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건 그냥 오지 않는다. 계속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 몸에 각인시키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나는 왜 매번 이렇게 글쓰기가 고통스러운가?’ 2022년 12월부터 ‘무적의 글쓰기’를 연재했으니 2년 반이 넘었군요. 꽤 긴 시간이었는데도, 변하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글쓰기는 왜 내 몸에 달라붙지 않는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제가 쓴 글은 언행불일치 속에서 요행히 낳은 알입니다. 몸이 바탕이 되지 않은 채로 글을 쓰다보니 매번 뒤뚱뒤뚱, 허덕허덕, 둘쑥날쑥이었습니다.
나잇값 못하는 어른 같았습니다. ‘나잇값’.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과 생각. 나잇값을 하는 사람은 줏대 있는 판단과 책임, 타인과의 공존, 기다림과 유연함 같은 걸 갖췄겠죠.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은 철부지처럼 내키는 대로 행동하거나 밑도 끝도 없이 고집을 부립니다. 자기 감정과 기분에 따를 뿐, 일관성이 없고 융통성은 더 없습니다. 타인이 처한 형편에 따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유연함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어린 사람들이 기댈 만한 어른의 풍모를 갖지 못합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나잇값을 하는 게 아닌데도, 다들 세월과 경험이 쌓이면 자동으로 나잇값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했다고 다이어트가 자동으로 되지 않습니다. 숨이 턱에 닿을 듯이 달리기도 하고, 땀나고 싫은 동작도 참고 해야 그나마 배도 안 나오고 덜 별로인 사람이 됩니다. 나잇값을 하기 위해서는 애를 써야 합니다. 글쓰기도 애를 써야 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자주 썼을 뿐, 글쓰기 수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에 안주했던 거죠. 몇 달에 한 번 들어오는 원고 청탁 외에 기본적으로 매주 한 편 쓰기를 7년, 매달 한 편 쓰기를 2년 반 동안 했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자기만족에 빠졌습니다. 제자리걸음을 즐기고,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작업이야’ ‘글은 마감이 쓰지!’ 하는 말만 외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한계 밖, 능력 밖, 경계선 밖, 울타리 밖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글을 쓰니 스스로 대견하지 않은가, 글을 쓴다는 건 다른 취미보다 조금 고상해 보이는 것 아닌가 하며 자신을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저는 글 쓰는 몸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지 않았습니다. 전력투구란 뭘까요? 문을 걸어 잠그고 책 한 권을 쓸 때까지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아닙니다. 글쓰기를 몸의 근육에 각인시키는 것에 가깝습니다. 자기를 지금보다 한 걸음 더 고양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땀 흘려 기초체력을 기르는 것에 가깝습니다.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누가 몇 번 잡아주면 이내 혼자 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다음 단계’에 대한 간절함이 있냐는 겁니다. 도약의 꿈 비슷한 것이죠. 저는 자전거를 곧잘 타게 된 초등학생 때, ‘손잡이를 잡지 않고 타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높이 들어 만세를 부르며 달리고 싶었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짐받이가 달린 큰 짐자전거를 끌고 학교에 갔습니다. 두 손을 놓자마자 기우뚱하며 땅에 꼬라박힙니다. 학교 건물 벽에 부딪혀 손등의 살갗이 벗겨져 피가 철철 나기도 합니다. 뉘엿뉘엿 해 질 녘까지 몇 날 며칠을 그랬습니다. 될 때까지! 되더라도 좁은 골목길을 달릴 정도로 완벽해질 때까지! 전력투구는 그런 겁니다. ‘손을 놓고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을 몸에 각인시키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합니다. 어디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기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인구의 절반이 넘을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기타를 구하고 악보집을 사서 띵까띵까 합니다. 자주 나오는 코드 몇 개만 익히면 웬만한 노래에 반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거기까지입니다. 기타리스트가 되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기타리스트들은 악보를 펴서 곡 연주를 하기 전에 손가락과 손목 스트레칭을 합니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메트로놈을 켜놓고 피킹(피크로 기타줄을 치는 주법)이나 아르페지오(손가락으로 줄을 하나하나 튕기는 주법)를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합니다. 훌륭한 요리사(셰프)가 되기 위해서도 평소에 칼질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손목에 힘을 뺀 상태로 칼날의 힘만으로 밀어썰기, 당겨썰기, 다지기, 채썰기, 어슷썰기, 깍둑썰기를 익힙니다. 오랫동안 해도 손목에 피로가 가지 않고 재료를 일정한 크기와 두께로 잘라야 합니다.
이에 비해 글쓰기는 ‘너무너무’ 편합니다. 악기나 요리처럼 글쓰기를 익히기 위한 연습 패턴이 딱히 없습니다. “여러분, 글쓰기는 쉬워요.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됩니다. 쓰는 순간 여러분은 작가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주변의 작가 몇 명을 취재했습니다. 언제든 글을 토해낼 수 있도록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더군요.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간절함이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뭔가를 반복적으로 한다는 겁니다.
어떤 작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상을 정리하고, 집 밖으로 나가 하늘과 나무를 보고 기도를 올리다보면 그날 쓸 글의 첫 한두 문장이 생각나곤 한답니다. 글이 막힐 때는 일부러 잠을 자거나, 밖으로 나가 조금 걷기도 합니다. 하루에 원고지 10장 쓰기를 습관으로 정해놓은 작가도 많습니다. 많이 읽고 관찰하고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은 공통적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는 평소에 책이나 사전을 읽습니다.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단어나 문장의 자극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언제 써먹을지 모르지만, 날것의 메모를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쌓아둡니다. 문장으로 전환이 안 되면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두기도 합니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는 작가도 많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10㎞를 달리는 마라톤 마니아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50살 생일 이후 매일 아침 면도칼로 머리를 밀면서 작가정신을 가다듬었다고 합니다. 산악오토바이를 탈 정도로 체력 관리에 철저합니다.
자기만의 특이(!)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누구는 방 청소를 깨끗이 한다고 하고, 누구는 조금이라도 길면 키보드 치기가 불편해서 손톱을 깎기도 합니다. ‘중성적 공간’을 즐겨 찾는 이도 많습니다. 중성적 공간이란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되, 타인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공간입니다. 밀폐된 자기 방보다는 카페나 도서관 같은 반쯤 열린 공간이 글쓰기에는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냉장고, 티브이(TV), 가족, 강아지 등등 방해물 천지에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니까요. 저도 연구실보다는 카페에서 글을 쓰면 좀더 집중이 되더군요. 컴퓨터를 두 대 쓰는 작가도 있습니다. 하나는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글 쓸 때는 ‘오프라인 컴퓨터’를 쓴다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습(習)이 될 때까지 거듭합니다.
저를 잘 아는 어느 작가는 제게 이런 면박을 주더군요. “주 3회나 합기도 수련을 하길래, 글쓰기 수련도 사람들 안 보이는 데서 그보다 훨씬 많이 하고 있는 줄 알았지.” 맞는 말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본격적으로 무엇을 쓰기 전에 그냥 자기 몸을 글쓰기에 부합하도록 단련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과 일상을 글 쓰는 몸이 되도록 재배치해야 합니다.
사는 게 그렇듯이 글쓰기에도 ‘판타지’란 건 없습니다. 그냥 한번 썼는데 멋진 글이 나왔다는 식의 ‘아름다운 드라마’ 같은 건 없습니다. 한 만큼 늡니다. 십수 년 동안 뼈 빠지게 일만 하던 노동자가 가끔 책이나 잡지를 읽으며 글쓰기의 꿈을 키웠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는 없습니다. 하루 종일 밭일만 하는 농민이 글을 잘 쓸 수는 없습니다. 학술용 논문만 쓰는 학자도 글을 잘 쓸 수 없습니다. 모질게 들리겠지만, 그게 현실(진실)입니다. ‘책꽂이 하나 만들어볼까?’ 하며 덤벼드는 손이 먹여 살릴 입이 있어 톱질과 망치질을 하는 목수의 손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글을 ‘잘’ 쓰게 되는 건 글을 넘치도록 쓰고 난 자투리나 부스러기, 일본말로 ‘기렛파시’ 같은 겁니다. 빵집 아들(김연수 작가)이 카스텔라는 못 먹어도 기렛파시는 넘치게 먹고 크는 것처럼. 자투리라도 카스텔라는 카스텔라입니다. 김밥 꽁다리도 김밥인 것처럼. 단내 나도록 글을 써야 글 쓰는 몸이라는 기렛파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는 건 그냥 오지 않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글 잘 쓸 때’를 기다리며 계속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나는 글 쓰는 몸을 갖추어가고 있는가? 시간을 일정하게, 공간을 맞춤하게, 습관을 일관되게 글쓰기에 맞추고 있는지 물어보고 그러기 위해 매일 조금씩 나아가야 합니다.
글쓰기는 일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냥 일하고 있다고 일이 점점 자동으로 늘어서 계속 잘하게 되지 않습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일을 잘하기 위한 뭔가를 해야 일이 늡니다. 거저 나잇값 할 수 없듯이, 거저 글을 잘 쓸 수 없습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대해서는 실력이 길러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글을 잘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럴 재능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잘’ 쓰고 싶습니다.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내 이야기가 타인에게 가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경험에서 얻은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저처럼)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고 주제가 주어진 글을 써야 할 때 글을 쓴다고 해서 글이 늘지 않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매일 무조건 문장 10개 쓰기, 매일 무조건 사물을 주어로 하는 문장 10개 쓰기, 매일 무조건 사전에서 단어 10개 찾아 읽기, 매일 무조건 책 10쪽 읽기, 매일 무조건 10분간 글쓰기, 매일 무조건 팔굽혀펴기 10번 하기, 매일 무조건 마을 산책하기 같은 자기만의 글쓰기 수련법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글을 ‘잘’ 쓰게 될 겁니다.(적어도 나잇값 하는 어른이 될 겁니다.) ‘선생은 바담 풍 해도 학생은 바람 풍 하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연재를 여기에서 마칩니다. 그동안 글쓰기로 인연을 맺어온 독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한겨레21의 글쓰기 강의 연재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박은지 시인(대표작 ‘여름 상설 공연’)이 4주마다 연재를 이어갑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가 2025년 6월2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무적의 글쓰기' 코너 애독자들에게 연재를 마치는 인사를 전하고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이별’을 주제로 아홉 분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성엽님은 매일 또 다른 자신이 되기 위해 어제의 나와 이별한다는 철학적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영님은 인적 없는 터널을 걷고 또 걸으며 터널의 끝에 다다라서는 사랑의 소멸이 아닌 이별의 소멸을 느낀다는 깊이 있는 글을 쓰셨습니다. 정혜님은 새 학기를 맞아 학생과 담임선생님 모두 학급 재배정 없이 진급했는데, 유독 정혜님 반 선생님만 전근을 가셔서 서러웠다는 기억을 떠올려주셨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본인이 학교를 떠나게 되면 학생들한테 꼭 말해준다고 하시네요. 선옥님은 외사랑을 하는 지인 얘기와 함께, 새로 온 대표의 거들먹거림에 명퇴 신청을 한 직장 선배와의 이별, ‘무적의 글쓰기’와의 이별에 대해 아쉬움을 남겨주셨습니다. 원영님은 이삿짐을 싸면서 버리게 되는 물건들을 아이는 이별이라고 하지만 기억 속에 박히니 떠나보낸다며, ‘무적의 글쓰기’도 그렇게 추억하겠다고 하시네요. 은광님은 재수할 때, 자신을 좋아하던 사람을 보기 좋게 찼으면서도 여전히 그의 친절함과 사랑에 고마움을 간직하고 계시더군요. 재즈감귤님은 교회 캠프에서 만난 형을 좋아하게 된 걸 알게 된 가족이 극렬 반대해 그와도 이별하고 신과도 이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용기 있게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사랑을 찾아나설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담이님은 회덮밥 양푼 그릇에 남긴 밥과 상추를 긁어모아 주던 그 사람의 다정함 때문에 이별한 다음에도 여전히 그에 대한 기억이 밥풀처럼 따라다닌다고 하네요. 이별의 상대를 특정 장면으로 묘사함으로써 구체성을 갖춘 글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선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당시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담백하게 풀어쓴 글입니다.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된 뒤에도 둘째아들네와 일본에서 사셨다. 노년이 되어 장남을 찾아 우리 집으로 영구 귀국하셨다. 상체는 비대하고 하체는 약한 체형으로 걷기가 불편하셔서 걸을 때는 지팡이를 쓰셔야 했다. 내가 부축하여 동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기도 하셨다. ‘남묘호렌게쿄’라는 주문을 외는 일련종을 믿으셔서 방 한쪽에 작은 제단을 놓고 과일이나 음식을 올린 뒤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셨다. 방 안에 요강을 두고 쓰셔서 할머니 방에서는 향 냄새와 지린내가 섞여 났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동아리에서 주관하는 농촌활동(농활)을 가려고 참가비를 내고 이틀간의 사전교육까지 마쳤다. 그 동아리는 학생운동의 중심에 있던 흥사단 대학생아카데미였고 농활을 빡세게 시키기로 유명했다.(민폐 안 끼치기 위해 모든 식사와 간식은 자체 해결했고, 날마다 밤늦도록 자체평가회를 열었다.)
내일이면 출발하기로 한 날, 오빠한테서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전보가 왔으니 오늘 당장 집에 내려가야 한다고. 명령과 다름없는 아버지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7월21일, 무더위가 한창인 때에 부산의 집에 가서 문상객을 맞이하고 부엌일을 거들면서도, 더 이상 할머니를 보지 못한다는 슬픔보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런 때 돌아가셔가지고…’ 하는 마음이었다. ‘서답’이나 ‘개짐’ 같은 화석이 된 우리말을 쓰던 할머니를 나는 그렇게 떠나보냈다.
이듬해 여름방학 때 나는 기어이 전라북도 임실로 농활을 다녀왔다. —정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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