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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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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이’를 만드는 건 누구인가?

퇴근해 입꼬리 올리는 일조차 힘겨운 부모들을 위한 변명
등록 2025-10-09 21:18 수정 2025-10-15 08:09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소셜미디어 계정을 해킹당했다. 연동된 전자우편 계정이나 전화번호까지 다 바뀐데다 도움말을 따라 셀피 동영상까지 찍어 올렸는데도 내가 나라는 걸 도저히 증명하지 못해 로그인에 실패했다. 3년 가까이 아이와의 일상을 수시로 올렸던 계정이었지만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핑크빛 카메라 아이콘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도 잠시, 오히려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자발적으로 내 정보를 노출하고 만인으로부터 받는 감시를 자청하며 스스로를 통제하던 ‘디아이와이(DIY) 파놉티콘’에서 이제 나는 출소했다.

개별 사정 무시한 채 부모 손가락질

계정을 운영할 때는 아이랑 어디 갈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내 게시물이 그저 유행 따라 인파에 휩쓸려 돈만 쓰고 온 주말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부모의 신념이나 교육관을 보여주는 활동인지, 아이에게 새로운 정서적 자극을 주는 곳인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충분히 즐겼는지 스스로 검열해 사진 몇 장으로 증명하려 애썼다. 설탕이 잔뜩 든 음료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모습은 아예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좋은 엄마처럼 보이고 싶었던 내 욕심도 컸지만, 익명의 평가와 훈수에서 도통 자유로울 수 없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모방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역할이야 말도 못하게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부모를 늘, 너무 쉽게 평가하고 처벌한다. 육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모뿐 아니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시로 제보되는 ‘막장 부모’의 행태는 손쉬운 손가락질의 대상이 돼 다른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 상황이 어떻든 반면교사보다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내며 이 사회의 매뉴얼대로 아이를 키우도록 종용한다.

하지만 모든 부모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무항생제 유기농 한우를 사다가 딱 오늘 먹일 분량만큼만 미트볼을 만들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부모가 있고,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해도 얼른 아이 반찬으로 내줄 수 있는 대용량 비엔나소시지를 사야만 하는 부모가 있다. 돈이 없으니 종일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고 자신을 돌볼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부모는 소시지뿐 아니라 우유, 달걀 가릴 것 없이 모든 식재료를 항상 제일 싸고 유통기한이 긴 것으로 골라야 할 것이다. 한정된 재화로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려면 아이와 길게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함을 알면서도 온종일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퇴근하면 입꼬리를 겨우 올리는 일조차 힘겨운 부모도 있을 것이다.

자원 부족한 부모에게 돌봄 인프라를

무조건 부모 탓, 특히 엄마부터 욕하고 보는 시선은 양육 당사자를 위축시킨다.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가 출산율을 떨어트린다는 비판은 일견 맞는 구석이 있다. 돈이든 시간이든 늘 자원이 부족한 부모가 져야 할 부담만 갈수록 커지는 현재의 구조를 살피지 않고, 모든 문제를 개별 부모에게 귀속시키면 무서워서 도무지 부모 노릇을 할 수가 없다. 남과 다른 조건을 가졌거나 약하고 아픈 아이라도 낳는다면 그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부모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잔인하고 무책임한 어른을 처벌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든 부모를 응원해야 한다. 섣불리 예비 아동학대범의 혐의를 씌우기보다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공동체의 돌봄 인프라를 내실 있게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금쪽이’를 만들지 않는 길이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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