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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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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쓰기 싫은 글, 마구 한번 써봅시다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글이 먼저다…15분 마구 쓰기의 핵심은 ‘끝까지’ 쓰기
등록 2025-02-21 22:12 수정 2025-03-02 11:26
미국 선불교의 스승 스즈키 순류는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에 비유한 적이 있다. 뛰어난 말은 채찍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전에 마부가 바라는 대로 달린다. 하지만 너무 쉽게 배우면 열심히 하지 않게 되며, 뼈에 사무치는 연습도 피해 가기 쉽다. 사진은 달리는 말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선불교의 스승 스즈키 순류는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에 비유한 적이 있다. 뛰어난 말은 채찍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전에 마부가 바라는 대로 달린다. 하지만 너무 쉽게 배우면 열심히 하지 않게 되며, 뼈에 사무치는 연습도 피해 가기 쉽다. 사진은 달리는 말들.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글을 쓰지 않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쓰지 않을까 잔머리를 굴립니다. 정말입니다.

제 연구실은 이미 오염돼 있습니다. 이곳은 글쓰기와 책읽기와 일과 놀이와 휴식이 뒤죽박죽 엉켜 있습니다. 글만 쓸 수 있는 청정무구한 공간을 찾아 학교도서관 구석진 자리에 갑니다. 오직 글만 쓰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노트북을 켭니다. 그 순간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듯하여 메모해둔 책이 떠오릅니다. 얼른 계단을 내려가 서가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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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앞뒀을 때 자꾸 하게 되는 딴짓

마침 그 옆에 원저자가 쓴 원전이 보입니다. ‘내가 공손룡자를 번역하기로 마음먹은 것은’으로 시작하는 머리말을 끝까지 읽습니다. 책 두 권을 빌려 와 자리에 앉습니다. 집에서 싸온 사과와 주스를 지금 먹을지 나중에 먹을지 고민하면서 책상 한쪽에 밀어놓고 스타니슬랍스키의 책 ‘배우수업’을 펼칩니다. 아차, 파커 파머의 ‘역설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라는 책도 읽어야겠다 싶어 ‘함께’ 뒤적거립니다.

그 순간 카톡에는 원로학자의 부고 소식과 생협 대의원을 추천해달라는 요청과 프로젝트 준비 소식이 띠링띠링 뜨지만 결연한 의지로 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에 있을 회의에 필요한 준비를 위해 행정실장한테 톡을 보냅니다. 신입생을 위한 가이드북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안 들어온 원고 생각이 나는군요. 공손하고 간절한 어투로 독촉 문자를 보냅니다. 웬만한 연락은 다 했으니, 이제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전 11시 반이군요. 선배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형, 점심 먹을래요? 짜장면 어때요? 12시에 교문 앞!’

주의력 결핍, 회피형 인간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입니다.(조만간 상담을 받겠습니다) 신문에 칼럼을 쓴 지 6년이 넘었는데도 저에게 글쓰기는 둘 중 하나입니다. 하기 싫거나, 아주 하기 싫거나.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에세이든 논문이든 상관없이 똑같습니다. 좌충우돌! 이제 어느 정도 규칙성을 가질 만한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늘 처음 같은 제자리걸음, 쓸 말이 없다는 막막함, 새롭게 보탤 말이 없다는 좌절감, 글의 흐름이 잡히지 않는다는 답답함, 조롱받을 것 같다는 불안감, 이번에는 실력이 들통날 것 같다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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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신감이 없는데도 저에게 연재를 맡긴 이유가 뭘까요? 아마도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의 글쓰기 이야기라 맡겼을 겁니다. 재능 없는 사람의 글쓰기. 작가 아닌 사람의 글쓰기.

글쓰기 책에는 이러이러한 절차를 밟으라고 하지만, 거기서 일러주는 절차대로 글을 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글쓰기 책에서 말하는 절차와 실제로 제가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이 너무 다릅니다. 글쓰기 책에는 ‘개요 짜기’ ‘구상하기’ ‘설계하기’ 등의 비슷한 이름으로 어떤 글을 쓸지 먼저 계획하라고 합니다. ‘개요’를 짠 다음에 글을 쓰라는 것이죠. 나무에 뿌리와 줄기가 먼저 있어야 가지가 뻗어나가듯이 글도 선후가 있다고 합니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짓지 말라!

정말 그럴까요? 글재주도 없는 주제에 글쓰기 절차대로 쓰지도 않는 저를 위로하는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릴게요. 미국 선불교의 스승 스즈키 순류는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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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은 늘 규칙을 말하지만

“네 종류의 말이 있다. 뛰어난 말, 좋은 말, 시원찮은 말, 형편없는 말. 뛰어난 말은 채찍의 그림자가 보이기도 전에 마부가 바라는 대로 천천히 또는 빨리, 오른쪽으로 또는 왼쪽으로 달린다. 좋은 말은 채찍을 보고 그것이 몸에 닿기 전에 그렇게 한다. 시원찮은 말은 채찍을 맞고 아픔을 느껴야 달리기 시작한다. 마지막 형편없는 말은 아픔이 뼈에 사무쳐야만 달린다. 네 번째 말이 달리기를 배운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해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최고의 말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배우면 열심히 하지 않게 되며, 뼈에 사무치는 연습도 피해 가기 쉽다. 서예를 하다 보면 재주가 없는 사람이 재주 있는 사람보다 훨씬 훌륭한 서예가가 되는 일이 흔하다. 재주가 있는 사람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마찬가지다.”(스즈키 순류, ‘선심초심’)

저는 확실히 네 번째의 ‘형편없는 말’입니다. 채찍이 뼈에 사무친 다음에야 달리기 시작하는 말. ‘쓰고 싶다’가 아니라 ‘쓰기 싫다’에서 출발하는 글쓰기.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이번 생에는 쓰지 못할 겁니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잖니. 흘린 눈물은 한 세월, 얼마나 많겠니. 그러니 살을 뚫고 나오는 거야. 습기 찬 거 어두운 거 그거 다 먹고 그래도 무언가 피울 힘이 있었던 거야. 늘그막에 애들 거두는 거, 그거 장난 아니다? 길러낸다는 거, 그거 정말 굉장한 힘이야. 그래서 나는 검버섯도 꽃이라고 봐. 그래서 우린 그걸 ‘-핀다’고 말하는 거야.”(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중 ‘검버섯’)

‘검버섯이 피다’라는 간단한 표현에서 삶의 정곡을 찌르는 감각과 이를 매끄럽게 글로 표현하는 솜씨를 저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습니다. 탁월한 글솜씨를 가진 작가의 글에 견줘 제 글은 거칠고 울퉁불퉁합니다. 언제는 삐뚤삐뚤하고 언제는 움푹 파였고 언제는 날이 서 있습니다. 균질적이지 않고 안정감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개요표’를 짜고 나서 써야 할까요?

 

초심을 잃지 말자? 초심을 빨리 잃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도에서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처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흔히 ‘초심을 잃지 말자’거나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하는데, 타성에 빠진 사람이 처음 시작할 때의 순수함, 진지함, 열정을 되찾자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무도에서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처음은 빨리 지나가라는 것이죠. 어떤 동작을 어떻게 왜 하는지 따지지 말고, 선생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면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들라는 겁니다. 익숙해진 다음에라야 그 동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무슨 생각을 하게 되던가요? 기타를 배우려고 학원에 간 첫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조깅하기로 마음먹고 처음 달리기 시작하면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봄부터 매일 108배를 시작한다고 해봅시다. 처음 시작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생각보다 절하기가 어렵군. 지금 아홉 번째인데 언제 끝날까. 마칠 수는 있을까. 무릎뼈가 뿌두둑거리는데 이러다 병나겠는걸. 필라테스로 바꿀까. 방석을 더 넓은 걸 샀어야 했어. 그런데 이번이 열세 번째야, 열네 번째야.’ 등등. 이런 생각은 70~80회쯤 지나서야 잦아듭니다. 엎드리고 일어나는 동작에 규칙성이 생기고 호흡도 고르게 되며 잡념이 사라지고 절하는 동작 자체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처음은 늘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의심합니다. 그 망설임과 머뭇거림과 의심을 다음에 오는 마음이 걷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을 달리 써야 합니다. ‘초심을 빨리 잃자.’ ‘초심의 강을 빨리 건너가자.’ 글쓰기에 맞춰 말하면 ‘초고를 빨리 쓰자’ ‘어차피 고쳐 쓸 것이니 빨리 쓰자’.

저는 학생들과 ‘15분 글쓰기’라는 걸 합니다.(‘자유 글쓰기’(Free Writing)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많이들 합니다) 온라인카페에 학생 이름을 하나씩 넣은 게시판을 만듭니다. 학생들은 아무 때나 들어와서 들어온 시간을 먼저 적고 글을 씁니다.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쓰되, 멈추지 말고 고치지 않고 쓰기. 어떤 학기에는 ‘글 쓰는 몸’을 만들어주겠다며 ‘100일 15분 글쓰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학생이 쓴 글의 내용, 형식, 분량 등 어떠한 것에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읽어보지도 않을 테니 마음껏 쓰되, 15분 동안 글 한 편을 끝까지 쓰라고 합니다.

30분 타이머를 울리도록 설정해놓고 ‘마구 쓰기 연습’을 해볼까요? 생각을 먼저 한다고 글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 때문에 두 번째 문장이 튀어나오고, 두 번째 문장을 쓰고 나면 다음 문장이 이어집니다. 사진은 글을 쓰고 있는 사람. 게티이미지뱅크

30분 타이머를 울리도록 설정해놓고 ‘마구 쓰기 연습’을 해볼까요? 생각을 먼저 한다고 글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 때문에 두 번째 문장이 튀어나오고, 두 번째 문장을 쓰고 나면 다음 문장이 이어집니다. 사진은 글을 쓰고 있는 사람. 게티이미지뱅크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밀어붙이기

15분 글쓰기는 도움이 될까요?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15분 글쓰기는 우리가 글쓰기에 대해 가진 오해와 편견을 뛰어넘게 해줍니다. 글쓰기를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생각’입니다. 정확히는 ‘쓰지 않고 하는 생각’입니다.

저의 글쓰기는 늘 이런 흐름이었습니다. ‘글감 찾기→ 마구 쓰기→ 고쳐 쓰기’. ‘마구 쓰기’의 핵심은 ‘끝까지 쓰기’입니다. 중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어떻게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글쓰기’와 ‘생각하기’를 의식적으로 구분합니다. 앞뒤를 나누어 따로따로 작업합니다. 글을 쓰려고 어떤 글감을 택하겠죠. 그런데 그 글감으로 뭘 써야 할지 ‘정확히’ 모릅니다. 뿌옇습니다. 처음에는 글감이 ‘뿌옇다’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글감으로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택했지만, 아직 어떤 말을 할지 모르는 상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뿌연 글감을 선명하게 만드는 건 ‘생각’이 아니라 마구 써내려간 ‘글’입니다. 그 속에서 ‘새로움’이 나옵니다. 생각에서 새로움이 나오는 게 아니라 글 속에서 새로움이 나옵니다. 늘 그랬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쓰고 나서야, 정확하게는 ‘쓰면서’ 글감에 대해 할 말이 선명해집니다.

생각을 먼저 한다고 글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문장 때문에 두 번째 문장이 튀어나오고, 두 번째 문장을 쓰고 나면 다음 문장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글이 스스로 글을 밀고 간다는 것을 믿고 끝까지 가보는 겁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려 7쪽이 넘는 초고를 어떻게든 끝까지 씁니다. 그러곤 출력해서 큰 소리로 읽습니다. 읽으면서 두 가지를 살핍니다. 첫째, 내 글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흐르고 있는가? 둘째, 읽으면서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가? 그걸 바탕으로 고칩니다. 하나의 결론을 향하지 않는 것들은 잘라냅니다. 무려 4쪽이 잘려나갔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생각을 덧댑니다. 빨리 쓴 초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쓰면서 선명해진다

글이 할 일과 생각이 할 일을 분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서를 바꿔보기 바랍니다. 생각이 먼저가 아니라 글이 먼저입니다. 글이 할 일에 여러분의 생각이 간섭하지 않게 하세요. 생각은 진부합니다. 그러니 글쓰기 실력을 높이려면 무조건 초고를 빨리 써야 합니다.

저는 뼈에 사무쳐야 글을 쓰는 ‘형편없는 말’이지만, 글은 저에게 그래도 버티며 자유와 사랑의 길을 가라고 가르쳐줬습니다.

이제 고쳐 쓰는 방법만 알면, 저 같은 실력 없는 글 선생 없이도 ‘글 쓰는 사람’이 될 겁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말끝이 당신이다’ 저자

[독자 글]

긴 문장 쓰기에 열네 분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개인마다 서로 다른 내용의 세 문장을 보내주셔서 간단하게라도 주제를 소개해드리지 못하고 이름만 부르는 걸 이해해주세요. 담이, 선옥, 풀레, 창구, 윤상, 영희, 충현, 영미, 숨, 현빈, 혜욱, 정선, 체스카, 해원님. 글을 쓰셔서 고맙습니다.

긴 문장 쓰기는 문장 안에 하나의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여러 상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핵심 사건을 두텁고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입니다. 자신이 쓴 문장 속에 하나의 핵심 문장이 분명하게 있고 수식하는 구절이 그것을 도와주는지, 아니면 문장을 짧게 쪼개는 게 나을 정도로 병렬적으로 나열됐는지 판단해보기 바랍니다. 아래에 네 분의 글을 소개합니다.

말수가 적은 사람은 그럴듯해 보이기가 쉽다고, 그 유리함에 대해 투덜거리면서도 말을 많이 하고야 마는 사람의 다정한 용기를 부러워하는 모순적인 내가 이토록 긴 문장 하나를 붙들고 있는 것은 속내를 다 꺼내어 보여주고 싶은 간절함이자, 발가벗겨진 부분이 좀 못생겼대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겠다는 겸허함,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라니 문장이 길어지고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릴수록 나의 부족을 밟히고 말 것이라는 예감 속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순순한 굴복,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비는 기도문, 한 문장 안에 시간을 가둬보려는 어리석은 인간의 노력, 그러나 그렇기에 하나의 문장만이 할 수 있는 일, 무엇보다 진실한 사랑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영희님

비가 내리던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조금 어두운 낯빛으로 아내가 챙겨준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더디게 가는 신호등을 기다리던 아이는 작은 몸집이었지만 그 체구가 무색할 만큼 샛노란 장화를 때리는 빗물에도 중심을 곧잘 잡으며 무사히 그에게 안겼다. —충현님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무스름한 뭉치가 고양이인 걸 알고 흠칫하는 사이, 폐가로 숨은 고양이는 새벽마다 억센 쑥을 뽑으며 한 뼘씩 밭을 넓히는 할아버지를 쏘아보다가 그가 사라지면 여기는 원래 자기 땅이라고 시위하듯 땅콩 싹 사이사이 똥을 누고 딸기가 열리면 몰래 따 먹을 생각에 모종 앞에서 짧은 수염을 파르르 흔들었다. —영미님

당신은 여전히 나에게 일상이 아니지만 당신의 생각은 이제 꽤나 일상이 되어서 나는 버스 안에서 무거운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창밖을 보다가 문득, 새롭게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의 옷자락에 묻어온 싸늘한 바람 냄새에서,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간판들 틈에서 ‘순두부’ 같은 글자를 읽으면서, 가끔은 향수를 뿌리고 귀걸이를 하다 말고, 매일 목걸이를 걸 때, 일기예보를 확인하다 눈 소식이 있으면 하나의 문장을 떠올린다. 당신은 잘 있을까. —해원님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직접 ‘마구 쓰기 연습’을 해볼까요? 타이머를 30분 뒤 울리도록 설정해놓고 한 편의 글을 끝까지 쓰는 겁니다. 그리고 30분 동안 자신이 쓴 글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글이 하나의 주제로 향하는지,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다시 타이머를 30분 뒤 울리도록 해놓고 두 번째 글을 끝까지 씁니다. 초고 내용을 다시 써도 됩니다만, 글을 읽으면서 지울 것과 새롭게 떠오른 것을 반영해 써보기 바랍니다. 잘 쓰려고 하지 마세요. 이 연습의 핵심은 초고를 30분 만에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네 번을 해서 함께 보내주세요. 주제는 자유입니다.

 

주제: 자유(마구 쓰기)

분량: 1천 자 정도(띄어쓰기 포함. 초고~최종본 모두)

마감: 2025년 3월9일

보낼 곳: ha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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