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쌓고 공감은 나누고… 글쓰기 공동체를 이루는 법제 연구실 테라스 난간 위에는 볼품없는 플라스틱 화분이 하나 있습니다. 게으른 주인 때문에 잠깐 꽃이 피었다가 이내 말라 죽어 흙만 담겨 있었습니다. 흙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화분이 생기면 분갈이할 때 섞어주겠다는 마음으로 달걀 껍데기, 귤껍질, 사과 꽁다리, 안 먹어...2024-11-16 19:43
‘못 빠진 계단의 소리’ 들어봤는고글쓰기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무서운’ 인물이 있습니다. 소설 ‘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인데,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모래알과 수많은 별과 수많은 파리와 수많은 나뭇잎이 있다. 그러나 그중에 똑같은 두 ...2024-10-12 22:34
언젠가는 읽겠지…마음껏 책탑을 쌓자읽기의 목적은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읽기의 즐거움’은 여느 즐거움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여행이나 놀이를 하거나 맛난 음식을 먹거나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즐겁습니다. 유쾌하고 신나고 보람도 있죠.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책 읽기는 ‘마음이 가라앉는 즐거...2024-09-07 22:47
할머니는 읽자마자 까먹을 걸 알면서 읽었다가시할머니(처조모) 한맹순 권사님은 107살까지 사셨는데, 말년에 가벼운 인지저하증(치매)을 앓으셨습니다. 저처럼 둘째 손주사위 따위는 누군지도 몰라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셨죠. 설날에 용돈을 모아 드리면 어딘가에 몰래 숨겨뒀다가 다음날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시죠. ...2024-08-18 14:47
저 자동차는 촐싹거리나요? 얌체 같나요?여러 나라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글도 쓰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문보영 작가가 어느 날 이런 문장을 들었다고 합니다. “Oops, that door is unhappy today.” 문이 고장 난 것을 보고 누군가가 ‘오늘 저 문은 덜 행복하네요’라고 한 겁니다. 작가...2024-07-20 23:06
거기 뿔테 안경! 자화상을 그려볼까요오늘은 글쓰기보다는 언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언어의 불합리성이랄까 불완전성이랄까 하는 얘기를요. 아니, ‘용기’ 얘기일지도 모릅니다.먼저 연필이나 볼펜과 함께 백지 한 장을 가져와볼까요. 거기에 당신의 자화상을 정성껏 그려보세요(제발). 종이도 없고 귀찮기도 하다면...2024-06-22 17:37
감정은 심장 밖에 있다오늘은 감정을 글로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말해보려 합니다.지난주에 겪은 고약한 일 얘기부터 해야겠군요. 저나 제 가족에게 악의를 품은 누군가가 봄철 맹렬히 뻗어 나가던 담쟁이 줄기를 끊어놓았습니다. 저에게 직접 달려들었다면 응수해줬을 텐데, 야비하게도 사람이 없을 때 ...2024-05-11 23:16
‘밤양갱’ 노래 제목이 ‘탕후루’였다면?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는 ‘한살림’ 매장에 가면, 포장지에 붙은 상표 때문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상품’ 자체가 ‘상표’거든요. 그냥 내용물이 상품명입니다. 봉지 안에 들어 있는 게 쌀이면 겉봉투에 ‘백미, 현미’, 우유면 ‘유기농우유’, 쌀과자면 ‘쌀과자’, ...2024-04-13 22:14
세상 모든 것은 언제 ‘진짜 글감’이 되는가정작 글 쓰면서 제일 먼저 고민되는 것을 다루지 않았더군요. ‘글감 찾기’ 말입니다. ‘소재’라고도 하는 글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옷감’은 옷을 지을 때 쓰는 천이고, ‘땔감’은 불을 피울 때 쓰는 나무이니, ‘글감’은 글을 쓸 때 쓰는 재료라고 할 수 있...2024-03-10 10:26
당신의 흔한 문장에는 ‘낯섦’이 있는가전태일 열사의 일대기를 각색한 만화 를 그린 최호철 화백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항상 온갖 굵기의 연필 꾸러미와 엽서 두 장 크기의 두꺼운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어 둘러메고 다닙니다. 사진가 목에 카메라가 매달려 있듯이, 그는 언제든 그림 그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어...2024-01-07 13:45
라면밖에 없다면 라면을 맛있게 끓일밖에저희 집 마당 한편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잡초와 낙엽, 음식물을 모아 거름을 만드는 퇴비간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만들었습니다.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좀팽이인지라, 주변에서 재료를 주워다가 만들었습니다. 공사장에서 얻어온 팰릿(팔레트)과 각목, 산에서 주워온 굵은 나...2023-12-10 13:58
새로운 말의 세계를 건설하는 망치, 은유은유가 뭔지 자신 있게 답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국어 시간에 배웠던 은유의 예를 떠올려보라 하면 틀림없이 ‘내 마음은 호수’라고 말합니다. 한결같습니다. 수십 년 동안 오직 이 시구절만 떠올립니다. 국어 교육이 굳건히 잘됐다고 해야 할지,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해야 ...2023-11-12 10:12
문장의 길이 어떻게 할까…군악대보다 새떼의 감각으로오늘은 좀 ‘얄팍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리석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문장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짧게 쓰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고, 짧게만 쓰면 글이 유치해 보이니 길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장 얘기를 하려니 지레 겁나기도 하고...2023-10-15 16:18
생각은 빗고 글은 덜어내야…문체를 쌓아가는 법지난번 글에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라고 했죠. 이렇게 말하고 나니 글 쓰는 데 부담감을 더 안겨주겠다 싶더군요. ‘글이 이렇게 진부하고 지지부진한 걸 보니, 내 삶도 이 모양 이 꼴인가?’라는 생각에 글쓰기가 싫어지고 자신감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2023-09-09 20:40
‘형식이 먼저다. 처음에 형태를 잡고 의미를 담는다’이란 산문집을 원작으로 한 (日日是好日)이란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이십 대 주인공이 다도를 배우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간다는 내용이죠. 다도를 배우는 동안 취업도 안 되고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그만둘 만도 한데 ...2023-08-12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