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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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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읽자마자 까먹을 걸 알면서 읽었다

하나도 재미없는 ‘독서노트’니 ‘독후감’… 책 읽기에는 오직 ‘즐거움’만 있다
등록 2024-08-17 14:47 수정 2024-08-18 21:32
티브이엔(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속 조희자(김혜자)에게 어느 날 인지저하증이 찾아온다. 인지저하증이 있는 사람이 책을 읽는다는 건 ‘읽자마자 까먹는 읽기’가 되기도 한다. 과거를 회고하는 것도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아닌, 읽는 행위 자체가 몸에 새겨놓은 기도문일지도 모른다. tvN 유튜브 채널 갈무리

티브이엔(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속 조희자(김혜자)에게 어느 날 인지저하증이 찾아온다. 인지저하증이 있는 사람이 책을 읽는다는 건 ‘읽자마자 까먹는 읽기’가 되기도 한다. 과거를 회고하는 것도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아닌, 읽는 행위 자체가 몸에 새겨놓은 기도문일지도 모른다. tvN 유튜브 채널 갈무리


가시할머니(처조모) 한맹순 권사님은 107살까지 사셨는데, 말년에 가벼운 인지저하증(치매)을 앓으셨습니다. 저처럼 둘째 손주사위 따위는 누군지도 몰라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셨죠. 설날에 용돈을 모아 드리면 어딘가에 몰래 숨겨뒀다가 다음날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시죠. “누가 내 돈을 훔쳐 갔다!” 난초처럼 얌전히 계시던 분이 번개탄처럼 갑자기 화를 내십니다. 난리가 납니다. 하루가 시끄러워지죠. 이불장과 옷장과 가방을 다 뒤집어놓으십니다. 주로 며느리를, 가끔은 손녀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갑자기 범인으로 몰린 장모님은 또 저러신다며 속상해하시죠. 인지저하증 환자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도둑망상’입니다. 나이 든 사람의 기억상실이겠거니 했습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기억도 못하실 거면서 왜 숨기셨냐고 핀잔을 놓거나 참다 참다 버럭 화를 내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곤 했죠.

그런데 이지은 작가의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라는 글에서 이런 상황을 ‘문제행동’으로 보지 말라고 하더군요. 도둑망상이 ‘환자가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나 상황을 다른 이야기들로 채우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할머니의 행동이 이해됐습니다. 그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했을지 알게 됐습니다. 책에서 작가는 ‘예방’, (간병비 지원과 같은) ‘복지’, (가족이냐, 간병인이냐 하는) ‘누가’ 수발을 들 건지의 문제로만 인지저하증을 보지 말라고 합니다. 인지저하증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게 아니라, 인지저하증 이후도 ‘삶’이라는 것이죠. 삶은 타인에게 의존하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이어집니다. 인지저하증 환자도 그를 돌보는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갑니다. 인지저하증을 준비한다는 것은 자신을 돌봄받는 몸으로 만드는 일인데, 종이접기처럼 손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갖고 체력을 기르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랍니다. 인지저하증 ‘이후’의 몸만들기인 거죠. 인지저하증이야말로 돌봄과 의존이 삶의 근본 조건임을 알게 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을 위한 행위

얘기가 길어졌군요. 만약 이지은 작가의 글이 실린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라는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개인적이고 아린 추억에 머물렀을 겁니다. 책을 보고 나서야 추상적으로만 이해했던 ‘관계’ ‘상호작용’ ‘의존하는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만져지더군요.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어떻게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우연히 읽게 된 책 덕분에 장애를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장애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장애, 질병, 나이 듦, 돌봄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그것이 삶의 문제, 철학의 문제, 존재의 문제, 차별의 문제, 정치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더라고요. 즐겁더군요. 그런 시야는 책이 아니면 얻기 힘듭니다.

할머니 얘기를 더 이어가보겠습니다. 인지저하증이 있는데도 할머니는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입술을 달싹달싹하며 계속 성경책을 ‘읽었습니다’. 방금 뭘 읽으셨냐고 여쭤보면 답하지 못했습니다. 읽자마자 까먹는 읽기였던 거였습니다. 할머니에게 읽기는 무엇을 알기 위하거나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지금 성경을 읽고 있다’는 그 자체를 위한 것입니다. 과거를 회고하는 것도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아닌, 지금 읽는 것으로 끝인 거죠. 읽는 행위 자체가 몸에 새겨놓은 기도문일지도 모릅니다.

의문이 생겼습니다. ‘읽는다’는 건 뭘까? ‘올바른 읽기’ ‘정상적인 읽기’란 있는가? 할머니의 책 읽기는 읽기인가, 아닌가?

대치동 학원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졸업’에서 일타 강사 서혜진의 대사가 알려준 국어 공부법이 있죠. “국어 공부가 안되는 것은 읽는 방법을 몰라서야. 읽으면 단어 하나하나에서, 행간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거든. 그게 국어의 매력이야. 읽을 줄 알게 되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다보면 궁금해지고 궁금해지다보면 알아서 공부하게 돼 있어.”

읽으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글 읽기가 너무 힘겹습니다. 책을 펼치고 있으면, 남들이 보기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이게 뭔 말이지? 이렇게 안 읽히는 건 내 머리 탓일까?’ 하며 멍하니 있습니다. 한 시간 거리의 전철을 타고 가는데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의기소침해하며 내린 적도 있습니다. 예전부터 책 읽기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너무 느리기도 하고, 이해도 잘 안됐습니다. 활자 중독의 ‘소질’은 있어서 어딜 가든 책을 들고 다닙니다. 문제는 읽히지 않는다는 거죠. 기억력이 나쁜 차원이 아니라 방금 읽은 단어, 문장, 단락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공부가 직업인 사람이 읽기가 힘겹다니 답이 없는 상황이네요.

읽기에는 단일한 공통점이 없다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책 맨 끝 장에 가서 남은 페이지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기도 합니다. 책을 펼치면 잠이 오고, 책을 놓으면 말똥말똥해집니다. 단어를 읽지만 마음에 박히지 않아 같은 단어를 몇 번이나 다시 읽습니다. 빨강펜, 파랑펜, 형광펜으로 밑줄도 긋고, 중요한 문장 위엔 별을 다섯 개 그려놓고, 정말 중요한 곳은 반으로 접어놓기도 합니다. 그렇게 온갖 수단을 써봐도, 한 달 보름만 지나면 ‘내가 그 책을 읽었던가?’ 하는 원초적 질문이 떠오릅니다.

임시 대책은 ‘난초 물 주기’ 같은 겁니다. 읽자마자 술술 빠져나가니 어쩔 수 없이 계속 물을 주듯 새로운 책을 읽어나가는 거죠. 근본 대책이 될지는 모릅니다만, 여하튼 아직까진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상을 합니다. ‘말글 공부가 직업이고 책이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해왔는데, 언어를 잃어버린다면 나는 무엇인가?’ 막막하고 암담하군요.

어떤 이는 책을 펼치면 양쪽 페이지가 한눈에 들어와 금방 내용 파악이 된다고 합니다(속독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400쪽 가까운 책을 1시간 만에 읽었다는 사람을 본 적도 있습니다(그것도 밑줄을 치면서요. 언어 영재죠). 글자나 문장에서 색을 느끼거나 냄새를 맡는 사람도 있습니다. ‘회장’이란 단어에서 딸기맛을, ‘참석자’란 단어에선 통닭맛을 느끼는 사람도 있더군요.

우리는 읽기를 텍스트를 보고 줄거리를 이해하는 단순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읽기는 단일한 공통점이 없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활동입니다. 사람들이 글(텍스트)을 만나 상호작용하는 데는 각자의 인지와 감정, 사회적 맥락 등 다양한 요소가 개입합니다. 난독증, 과독증, 실독증, 공감각, 환각, 치매 등의 읽기장벽을 가진 사람들을 관찰한 책에 따르면 읽기 과정이 단순하지도 단일하지도 않다고 합니다. 즉, 읽기는 다 다르다는 겁니다. 그저 ‘같은 텍스트’를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해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읽기 과정은 지각에서 시작하는데,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책을 지각하고 읽는다는 겁니다.

하다못해 저는 서체에 자못 민감합니다. 내용과 상관없이 고딕체로 된 글은 딱딱하고 완고한 느낌을 받아 글에 집중을 잘 못합니다. 이 글처럼 명조체를 좋아합니다.(글씨체가 유발하는 정서를 가장 잘 고려한 장르가 웹툰입니다.) 읽기는 처음부터 다를 수 있다는 거죠. 똑같은 텍스트라도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는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읽으면 됩니다.(매슈 루버리, ‘읽지 못하는 사람들’)

영화 ‘더 리더’에서 10대 소년 마이클(다비트 크로스)은 우연히 30대 여인 한나(케이트 윈즐릿)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나는 마이클이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이별 뒤 먼 훗날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한나를 다시 본 그는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책을 읽은 녹음테이프를 보낸다.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더 리더’에서 10대 소년 마이클(다비트 크로스)은 우연히 30대 여인 한나(케이트 윈즐릿)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나는 마이클이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이별 뒤 먼 훗날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선 한나를 다시 본 그는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책을 읽은 녹음테이프를 보낸다. 누리픽쳐스 제공


당신이 책을 읽는 이유는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얘기는 숱하게 들어왔을 겁니다. 저는 이 얘기에 그리 동의하지 않습니다. 읽기와 쓰기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갖습니다. 간단히 말해 읽기의 목적은 즐거움이고, 쓰기의 목적은 간절함입니다. 읽기의 즐거움은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경험하는 데서 옵니다. ‘나’라는 주체를 잠시 잊고 타인의 몸과 시선으로 세계를 만나는 겁니다. 시대를 벗어나고 장소를 뛰어넘어 성별, 나이, 직업, 성격, 기질, 취향이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와 장면을 맞닥뜨리는 거니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현실세계에서 우리는 결코 타인이 될 수 없습니다. 독서는 그런 것입니다. 타인이 되는 즐거움!(호박을 기르면 호박잎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 사고방식이 다양해지고 생각의 밀도가 높아질 수 있긴 합니다.)

반면에 글쓰기는 즐거움보다는 내 얘기를 제발 들어달라는 간절함 때문에 시작합니다. 다른 인물이 ‘되기’보다는 내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 애씁니다.

물론 많이 읽은 사람이 글을 잘 쓸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을 풀어가는 방식이 자연스럽고 표현이 세련되고 어휘력도 뛰어나겠죠. 하지만 그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나 개구멍을 하나 만들면 됩니다. 쓰기 위한 읽기는 어느 단계에서는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읽기의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책 읽기는 현실적 효용성은 별로 없습니다. 오직 즐거움만 있을 뿐입니다. 그게 목적입니다. 독서노트니, 독후감이니, 독서토론이니 하는 활동을 위한 읽기는 재미없습니다. ‘뇌섹남, 뇌섹녀’가 되기 위한 거라면 견뎌야 할 시간이 너무 깁니다. 누구를 ‘사랑하라’고 하거나 누구를 ‘도와주라’고 하면 좋던 마음도 사그라들듯이, 읽기도 그렇습니다. 시켜서 읽을 수 없습니다. 작가이자 교사인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처럼’이란 책에서 ‘독자의 10대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오직 즐거움을 위한 읽기

어떻습니까? 한국에서 행해지는 독서지도와는 정반대죠? 저는 다니엘 페나크 편입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읽지 마시고,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이제 그럴 때가 됐습니다.

다음 시간엔 독서와 글쓰기를 연결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독자 글]

‘사물이나 동식물을 주어로 쓴 글(의인화)’을 여섯 분이 보내주셨습니다. 영희님은 특유의 무심한 문체로 가방이 글쓴이와 얼마나 밀착돼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글을 쓰셨습니다. 공교롭게 선옥님도 가방을 주인공으로 쓰셨는데, 가방에 이것저것 많이 넣어 다니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게다가 가방 때문에(!) 연애를 포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군요. 정선님은 아파트 풀밭에 버려진 군자란을 다시 화분에 심었더니 3년 뒤에 화려한 꽃을 피웠다는 반가운 얘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준준님은 전기를 저장한 채 하루 종일 처박혀 있다가 저녁에 휴대전화에 밥을 먹이고 다시 가방 속에 있어야 하는 보조배터리의 애환을 써주셨습니다. 풀레님은 부부가 야구와 함께 즐기는 무알코올 맥주가 느낄 자부심을 경쾌하게 써주셨습니다.

이번호에는 담이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전자기타가 주인(연주자)을 섬세하게 감지하며 함께 공연 준비를 하는 모습을 요령 있게 쓴 글입니다.

 

Ready, Sound.

딸깍, 연결선이 꽂히면 그 사람의 세상이 흘러 들어온다. 내 몸에 퍼지는 소리에는 주인이 담긴다.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어깨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성격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연주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나의 임무는 그가 설정한 대로 내보내기만 하면 된다. 주인은 내게 두 가지를 정해준다. 소리를 얼마나 크게 질러야 하는지와 목구멍을 어느 정도로 비틀어야 하는지. 나는 목을 한껏 조이고 찢어지는 음색을 발사할 때가 제일 신난다. 하지만 금방 지쳐버린다. 잠깐이라도 농땡이를 피우면 성질 고약한 주인은 곧장 내 머리를 뚜들기거나 몸을 발로 차버린다. 안 그래도 이 습기 가득한 연습실에서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부터 오기 시작한 여자애 하나가 있다. 왼손으로 지판을 집는 정확도가 떨어지고 피크가 여섯 줄에 고르게 닿지도 않으며 오른 손목이 굉장히 뻣뻣했다. 초보였다. 삐걱대는 음을 고스란히 내야 한다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공연이 한 달 남았다’는 얘기가 어깨너머로 들렸다. 너무 놀라 삐익- 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내 몸을 타고 나오는 소리에서 그 애의 표정을 읽었다. 긴장한 손의 움직임과 불안정한 박자 위에서 흔들리고 있을 눈동자, 그 속에서 더 요동치고 있을 마음이 함께 들려왔다.

수준에 맞는 쉬운 곡으로 하지, 했던 생각은 무안하게 지워졌다. 그 애는 일주일에 한 번 올 때마다 놀랍도록 성장해 있었다. 영영 집히지 않을 것 같던 C#m 코드를 점점 단단하게 잡았으며 고수나 할 법한 솔로 피킹을 그럴싸하게 구현해냈다. 손가락에 서려 있던 좌절이 걷히고 자신감과 뿌듯함으로 변한 게 느껴졌다. 완벽함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나도 덩달아 신나서 소리를 쭉쭉 뽑아냈다.

딸깍, 연결선이 분리되고 나면 연주도 감정도 들리지 않는다. 그 애가 어떤 공연을 펼칠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컨디션을 회복하며 기다릴 뿐이다. 또 다른 세상을 가진 다음 주인을. (담이님)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이번에는 책을 추천하는 글을 써보겠습니다. 서평이라고 하면 좀 무거운 느낌이 드니, 즐겁게 읽을 책을 친구에게 소개한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책의 흐름이나 주제, 기억에 남는 문장 등을 소개하면서 읽어보라고 권하는 글이면 됩니다. 맛집 추천하듯이, ‘맛책’ 추천 부탁합니다.

주제: 책 추천하는 글

분량: 1천 자 정도(띄어쓰기 포함)

마감: 2024년 8월30일

보낼 곳: han21@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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