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어느 날 미국 시카고에서 한국인 동포가 만든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봤다. 동양인 출연진으로 쇼를 구성한 프로듀서 백 윌리엄은 말했다. “이 쇼의 목표는 우리가 여기 있음을 알리는 거야. 사람들이 시카고를 생각할 때 동양인을 떠올리진 않으니까.” 하지만 쇼가 시작되자 토종 한국인인 나는 의문이 들었다. ‘저 사람이… 동양인이라고? 미국인 아냐…?’ 인도인, 베트남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필리피노까지. 한 번도 내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 적 없는 사람들이 아시아계 미국인(Asian American)이라는 정체성 아래 비슷한 차별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다음날, 노스웨스턴대학 교정을 거닐다 흥미로운 포스터를 봤다.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한국과 그 불만’(Feminist, Queer, Crip: South Korea and Its Discontents). 페미니스트, 퀴어, 장애를 기반으로 한 소수자 정체성으로 한국 사회를 새롭게 보는 수업이 열리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여하라는 공지였다. 궁금한 마음에 담당자를 찾아보니 1990년생 한국인이었다.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노스웨스턴대학에서 탈식민과 한국학을 연구하는 위정은 교수를 만났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한국의 자부심이 느껴져요. 하지만 주류 문화와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지 좀더 신경 써야 하지 않나요. 한국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아닌, 좀더 통합적인 문제에도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니까요. 이를테면 한국 사회가 소수자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에 관한 문제들. 그것에도 자긍심이 포함될 자리가 있을까요.”
수업을 들은 미국 학생들이 만든 잡지에는 ‘한국 여성가족부의 미래’ ‘한국의 비만에 대한 공포’ ‘흑인을 희화화하는 한국 소년들’ ‘트랜스 혐오의 역사’ ‘몰카와 엔(n)번방’ 등이 소개됐다.
“학생들은 막연히 ‘미국의 페미니즘이 한국의 페미니즘보다 앞서갈 것’이라 생각하고 수업을 들으러 와요. 하지만 한국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장애에 대한 담론이 오래됐다는 것을 알면 쉽게 말할 문제도 아님을 배우죠. 한국 근현대사에 있는 징병제가 젠더 불평등에 영향을 끼쳤고, 그것에 미국이 역사적으로 기여한 부분도 크다는 것을 배우니까요. 자신이 몰랐던 한국이 거기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깨닫죠. 한국에 관한 것을 가르칠 때 기지촌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 것도, 거기서 생성된 젠더·인종·장애·혼혈 문제가 결국 주류를 재생산했으니까요.”
주류가 아닌 이야기를 볼 때 비로소 어떤 것이 왜 주류가 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장애 문제도 비슷했다. 나에게 아직 장애가 없는데 장애 문제를 알아야 하는가. “장애학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다뤄요.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가 없어야 하는가.’ 장애가 없어야만 갈 수 있는 길이면 그것도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이잖아요. 그런 타자를 만날 수 없는 것도 만들어진 환경이니, 장애가 없는 사람도 거기에 영향받죠.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도 나를 만드는 일부이기 때문에, 저는 중요한 것 같아요.”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❶ <모국: 쿠바, 한국, 미국>(Motherland: Cuba, Korea, USA)(대실 김 깁슨 감독)
https://youtu.be/W7MeSBJpoLc?feature=shared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특히 쿠바와 미국을 횡단하는 한인 동포 여성의 이야기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는지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❷ <팔레스타인>(조 사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왜 정착 식민지주의의 문제인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입니다. 먼 곳의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고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❸ <불구의 계보들>(Crip Genealogies)(멜 첸, 앨리슨 케이퍼, 은정 김, 줄리 미니치 편저)
장애학의 새로운 도상을 기획하는 신간입니다. 젠더, 비서구 문화, 인종 등을 통해 장애를 재조명하는 데 중요한 기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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