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을 키워낸 검열의 역설

‘식민지 문역’, 한기형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2019
검열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많은 사람이 조지 오웰의 ‘1984’ 속 빅 브러더를 떠올릴 것이다. 평범한 개인은 결코 다가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러나 부조리하게 간섭하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권력으로 검열을 이해한다.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박은하 기자의 묘사는 조금 다르다. 대표적인 ‘검열 국가’로 알려진 중국에서 검열은 변덕과 임기응변에 기댄다. 검열관은 언제나 과로에 시달리며, 쏟아지는 콘텐츠를 감당하지 못해 영화 등 파급력이 큰 대중문화를 콕 집어 사전에 단속한다.(‘검열관이 존재하면 벌어지는 일’, 경향신문 2026년 7월28일)
근대문학과 매체의 역사를 연구해온 한기형이 ‘식민지 문역’(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9)에서 그려내는 식민지 검열의 풍경도 비슷하다. 지은이는 식민지의 엄혹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선은 일본 ‘내지’와 다른 법의 영역, 즉 ‘법역’(法域)에 놓인 시공이었다. 법의 차이가 만들어낸 식민지 조선의 말과 글의 영역, 곧 ‘문역’(文域)은 왜소하고 뒤틀려 있었다. 3·1 운동 이후 조선어 신문과 잡지의 발행이 허용됐으나 툭하면 압수와 삭제, 발행 정지에 시달려야 했다. 1926년 4월 총독부 경무국에 도서과가 세워진 뒤 검열은 한층 강력하고 촘촘해졌다. 심지어 총독부는 한문으로 쓰인 족보와 문집까지 검열했다.
체계화된 검열은, 그러나 뜻하지 않은 우회로를 제공했다. 기준이 뚜렷해진 만큼 여기에 ‘확실하게’ 걸리지만 않으면 검열을 비켜 갈 수 있었다. 총독부 역시 식민 권력에 직접적 위협이 됐던 사회주의 관련 출판물이 아니라면 매뉴얼에 따라 관성적으로 처리했다. 그 결과 1930년대에 이르면 검열 원칙이 점점 정교해졌음에도 식민지 조선의 출판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식민 권력은 시가부터 신문에 이르는 온갖 텍스트를 검열하는 기준을 만들 역량은 있었으나,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의 모든 말과 글을 통제할 역량은 없었다. 그 기준조차 그때그때 달라지는 자의적이고 가변적인 것이었다.
총독부의 검열이 정교해질수록,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식민지인의 테크닉도 늘어갔다. 동아일보는 3·1 운동에 대한 판결문과 공판기를 실어 대중에게 운동의 주체와 경과에 대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전달했다. 시인 권환은 ‘삼십분간’(1932)에서 화자가 동료들과 함께 읽은 삐라를 점선으로 처리해버렸다. 총독부가 문제가 있는 표현을 ×××나 ··· 등의 복자(伏字)로 지워버리자, 자신이 먼저 복자를 써버림으로써 ‘불온성’을 드러냈다. 심지어 일본인 슈도 유헤이는 총독부가 명확한 근거 없이 잡지 조선사론(朝鮮私論)의 발매와 반포를 금지하자, 천황의 칙어가 실린 잡지를 압수했으니 ‘불경죄’라며 항의했다.
검열의 ‘바깥’을 엿본 문학인들도 있었다. 김기진은 조선의 전통적 서사 양식을 ‘대중소설’로 끌어안아 사회주의 문화운동의 배후를 두터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춘향전’ ‘심청전’ 등의 ‘이야기책’이 근대 인쇄술에 힘입어 해마다 수만 권씩 팔리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염상섭은 ‘만세전’(1924) 이후 그간의 귀족적 자의식을 버리고 ‘통속’의 세계로 내려가 더 많은 대중과 만나고자 했다. 지은이는 한국 근대문학이 왜소해진 원인을 찾고자 검열 연구를 시작했으나, 책을 쓰며 식민지 문학의 겉모습 뒤에 다 알려지지 않은 숱한 세계가 남아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검열로 인한 말과 글, 생각의 뒤틀림을 응시하는 것과 검열을 이용하거나 우회해 피어난 여러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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