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 모임. 아침 7시에 호텔 조식을 먹으며 전문가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길 대강 듣고, 참여자 간 연대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열리는 모임의 참석자들은 아마 다른 ‘돌봄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또 이런 시간에 강연자를 초청한다는 건 ‘남의 돌봄 의무에 대해서도 무감’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교수로 종종 조찬 모임에 불려갔던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최근 출간한 책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봄알람 펴냄)에서 이를 ‘엘리트 남성의 오래된 관습’으로 명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학력, 전문가 남성들이 포진된 일터일수록 이런 배제적 관행이 조직의 위상을 과시하고 구성원들의 지위를 상징한다. 집단에서 지위가 오를수록 여성들 또한 이런 관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조찬 회의 참여를 ‘인정’으로 해석하게 된다.”
김 교수는 노동시장의 성 불평등을 보여주는 수많은 통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여성이 ‘개별화된 능력주의를 신봉’하며 개별적으로 높은 장벽을 뚫는 상황에 주목했다. 우리나라에서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셰릴 샌드버그의 자서전 <린인>이 인기를 끈 게 대표적이다. 세계적 여성 CEO들의 자서전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호명’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이 과도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매사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일터의 성 평등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몇몇 여성이 어떻게 성공했느냐가 아닌, 왜 여성이 일터에 오래 남을 수 없는가를 집요하게 물으며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흠결 없는~>에는 생생한 당사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다. 영희씨는 대학 졸업 뒤 어렵게 들어간 정규직 직장에서 “남자는 애교와 순발력이 없어 이런 일을 잘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식당 예약 일을 맡아야 했다. 매일 오전 팀원들에게 이모티콘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고, 의견을 조율해 점심 식당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20대 신입사원 문희씨는 회사에서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 춤’을 주문받았다. 조직은 그에게 ‘분위기를 업시키고’ ‘고분고분하지만 말은 잘하는’ 역할을 요구했다.
현장의 이야기들은 “여성이 아무도 반박 못할 만큼 잘해내면 된다”는 안일한 답변에 의문을 던진다. 남성연대의 규칙을 잘 알고 그 질서에 동화되기도 인정을 갈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박차고 나오고 싶은 일터의 여성이라면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인류세, 엑소더스
가이아 빈스 지음, 김명주 옮김, 곰출판 펴냄, 2만2천원
기후격변의 시대, 이주는 이미 시작됐다.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등에선 농사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살던 지역을 떠나기 시작했다. <네이처> 선임편집자이자 과학작가인 저자는 “인류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종류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이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추상적 설득 대신 인류가 살아남을 구체적 방법을 논한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창비 펴냄, 1만6800원
오십 대 ‘나’는 어느 날 남편이 여자 동료를 스토킹했단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은 그 행동이 진심이었기에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고, 상처받은 ‘나’는 폐인 같은 나날을 보낸다. 정신과 의사의 일기쓰기 권유에, 일기쓰기교실을 찾아간 ‘나’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데…. 기억, 쓰기, 회복에 관한 소설.
나의 막노동 일지
나재필 지음, 아를 펴냄, 1만7천원
27년간 신문사 기자로 일한 저자는 2018년 퇴직 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결국 막노동을 시작했다. 대기업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은퇴 후에도 일해야 하는 시대의 중년’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썼는데, 네이버·다음 등에서 누적 조회수 500만 회를 넘기며 공감을 얻었다.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주현덕 지음, 나무의마음 펴냄, 1만7800원
누구나 사랑 때문에 상처입고, 혼란을 겪고, 불안을 느낀다. 돈과 인기를 얻은 스타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하이브·JYP 등에서 아이돌과 연습생의 정신건강을 위해 1천 회 넘게 심리교육과 상담을 해온 저자가 ‘매혹, 권태, 상실 그리고 성장의 심리학’에 대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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