롭다. 곧 떡국을 먹고 일곱 살이 될 내 아들만 한 머리통….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장난을 쳐대야만 직성이 풀렸을 아이의 몸뚱이는 흙과 시멘트 더미 속에 단단히 갇혀 있다. 아이의 이름은 알 수 없다(미안하다, 아이야. 네 이름을 피로 얼룩진 인류사 교과서의 한구석에나마 남겨줘야 할 텐데). 그리고 끝내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었다. 너무나 끔찍하기에. 이스라엘은 자위 차원의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폭탄과 총탄이 쏟아지는 곳엔 저런 아이들 천지다. 대의를 위해, 승리를 위해 폭탄을 던지겠는가.
3.
서부 아프리카 해안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은 끝간 데 없이 그윽하다. 가자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곳이었듯, 아름다운 풍광이 비극을 물리쳐주지는 못한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선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어린 노동자들 이야기를 전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날카로운 연장으로 카카오를 따고 무거운 짐을 이어 나르고 독한 농약을 친다. 모두 국제노동기구 조약 위반이다. 개중엔 아이들을 고된 노동으로 내모는 인신매매범들도 있다. 그 뒤에는 자식들을 팔아넘기는 무지몽매한 부모들, 그리고 수억 명의 공범이 있다. 초콜릿 값 1천원 중 카카오 재배 농민의 수익은 20원밖에 안 된다는 달콤한 수식에 취해, 불공정 무역의 산물인 초콜릿을 핥고 있는 당신과 나다. 초콜릿 속에 녹아 있는 아이들의 검은 눈물을 모른 척하는, 혹은 모르는 당신과 나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농장 대신 학교로 보낼 대안 찾기에 게으른 당신과 나다. 그런 공범 관계는 가자의 비극에도 적용된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학살극에 한마디 규탄의 목소리도 내지 못한 나도 공범이다. 저 아이들에게 웃음 한 자락, 아니 한 가닥 숨통도 틔워주지 못할 만큼 허약한 인류 문명에 대해 성찰이 게으른 게 공범 행위다. 그러니 다시 묻자. 폭탄을 던지겠는가. 초콜릿을 먹겠는가.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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