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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를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폭도론’과 ‘민주화론’이 담아내지 못하는 해방의 경험과 운동의 역동성 포착해야
등록 2026-06-19 08:39 수정 2026-06-25 14:37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지음, 오월의봄 펴냄, 2012년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지음, 오월의봄 펴냄, 2012년


그 어느 때보다 5월 광주를 많이 떠올린 몇 주였다. 2026년 5월18일, 한국 스타벅스가 ‘탱크데이’라는 이름으로 텀블러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5월18일’과 함께 놓인 탱크는 누가 봐도 5월 광주에 대한 조롱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광주는 6·3 지방선거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을 규탄하는 청년들의 시위에도 등장했다. 전국 수많은 대학에서 성명문 발표가 잇따르는 가운데, 호남권 대학들에선 투표지 부족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가 5월 광주의 ‘민주주의 정신’을 잇고 있다고 주장했다. 1980년으로부터 46년이 지났지만, 5월 광주는 여전히 무질서한 폭동 아니면 신성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양극단의 이름밖에 부여받지 못한다.

5월 광주를 어떻게 이름 붙일 것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정치학자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오월의봄 펴냄, 2012)은 5·18에 ‘절대공동체’란 이름을 제시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5월 광주는 “사유재산도 없었고, 목숨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고, 시간 또한 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공동체’야말로 5·18에 걸맞은 이름이라며 상찬을 아끼지 않는 수많은 목소리는 최정운이 바로 뒤이어 5월 광주가 “말세의 환란이었고 동시에 인간의 감성과 이성이 새로 태어나는 태초의 혼미”였다고 말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최정운에게 절대공동체란 결코 영속할 수 없는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다.

최정운은 5월 광주에 어떠한 이름도 붙이기를 거부한다. 5·18에 주어진 여러 이름, 가령 폭동이니 민주화운동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5월 광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길 거부했다.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광주 시민들을 구타하고, 난자하고, 겁탈했다. 압도적이고 원초적인 폭력 앞에 광주 시민들은 서로 연대해 ‘인간으로’ 맞서고자 했다. 절대공동체는 이렇듯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 되어 서로의 존엄을 지키고 주권을 행사하고자 한, 말세적 현실에 강림한 “성스러운 초자연적 체험”이었다.

따라서 절대공동체는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계엄군이 물러가고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한 ‘해방 광주’의 바로 그 순간부터 균열과 동요가 일어났다. 너나 할 것 없이 무명의 동등한 인간으로 존재했던 시민들은 이제 서로의 이름과 소속을 물었다. 노동자와 부랑자, 넝마주이가 주류였던 시민군과 대학생 사이 갈등도 불거졌다. 광주의 중산층과 지식인, 유지 그룹은 이쯤에서 투쟁을 멈춘 뒤 무기를 반납하고 질서를 회복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그럼에도 최후의 시민군은 도청을 사수하고 결연히 죽기를 택했다. 이로써 5·18은 ‘광주 사태’로 남지 않을 수 있었고 1980년대 운동과 지성, 예술의 수원(水源)이 됐다.

책 말미에서 최정운은 5·18에 대한 그간의 연구가 사실 규명에만 매달려왔다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히 5월 광주에 걸맞은 이름, 곧 해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운동의 순간에 찰나와도 같이 찾아오는 해방의 경험과, 그것이 이내 사라지며 운동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어떻게든 포착해야 한다는 호소에 가깝다. 단 하나의 ‘올바른’ 이름을 섣불리 찾기보다 끝내 실패할 줄 알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최정운이 이야기한 ‘우리의 사회과학’이 그저 ‘한국산 이론’을 창안해야 한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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