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홉시 반, 인천 강화도에서 각자 하루를 보낸 여행자들이 커다랗고 푸른 소파가 자리한 공간에 둘러앉는다. ‘잠시섬’에 참여한 열다섯 남짓한 사람들로 ‘강화 유니버스 라운지’가 가득 차자, 호스트가 회고 시간의 문을 연다. 강화에 막 도착한 사람도 여정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사람도 모두 처음인 듯 이 시간이 어떻게 진행될지 설명을 듣는다. 오늘 하루는 10점 만점에 몇 점인지를 이유와 함께 공유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잠시섬은 “잠시 일상을 멈추고 강화섬에 머무르며 자신과 동네를 탐색해보는 섬살이 프로그램”이다. 2013년부터 강화에 뿌리내리고 다양한 문화기획을 해나가는 협동조합 청풍이 운영한다. 매일 밤 회고 시간 참여 외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면 된다. 회고가 부담돼 잠시섬 참여를 망설이기도 했는데, 어느덧 이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모인 이들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느낌도 좋았고 생생한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탐조하고, 석양과 별을 봤으며, 나는 도서관에 가서 졸거나 ‘강화구제’에 가서 옷을 구경했다.
첫날 회고를 마칠 즈음 그날 생일을 맞은 두 사람을 위해 한 참여자가 노래를 선물했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부르는 아이유의 ‘너의 의미’. 2절은 같이 부르자는 제안에 나만 어색했던가. 다들 합창하는 걸 본 순간 여행자들의 일시적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도 ‘강화 유니버스’의 환대하는 세계관 속으로 초대됐다.
잠시섬이 청년을 지역에 초대하는 다른 프로그램에 견줘 특별한 점은 ‘강화 유니버스’라는 세계관 위에서 작동한다는 거다. 이 세계관은 로컬, 주체성, 존중, 다양성, 소통, 재발견, 생태, 환경, 안심, 즐거움, 연결이라는 열한 개의 가치관 키워드로 이뤄져 있다. 듣는연구소의 사례연구에 따르면, 이 세계관에 공감하며 자기다운 삶의 방식을 지역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강화 안팎의 청년들이 강화 유니버스라는 가상의 장에 접속·교류해왔다. 강화라는 물리적인 장소 또한 더 다양한 이들을 환대할 수 있는 지역으로 서서히 변화한다.
이런 시공간과 세계관을 기획한 청풍 멤버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각자에게 이 일의 성격은 사업이나 작업, 활동처럼 다양했지만, 그 마음 씀과 고민의 결과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큰 도시로, 경쟁 속으로, 소유가 우선인 삶으로 뛰어들 때 그와는 조금 다른 방향과 속도로 환대하는 지역살이에 대한 감각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한 멤버가 추천한 책 ‘커먼즈란 무엇인가’에서는 공유자원 정도로 인식되던 ‘커먼즈’의 의미가 확장된다. 새로운 관계와 삶의 양식, 나아가 “특정한 감각과 감수성, 혹은 상식을 공유한 무리(folks), 즉 인간-커먼즈”를 포함하는 것으로 말이다. 강화 유니버스를 통과한 이들이 지역과 새롭게 관계 맺는 역량을 가진 무리로 거듭난다면 이 또한 커먼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잠시섬에는 누구나 호스트가 돼 일상, 취미, 관심사 등을 다른 게스트와 공유할 수 있는 ‘영감모임’이 매일 열린다. 나는 팸플릿 같은 나만의 진(zine)을 만드는 모임에 참여했다. 손바닥 크기의 빈 종이 8면을 무슨 내용으로 채울까 고민하다가, 그동안의 ‘커머닝’(커먼즈를 만드는) 경험을 그리고 썼다. 나의 인색함, 계산적임, 자본주의적 이기주의를 다른 감각으로 전환해줬던 장소, 관계, 그리고 공동체를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농성장에서부터 새로운 가족과 정당까지 아주 다양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갈 감각과 경험들을 바라보게 한 잠시섬. 이곳에서는 잠시가 아주 긴 시간이길 바라게 된다.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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