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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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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인생 2회차지?”…이런 말 듣는다면

등록 2023-06-09 21:58 수정 2023-06-14 13:23
<브러쉬 업 라이프>에 공무원으로 나오는 콘도 아사미(안도 사쿠라, 가운데). 왓챠 제공

<브러쉬 업 라이프>에 공무원으로 나오는 콘도 아사미(안도 사쿠라, 가운데). 왓챠 제공

“이날이 인생 1회차의 마지막 날인 것 같다.” 에스에프(SF) 같지도 미스터리물 같지도 않은데, 의미심장한 말이 초반에 나옵니다. <브러쉬 업 라이프>(왓챠, 2023년)는 오랜만에 본 신나는 일본 드라마입니다. 콘도 아사미는 공무원입니다. 대민업무를 할 때면 민원인들이 단지 화풀이하러 온 것처럼 다짜고짜 공무원에게 화냅니다. 그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인 친구들과의 수다로 풉니다.

이날 아사미는 소꿉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서 놉니다. 그러다 그만 친구들과 들른 편의점에서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하얀 공간의 저승에 도착. 저승의 사무원은 아사미에게 다음 인생에 태어날 동물을 보여줍니다. 큰개미핥기가 사진 속에 있습니다. 왜 큰개미핥기일까요. 저승의 공무원은 ‘덕을 적게 쌓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당황하는 아사미에게 사무원은 큰개미핥기로 태어나는 대신, 똑같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고 심드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하여 아사미는 아사미로 사는 인생 2회차에 들어섭니다. 아사미의 목표는 ‘덕을 쌓아 다음 생은 꼭 좋은 생물(되도록 인간)로 태어나자’입니다.

“너 이번 인생 2회차지?” 아사미는 동생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번 생은 처음’이어야 할 텐데, 어떤 사람들은 이전에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생을 살아갑니다. 아마 이것이 이 드라마의 착안점일 것 같습니다. 아사미는 덕을 쌓기 위해, 인생 1회차에서 있었던 불행을 막으려 노력합니다. 유치원 교사와 원생의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지 않도록, 아주 싫은 고교 시절의 교사지만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리지 않도록, 할아버지가 맞지 않는 약을 먹지 않도록 열심히 뛰어다닙니다.

아사미가 똑같은 인생을 지겹게 몇 회차(2회차 이상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씩 사는 이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면 그 당사자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연히 고군분투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도 들을 수 없습니다. 평화라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고군분투로 만들어집니다.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정치’란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나야지만, 그것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이라는 구태의연한 단어 조합을 떠올리면서 말이죠. 평화롭던 관계가 깨지고, 긁어 부스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일어나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한때, 다가오는 먹구름을 저 멀리 바라보며 구태의연한 단어 조합이 그렇게 그립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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