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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예약, 걸그룹 춤… 회사에서 맡은 일

“인정받고 싶지만 저항하고 싶은” 여성들의 일터 이야기 담은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등록 2023-11-18 13:59 수정 2023-11-24 14:07

조찬 모임. 아침 7시에 호텔 조식을 먹으며 전문가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길 대강 듣고, 참여자 간 연대를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열리는 모임의 참석자들은 아마 다른 ‘돌봄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또 이런 시간에 강연자를 초청한다는 건 ‘남의 돌봄 의무에 대해서도 무감’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교수로 종종 조찬 모임에 불려갔던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최근 출간한 책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봄알람 펴냄)에서 이를 ‘엘리트 남성의 오래된 관습’으로 명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학력, 전문가 남성들이 포진된 일터일수록 이런 배제적 관행이 조직의 위상을 과시하고 구성원들의 지위를 상징한다. 집단에서 지위가 오를수록 여성들 또한 이런 관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조찬 회의 참여를 ‘인정’으로 해석하게 된다.”

김 교수는 노동시장의 성 불평등을 보여주는 수많은 통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여성이 ‘개별화된 능력주의를 신봉’하며 개별적으로 높은 장벽을 뚫는 상황에 주목했다. 우리나라에서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셰릴 샌드버그의 자서전 <린인>이 인기를 끈 게 대표적이다. 세계적 여성 CEO들의 자서전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호명’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이 과도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매사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일터의 성 평등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몇몇 여성이 어떻게 성공했느냐가 아닌, 왜 여성이 일터에 오래 남을 수 없는가를 집요하게 물으며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흠결 없는~>에는 생생한 당사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다. 영희씨는 대학 졸업 뒤 어렵게 들어간 정규직 직장에서 “남자는 애교와 순발력이 없어 이런 일을 잘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식당 예약 일을 맡아야 했다. 매일 오전 팀원들에게 이모티콘과 함께 메시지를 보내고, 의견을 조율해 점심 식당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20대 신입사원 문희씨는 회사에서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 춤’을 주문받았다. 조직은 그에게 ‘분위기를 업시키고’ ‘고분고분하지만 말은 잘하는’ 역할을 요구했다.

현장의 이야기들은 “여성이 아무도 반박 못할 만큼 잘해내면 된다”는 안일한 답변에 의문을 던진다. 남성연대의 규칙을 잘 알고 그 질서에 동화되기도 인정을 갈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박차고 나오고 싶은 일터의 여성이라면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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