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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공고생은 왜 지금 박정희를 향수할까

기능직 노동자 키운다면서 기회는 학벌에 묶어놓는 사회를 향해 던지는 질문
등록 2026-03-19 20:38 수정 2026-03-26 08:00
2010년 11월4일 오후 서울 용산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제41회 특성화고 기능경진대회 자동차페인팅 부문에 참가한 학생들이 도색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11월4일 오후 서울 용산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제41회 특성화고 기능경진대회 자동차페인팅 부문에 참가한 학생들이 도색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 몇 년 사이, 거리를 걷다보면 부쩍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인공지능(AI)과 코딩을 가르치는 사설 교육기관이다. 일반적인 학원의 형태를 취하는 곳이 많지만, ‘우아한테크코스’나 ‘삼성 SW·AI 아카데미’처럼 기업이 취업과 연계해 운영하는 곳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꼭 학교를 거치지 않고도 첨단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교육기관은 일견 긍정적이다. 실제로 대기업의 사설 교육기관에 문과나 고졸 출신이 입학했다고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엘리트’ 교육기관을 제외한, 대다수 사설 교육기관은 어떨까? 이들 교육기관이 정말 배움과 성장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장미현의 ‘한국 기술노동의 사회사’(역사비평사 펴냄, 2026)는 학력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기능직 노동자들의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다. ‘장이’라고도 불린 이들에 대한 관심은 박정희 정부 시기에 본격화했다. 기능직 노동자 양성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부서는 1963년 발족한 노동청이었다. 비록 노동자 권익 보호가 아닌 인력개발이 목적이었을지언정, 노동청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전문 기술을 갖춘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진지하게 추진했다. 능력이 학력에 우선하는 사회는 비단 노동청만이 아닌 당시 많은 사람의 이상이기도 했다.

한국기술노동의사회사. 역사비평사 펴냄

한국기술노동의사회사. 역사비평사 펴냄


우여곡절 끝에 1967년 ‘직업훈련법’이 제정됐고, 노동청은 직업훈련사업을 전담할 부서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1973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선포 이후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 직업훈련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게끔 법이 바뀌었지만, 사내직업훈련소에서 양성되는 노동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탁월한’ 기능직 노동자를 배출하는 기관은 여전히 공업고등학교였다. 1960~1970년대 활발하게 실시된 전국기능경기대회는 기능직 노동자가 기량을 펼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무대였지만, 점차 ‘명문’ 공고와 대기업의 대리전으로 변질됐다.

명문 공고에 들어가 전국기능경기대회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들 기술과 능력만으로 인정받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대회 수상자에겐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처럼 창의적인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뛰어난 능력을 펼치려면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해 불문학 같은 낯선 전공을 공부하느라 쩔쩔매야 했다. 설령 공대에 진학했어도 집이 멀다는 이유로 이른바 명문대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콤플렉스는 평생 남았다. 그렇게 능력은 학력에, 나아가 학벌에 포섭됐다.

그나마도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이후 ‘일반교육’이 중시되며 공고는 점차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기능직 노동자 양성 정책 역시 축소됐고, 이들에게 주어지던 여러 우대 정책도 폐지됐다. 197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기능직 노동자에겐 박정희야말로 ‘간판’에 상관 않고 자신들을 인정해준 유일한 지도자였다는 향수만이 남았다.

박정희를 향한 그들의 애착을 시대착오적이라며 비판할 수는 없다. 이는 한국 사회가 노동과 기술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현재 성행하는 수많은 사설 인공지능·코딩 교육기관 역시 거꾸로 그만큼 ‘간판’의 벽을 넘기 어렵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능력과 학력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학교를 거치지 않고도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학교를 ‘간판’과 상관없는 배움의 장으로 바꿔야 할까? 이 책은 이런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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