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2025년 12월29일 서울 종로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며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때아닌 ‘탕평’이 화제다. 2025년 12월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국민의힘 출신인 이혜훈 전 의원을 임명하면서다. 누군가는 이번 인사가 이재명식 실용정치의 진수이자 21세기 탕평정치라며 호평한다. 반면 이 전 의원의 성소수자·무슬림 혐오 발언,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문제 삼아 ‘잘못된’ 탕평이라며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탕평이란 반대 정파 인사를 요직에 임명하는 것이라는 인식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최성환의 ‘영·정조대 탕평정치와 군신의리’(신구문화사 펴냄, 2020)에 따르면, 이는 탕평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탕평의 시대라 불리는 영조와 정조의 치세야말로 당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탕평이란 허구에 불과하고 노론과 소론, 남인이 사익을 추구하며 분열을 거듭했단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탕평은 각 붕당이 서로의 의리를 정연하게 내세우며 대결하는 가운데, 군주의 조정 아래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영조와 정조가 마주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영조는 왕위에 오르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데다, 평생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음해에 시달렸다. 정조는 뒤주에 갇혀 죽은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붕당에 따라 임금에 대한 충성까지 갈리는 가운데, 두 임금은 신하들의 사사로운 의리보다 한 차원 높은 공공의 의리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강압과 명령이 아닌, 지난한 설득과 조정을 통해 이뤄졌다.
물론 그 과정은 자못 달랐다. 영조의 의리란 절충과 균형에 가까웠다. 그는 경종 시절 세제(世弟)인 자신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라고 요구했다가 소론에게 죽음을 맞이한 ‘노론 4대신’ 중 두 명은 충신이고 두 명은 역신이라 정리했다. 노론과 소론 사이 일종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시도였지만, 이는 다름 아닌 영조 자신의 정당성을 훼손했다. 결국 영조는 역신이라 평한 나머지 두 대신도 신원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세자에 대해서도 아비로서 사적인 슬픔과 그럼에도 나라를 위한다는 공적인 대의를 어정쩡하게 이어 붙이는 데 그쳤다.
반면 정조는 모든 붕당을 아우르는 하나의 의리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 첫 단추가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의리를 교묘히 뒤집는 것이었다. 공적인 대의야 그렇다 쳐도 아들로서 슬픔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냐는 논리였다. 그렇게 정조는 영조의 ‘대의리’를 준수한다는 명분 아래 각 붕당의 영수들과 치열하게 논쟁하며 자신의 의리를 확립해갔다. 정조가 공인한 ‘의리주인’ 역시 노론의 김종수와 남인의 채제공처럼 붕당의 의리를 강하게 내세우며 상대 당파와의 충돌을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최성환은 정조 말기 거의 완성된 탕평이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예기치 못하게 붕괴됐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정조의 탕평이 실패한 이유는 오히려 그 성공 때문이 아닐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순조 대에 노론 벽파가 영조의 의리를 내세워 정조의 의리를 부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정조 자신이 영조의 의리와 정조의 의리는 하나라고 천명했기 때문은 아닌가. 어렵고 좁은 길이지만, 정치공동체의 건강함은 하나를 지향하되 완전한 하나 되기는 거부하는 아슬아슬한 긴장과 균형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만 갈래의 시내와 모든 강물에 비치는 하나의 달빛. 후보 시절 여러 차례 정조를 소환한 이재명 대통령이 어느 쪽도 소홀히 여기지 않기를 기원한다.
유찬근 대학원생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영·정조대 탕평정치와 군신의리’, 최성환 지음, 신구문화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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