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일 땐 ‘분권론자’, 되고 나면 ‘대통령론자’

‘한국 민주정치의 모색과 갈등’, 다카시로 겐토 지음, 박영사 펴냄, 2026
개헌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26년 7월28일 조정식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론에 따라 현직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한 개헌도 추진할 수 있다고 답한 게 시작이었다. 8월14일에는 청와대가 “국회의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제 개헌이 국민적 수용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며 불을 지폈다. 뒤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6월과 8월 개헌에 우호적인 국민의힘 의원들과 골프를 치거나 제안했단 사실이 알려지며 여야 모두 난리가 났다.
일각에선 청와대발 개헌 논의를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는 친명계의 궁여지책, 혹은 대통령의 보수 포섭 시도로도 치부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보다 훨씬 상황이 나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시절 비슷한 내용의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내놓았다. 두 사람 모두 대권 후보 시절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자며 ‘분권’을 강조했지만, 정작 대통령이 된 뒤에는 미국식의 ‘완전한’ 대통령제에 가까운 개헌을 추구했다. 따라서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어떤 관성이 이들을 대통령제로 기울게 했는가?
다카시로 겐토가 쓴 ‘한국 민주정치의 모색과 갈등’(박영사 펴냄, 2026)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1994년생 지은이는 이승만 정권기를 독재 대 민주주의의 이분법으로 보는 고전적 시각에 의문을 던진다. 비록 잔혹한 제노사이드를 저질렀고 정적을 가혹하게 탄압했으나, 이승만은 민주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성격이다. 유교적 천명사상과 ‘일군만민’의 영향을 받은 이승만은 최고지도자가 인민의 ‘민의’에 의해 신임받는 대통령제를 선호했다. 지은이는 4·19 혁명기 이승만이 ‘선선히’ 대통령에서 물러난 것도 민의가 떠났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 여긴다.
그런 만큼 이승만에게 자연히 정당 같은 중간단체는 민의를 흐리는 장애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국회는 그저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면 될 뿐, 자체적인 심의와 의사결정 기능은 필요 없다는 게 이승만의 생각이었다. 반면 초기 이후 줄곧 이승만과 대립했던 민주당계 정치인들은 국회 안에서 다양한 정당이 경쟁 및 협조를 하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내각제를 도모했다. 따라서 이승만 정권기 정치적 갈등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추구하는 대통령과 고유의 권한과 역할을 강조하는 국회를 사이에 두고 벌어졌다.
당시 정치인 대부분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대통령과 국회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에 따라 다르게 움직였다. 가령 조봉암은 이승만과 협력하던 시절에는 내각제에 반대했지만, 진보당을 창당한 뒤에는 내각제를 당론으로 내걸었다. 1950년대 후반 국회의 자유당 온건파는 대통령 이승만을 ‘패싱하고’ 야당과 협력해 내각제 개헌을 도모하기도 했다. ‘독재 대 민주주의’라는 전선보다 ‘대통령 대 국회’라는 전선이 훨씬 강하게 작동했다. 똑같은 대통령직선제가 1952년 ‘발췌 개헌’ 때는 독재를 위한 개악으로 비판받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는 민주화의 성취로 평가받은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지은이는 이승만 정권을 독재로만 평가한다면 이후 한국 정치에 그가 미친 영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째서 모든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는 ‘분권론자’였다가 당선 이후에는 ‘대통령론자’가 되는가? 윤석열이 국회의 ‘입법 독재’에 맞서 계엄이라는 ‘결단’을 내렸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재명은 전국 방방곡곡을 방문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타운홀 미팅’을 선호할까? 답을 찾기 위해선 이승만에게서 시작된, ‘대통령제 대 내각제’ 역사를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할지 모른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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