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 조성윤 지음, 당산서원 펴냄, 2019년
요즘 부쩍 종교의 위력을 실감한다. 다소간 과장이 섞여 있겠지만 한국과 미국의 극우 기독교 네트워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까지 연줄이 닿는다고 한다. 통일교는 한·일 양국의 주요 정치인에게 전방위 로비를 펼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오늘날 종교는 너무나 쉽게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치를 혼란에 빠뜨리고 시민사회를 마비시킨다. 이제 사람들은 세속국가가 정해놓은 선을 넘는 종교를 비판하기보다는 선 자체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애초에 종교란 그럴 수 있는 것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사회학자 조성윤의 ‘1964년 어느 종교 이야기’(당산서원 펴냄, 2019)는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난감한 질문을 던진다. 지은이는 일본의 불교계 신흥 종교 창가학회에 주목한다. 흔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는 주문으로 알려진 창가학회는 재일조선인을 통해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도시빈민과 소수자에 대한 선교에 적극적이었던 창가학회는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에게 삶의 위안을 제공했고, 이들이 한국의 친척들에게 신앙을 전파했다. 선교사도 없이 자발적으로 믿음을 키워간 한국 천주교와 유사한 경로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1964년 1월17일 내무부 치안국 정보과는 문교부를 움직여 창가학회에 대한 종교심의위원회를 열었다. 위원회에 모인 불교계와 개신교계 인사는 창가학회를 반민족적이고 반국가적인 왜색(倭色) 종교로 규정했지만, 다양한 반대론과 신중론도 함께 나왔다. 그럼에도 치안국 정보과의 주문대로 종교심의위원회는 창가학회가 “국시(國是)에 위배되고 반민족적”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포교를 금지했다. 치안국 정보과가 식민지 시기에 이른바 ‘민족종교’를 탄압하던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역할을 이어받은 곳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퍽 아이러니하면서도 일관된 행보였다.
정권의 노골적인 탄압에 창가학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변호사를 고용해 당국의 포교 금지 조치에 소송으로 맞섰지만 끝내 패배했다. 당시 창가학회는 한국 신도 수가 채 3천 명도 되지 않던 군소 종교였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권이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앞두고 민간의 반일 감정을 창가학회에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직 그것뿐이었을까. ‘과잉 진압’의 이면에는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창가학회의 네트워크, 언론과 공권력을 동원해 밟아도 밟아도 믿음을 버리지 않던 신도의 결연함에 대한 국가의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물론 국가와 종교가 언제나 대립하지만은 않는다. 불교와 개신교 등 기성종교는 국가가 무엇이 올바른 ‘정교’이고 삿된 ‘사교’인지 판결해주기를 청했다. 기실 종교심의위원회부터 통일교와 전도관을 사교로 지정해달라는 개신교계의 요구에서 출발한 기구였다. 창가학회 역시 일본에서는 공명당(公明黨)을 결성해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다. 종교는 개인의 내면에 얌전히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고 조직하며, 스스로가 믿는 ‘올바른’ 세상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분투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종교와 불화하지만, 때론 종교가 국가의 권위를 등에 업거나 정치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런 복잡한 역학을 염두에 둬야 오늘날 극우 기독교, 통일교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성윤은 국가의 종교 탄압과 군소 종교를 향한 사회적 편견을 비판해왔지만, 그의 책은 이를 넘어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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