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정리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모다깃비’의 촘촘한 상상력은 흥미롭다. ‘날씨’로 일상을 재구성할 뿐 아니라 인물 간의 감정으로 잘 번지도록 했다. 등장인물들은 날씨를 사고판다. 거래 물품이 날씨이다보니 서정적 느낌도 짙다. 개봉하면 불꽃놀이가 펼쳐지거나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작가가 날씨를 매개로 과거를 끌어오는 재미있는 발상이다. 날씨를 구매하는 사람은 타인의 과거를 사는 것이고, 날씨를 물품으로 미리 만들어두지 못한 사람은 자기 기억을 현재로 끌어올 방법이 없으니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함의 역시 탁월하다. 나를 ‘축축이 젖은’ 사람으로 표현하듯, 엄마의 병세와 닳아버린 부부관계 역시 물·바람·습도로 묘사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조직에서 과도한 책임을 떠맡다가 어느 날 폭발하는 한 ‘선한’ 인물 역시 나쁜 날씨로 주변을 망가뜨리는 모습에서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가 떠올랐다.
세밀한 묘사. 주제를 잘 살린다. 익숙하지만 좋은 느낌. 비를 맞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비벼 훔치고 눈을” 뜨는 사실적 묘사. 물 위에서 흔들리는 조씨의 휠체어. 하지만 팔다리가 하나씩 없는 사람들은 침수 속에서도 비극적이지 않고, 비 새는 방을 고치면서 빛나는 눈동자를 간직하고 있다. 다시 위기 상황에 처해 사다리 위에서 휘청이는 인물에 대한 뛰어난 묘사와 폭우 속 빈민 장애인들의 기이한 춤. ‘비가 그칠 때까지’를 읽고 느낀 일련의 감정이다. 이 작품은 짧은 분량 속에서 대범함을 보인다. 독자를 낚아채는 사실적 묘사에서 환상적 구조로 도약하기 때문이다. “양철지붕이 목을 으드득 뜯어”내 얼굴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는 김씨가 나오는 장면은 비극의 사실성을 극대화한다. 이야기가 시종 팽팽히 전개된다. 폭우 피해로 죽은 이들을 묘사하는 색 감각 역시 뛰어나다. 침수에 떠다니는 김씨의 손톱 발톱 입술 귓불 모두 푸른색인데, “얼굴빛 역시 하늘색”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비 그친 뒤 드러난 푸른 하늘과 겹쳐져 대비효과를 낸다. 작가가 그리는 오늘의 날씨는 물에 잠긴 반지하방에 있는 것처럼 축축해 포기하고 싶게 만들지만, 그걸 담아내는 그릇이 아름다워 오히려 희망이 있을 것만 같다.
올해 지원작들은 날씨가 인간의 미래에 끼치는 영향을 비극적으로 전망했지만, 대체로 죽기보다 살아남도록 의무를 진 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생존한 이들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 앞에 놓였고, 그 공포를 다루는 작품들은 모두 영화적 장면을 떠올리게 할 만큼 미래를 끌어당겨 현재를 직시하게 했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13편이다. 8월에 공개한 ‘오늘의 날씨’라는 주제를 이야기로 얼마나 잘 풀었느냐는 것이 심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어제의 날씨도 아니고 내일의 날씨도 아닌 ‘오늘’의 날씨라고 강조했지만, 응모작 대부분이 미래의 날씨를 다뤘다. 그 미래가 관념으로만 떠돌거나 이미 세상에 나온 영화나 드라마와 흡사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에게 닥친 기후위기의 어려움을 꼼꼼하고 날카롭게 파고든 글이 적어 아쉬웠다. 본심에 오른 작품 중 논픽션이 없는 점도 눈에 띄었다.
‘내일의 날씨’는 기후변화로 지구 전체가 병들어가는 때 아기를 과연 낳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산모를 중심에 둔 작품이다. 그 고민은 과연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희망이 있는가 하는 물음과 이어진다. 안전하고 건강한 출산과 교육이 힘든 상황을 그린 전반부는 돋보였으나, 그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방식이 타당하고 자연스러웠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비가 그칠 때까지’는 응모작 중에서 유일하게 가난하고 몸이 아픈 이들의 현재를 들여다본 작품이다. 소설가 손창섭의 단편들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비가 내렸다.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대화도 우울하게 젖어 있었다. 날씨가 모든 이에게 공평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 고통의 다음이 궁금하다.
‘모다깃비’는 부부의 만남과 갈등을 날씨와 연결해 풀어낸 작품이다. ‘바렌’이나 ‘계시자’처럼 독특한 설정을, 부부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솜씨가 뛰어났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특별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올바른 삶을 향한 고민과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풍부하게 담았다. 깔끔한 구성과 섬세하고 잘 읽히는 문체로 쓴 다음 작품을 읽고 싶다. 아름답고 힘차게 이야기판을 휘젓고 다니기를 바란다.
김탁환 소설가본선에 오른 글 13편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모두 절망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종말론적 세계관 뒷면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숨어 있곤 했는데, 지금의 위기는 그와는 전혀 다른, 절멸의 공포구나 했다.
절멸의 위기 앞에서 인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범박하고 동어반복적이긴 하지만, 소설은 변함없이 이야기다. 독자를 현실이 아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다. 이야기를 계속 읽게 하는 힘은 소설적 장치가 독자의 감정을 계속 자극하느냐에 달렸다. 그러려면 그것이 아무리 현대적 상상력이라 할지라도 상투적이어서는 안 된다. 응모작들이 전반적으로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 많았다. 기후위기로 벌어질 파국적 미래사회의 모습을 공간적으로 상상하게 될 텐데, 그 공간 설정만으로 이야기의 전개 양상이 예측된다면 그 설정은 상투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담희의 ‘모다깃비’는 단연 돋보였다. 시간 재구성으로 이야기의 인과성과 통일성을 확보하고, 입체적인 상황 설정과 등장인물의 갈등이 그럴듯해 보였다. 특히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장치(바렌)가 이야기 흐름과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최이아의 ‘비가 그칠 때까지’는 ‘사지촌’이라는 장애인 마을 사람들이 한 달째 내리는 빗속에서 겪는 비극적 상황이라는 신선한 설정과 소설적 상상력이 돋보였다. 문장을 조금만 정갈하게 다듬으면 좋겠다. 나은비의 ‘내일의 날씨’는 일기예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기후위기 상황에 처한 인간들에게 출산과 세대 지속의 문제를 임신부의 절망적 시선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이 다소 맥없이 심경 변화를 일으키는 점이 아쉽다.
그 외에 최현빈의 ‘영원한 봄의 조각’, 정하영의 ‘탄소배출권’, 최유진의 ‘재생의 시간’을 재미있게 읽었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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