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라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글도 쓰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문보영 작가가 어느 날 이런 문장을 들었다고 합니다. “Oops, that door is unhappy today.” 문이 고장 난 것을 보고 누군가가 ‘오늘 저 문은 덜 행복하네요’라고 한 겁니다. 작가는 이 말이 너무 재밌어서 그 뒤로 고장 나거나 상태가 이상한 물건을 보면 ‘unhappy’를 붙였다고 합니다. “인쇄기가 행복하지 않아 보입니다.” “마이크가 오늘따라 덜 행복한가봅니다.” “커피머신은 오늘 행복하지 않으십니다. 심기를 건드리지 맙시다.” 이런 식으로요.(문보영,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문이 고장 났다’고 하는 것과 ‘문이 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문은 무생물이라 행복감을 느낄 리 없고 그런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저런 문장을 쓰고 나면, 마치 그 문이 ‘나는 불행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죠.
언어가 가진 탁월함은 이러한 유연함에서 나옵니다. 끝없는 유연함! 우리는 어떤 표현이든 처음에는 이상해 보이더라도 거기에 이리저리 뜻을 만들어 붙여 ‘말이 되는 쪽’으로 이해합니다. 이상하니 갖다 버리는 게 아니라, 이전에는 없던 뜻을 요령 있게 만들어냅니다.
도로 위를 달리다보면, ‘촐싹거리며’ 달리는 자동차가 있는가 하면 ‘우직하게’ 달리는 자동차가 있습니다.(여러분도 느끼시죠?) 촐싹거리는 차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늘 제일 좋은 차선에 들어가려고 주변 눈치를 살핍니다. 얌체 같은 차! 이미 끼어들어놓고 나서 “나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 같고, ‘끼어들까 말까’ 고민하는 티도 납니다. 직선으로 달릴 때도 왠지 경망스럽습니다. 우직한 차는 점잖게 달립니다. 엉덩이가 무겁습니다. 고속으로 달릴 때도 더 낮게 가라앉고 차선을 바꿀 때도 묵직합니다. 웃는 얼굴의 차가 있는가 하면 화난 얼굴의 차도 있습니다. 차가 그런 게 아니라,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다.
언어는 인간이 이 세계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이해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중 하나가 의인화입니다.(의인법이라고 하면 표현 기교처럼 보여서 조금 넓은 의미로 의인화라고 쓰겠습니다.) 의인화는 수사법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이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대상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 의도, 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세계는 없습니다. 각각의 종은 환경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인간은 주로 시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지만, 개미는 후각으로 현실을 파악합니다. 개미들에겐 활짝 핀 꽃이나 몽우리만 맺힌 꽃이나 다 똑같습니다. 움트는 싹이든 잘 자란 나무든 돌이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저 넘어가거나 피해야 할 장애물일 뿐입니다. 개미의 삶에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요. 개미에겐 땅의 미세한 진동을 느끼며 집으로 가져갈 먹이를 찾는 일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반면에 벌은 아주 멀리서도 꽃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 향기로 꽃의 종류를 분간합니다. 꽃가루가 풍부한 꽃을 먼저 알아차리고 그쪽으로 날아갑니다. 벌에게는 활짝 핀 꽃과 꽃망울만 맺힌 꽃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떡갈나무에 사는 여우와 올빼미와 딱정벌레와 말벌은 전혀 다른 환경세계에서 삽니다.(주디스 콜·허버트 콜, <떡갈나무 바라보기>)
이렇듯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우리는 동식물이나 사물도 인간이 보는 방식대로 보고 느끼고 생각할 거라고 넘겨짚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뼛속까지 자기중심적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건 분명합니다. 동물행동학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게 있나봅니다. 그래서 좋다거나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인간 본성이 자기 본위라는 거죠.
인간을 편들어 좋게 말하면, 우리는 인간 아닌 대상에게 인간의 자리를 ‘기꺼이’ 양보합니다. 인간이 아닌 대상은 많습니다. 무생물, 식물, 동물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현상도 포함됩니다. 인간 아닌 모든 것이 의인화의 대상이 됩니다.
흔히 쓰는 ‘가다’라는 동사를 예로 들어보죠. ‘가다’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학교든 시장이든 직장이든 어떤 목적지나 지향이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해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이 주어가 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가다’의 주어 자리에 인간과 동물만 오는 게 아닙니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에서처럼 시간도 갑니다. ‘사랑이 저만치 가네. 나 홀로 남겨놓고서’라는 가사처럼 사랑도 갑니다. 우리 집은 지은 지 40년 넘어서 벽 여기저기 ‘금이 가’ 있습니다. 금이 가다니요! 무더운 날에는 음식이 금방 ‘맛이 갑니다’. 소식도 가고, 이해도 가고, 짐작도 가고, 피해도 갑니다. 이들이 정말로 어딘가를 행해 ‘가는’ 걸까요? 우리가 저런 대상들도 ‘간다’고 생각하니 저런 표현이 생겼을 겁니다.
언어에는 이러한 인간의 자기중심적 태도가 잘 반영돼 있습니다. 문장구조라는 것이 만능열쇠 역할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어+서술어’ 또는 ‘주어+목적어+서술어’라는 틀, 즉 ‘무엇이 어떠하다’ ‘무엇이 무엇을 하다’라는 문장의 틀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틀을 크게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어떤 것이 와도 그걸 포용해줍니다. 아래 예들을 보시죠.
아빠가 아이를 깨운다 - 새벽이 도시를 깨운다
아들이 돈 달라고 한다 - 신발이 돈 달라고 한다
애인이 창문을 두드린다 - 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부모는 자식을 이길 수 없다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할아버지가 왕만두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 불길이 건물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여보시오 벗님네들, 날 좀 살려주오 - 걸음아, 날 살려라
벼락부자 가난뱅이 적 생각 못한다 -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어떻습니까. 두 번째 문장 중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나요? 다 잘 되죠. 이런 예는 무궁무진합니다. 우리는 문장구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 자리에 오는 단어를 바꿈으로써 인간 아닌 것에도 인간적인 성격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확장하고 새로운 인식과 해석의 장을 엽니다.
의인화는 문장 차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텍스트 전체를 의인화의 기법으로 쓸 수도 있을 겁니다. 이솝 우화를 비롯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나 박지원의 <호질> 같은 소설이 대표적입니다. 놀기만 하는 베짱이와 열심히 일하는 개미의 이야기, 엄마 게가 옆으로만 걷는 아들 게를 나무라자 ‘엄마를 따라 할 테니 걸어보라’고 하여 엄마 게를 무안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 이솝 우화는 의인화한 동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주죠.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 세상을 만들었지만 그 속에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의 질서가 싹튼다는 〈동물농장〉 얘기는 전체주의 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호질>은 호랑이의 입을 통해 ‘북곽 선생’으로 대표되는 양반 사대부들의 겉과 속이 다른 위선과 허위의식을 질타합니다.
삶과 맞물린 단어를 관찰해 새로운 의미를 찾는 글을 쓸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적산온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좀 낯설죠. 사전에는 ‘생물의 생육 시기와 관련된 온도의 총계’라고 건조하게 풀이하는데, 이 단어에 피가 흐르고 살이 돋게 해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글을 보니 ‘왜 봄에 꽃이 피는가?’라는 어린이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하더군요. ‘식물마다 꽃이 피기까지 필요한 온도가 있는데 봄이 되면 식물들이 몸 안에 온도를 ‘저금’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저금한 온도가 가득 차면 비로소 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안희연, <단어의 집>) 어떤가요? 이 글을 읽고 나니 꽃이 다르게 보입니다. 꽃이 온도를 차곡차곡 ‘저금’한다고 하니 꽃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꽃도 애쓰는구나.
작가는 ‘모든 단어는 알을 닮았고 안쪽에서부터 스스로를 깨뜨리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꿈틀거리는 단어 속에서 인간의 입체적 삶을 목격할 수 있을 텐데, 거기에 닿는 통로 중의 하나는 이 세계를 의인법적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들도 계획이 있고 의도가 있고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우리가 마음대로 지배하고 쓰고 버리고 잊어버려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 그저 무미하고 무심한 사물이 아니라는 생각. 우리와 닿아 있다는 생각.
인간 아닌 대상은 인간과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지만, 그걸 말로 옮길 때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언어가 있는 이상,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 아닌 대상을 이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의인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어떻게 새로운 의인화를 시도할 건가’가 관건이겠네요. 오늘은 사물에 말을 걸어보세요. ‘그’가 말을 할 겁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라는 주제로 여덟 분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 또는 이전부터 알긴 했는데 오늘 보니 새롭게 보이는 사실을 메모하는 것이었죠.
이번호에는 보내주신 분들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에서 한두 가지씩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보내주신 글을 보니 다시 한번 모든 새로움은 ‘관찰’에서 나온다는 걸 알 수 있겠더군요. 고맙습니다. 사람에 따라 주변 사물이나 현상을 주로 관찰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몸에 밴 습관을 재발견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번 볼까요?
영희님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남 보듯’ 대하며 사신답니다. 자기 객관화에 익숙한 분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희님이 그동안 보낸 글을 보면 ‘영희는’으로 시작하더군요. 정선님은 사람 이름 기억하는 데 재주가 있으신데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의 그 집 애 이름을 기억해 깜짝 놀라게 하셨다는군요. 초중고 12년 동안 만난 담임선생님 이름을 모두 기억하다보니, 신기하게도 열두 분 중에 열한 분의 성이 달랐다고 합니다. 게다가 마흔 넘은 따님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들 이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서 따님이 화들짝 놀랐다고 합니다. 수옥님은 아버지 병 수발을 들면서 원하시는 대로 몸을 옮겨드리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나중에 하늘에서 둥둥 떠오르기 위해서라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선옥님은 ‘아침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산만하고, 식당에서 사용한 휴지를 버리지 못하고 손에 들고나온다고 하시는데, 무척 정갈한 삶을 사시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 기분 나쁜 말을 들으면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비웃는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관찰하실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국어 선생님이신 성호님은 취미가 ‘수다’라는 학생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요즘 학생들은 온라인게임을 하면서 채팅 수다를 떠는 걸 더 자연스러워한다는군요. 학생들한테 아이스크림, 마카롱 등을 사주는데 그걸 학생들이 수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서 담임 자랑을 한다며 ‘자랑’을 하셨습니다. 담이님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밖을 나눠 세밀하게 관찰했더군요. 다리는 오른쪽만 떨고 초코우유는 한 번은 꼭 씹어서 삼키며 손발톱을 깎고 나면 피곤해진다(!)고 하네요. 치즈맛 나는 고구마바가 있다는데,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준준님은 자신의 특성을 관찰하셨는데요. 해야 할 일을 계속 미루거나 청소를 안 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인데, 감각에 대한 기억이 길지 않아 뒤끝이 없다거나 1.5배속을 하지 않고는 영상을 볼 수 없는 것은 저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선식님은 임플란트를 한 이후로 딸기를 먹을 때 딸기 씨를 씹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신기하네요. 집 안에서 자기 얼굴을 보면 마음에 쏙 드는데 집 밖에만 나서면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 또한 신기하네요.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이번에는 의인화를 연습해보겠습니다. 주인공을 인간 아닌 것으로 삼아 한 편의 글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전자다’ ‘나는 나무젓가락이다’ ‘나는 새우깡이다’ ‘나는 슬리퍼다’ ‘나는 길냥이다’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주전자가 돼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들려주는 말을 가감 없이 받아적기만 하면 됩니다.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들에게서 원망의 말이 터져 나올지, 고마움을 표시할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줄지는 모릅니다. 여러분과 인연을 맺고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면 좋겠습니다. 모든 글에는 ‘(단) 하나의 이야기(주제)’가 담긴다는 걸 잊지 마시고요.
주제: 사물이나 동식물을 주어로 쓴 글
분량: 1천 자 정도(띄어쓰기 포함)
마감: 2024년 8월4일(일요일)
보낼 곳: han21@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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