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재판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됐다. ‘성범죄 전담’임을 홍보하는 법무법인과 각종 감형 컨설팅 업체는 가해자들에게 감형을 위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55만원에 ‘반성문 2부, 탄원서 2부, 근절서약서 1부, 심리교육수료증(3일), 상담사 의견서(3일), 소감문’ 등을 사는 식이다. 돈을 내면 반성문을 대필해주는 업체도 난립한다.
법무법인과 컨설팅 업체가 안내하는 ‘꼼수’ 감형은 가해자를 위한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여성단체 등에 후원금을 기부하고, 봉사활동과 헌혈, 장기기증 서약 등을 하며, 피고인이 얼마나 ‘전도유망한’ 사람인지 증명하는 ‘스펙’을 강조한다거나 가족, 지인의 탄원서로 사회적 유대관계가 원만함을 강조하는 식이다. 피해자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역고소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뒤바꿔버리는 방법도 ‘무고 전문’ 등을 홍보 문구로 내세우는 가해자 전담 법인이 자주 쓰는 방법이다.
‘미투’ 운동 이후 성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가해자들의 불안함도 함께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이런 가해자 전담 법인이 만들어낸 시장은 더욱 커졌다. 가해자를 지원하는 곳에 돈이 모이다보니, ‘전직 경찰, 검찰, 판사’나 심리학자, 심지어 진술분석센터 등 전문가들이 이런 법인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끼어들 자리는 전혀 없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에서 일하며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로 활동해온 김보화씨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휴머니스트 펴냄)에서, 법조계와 성폭력 피해 당사자 등 31명을 인터뷰해 성범죄가 어떻게 ‘경제적 문제’가 됐는지 상세하게 짚는다. 이제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기반인 성별 권력과 성폭력을 용인하고 사소화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한 투쟁의 과정”이 아니라 “수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법적 정보의 판매와 전문성”이 “상품화”되면서 “자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문제”가 됐다.
저자는 단순히 ‘감형 상품’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런 현실에서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페미니즘 정치’의 공간으로 다시 가져올 수 있는지 고민한다. “피해자들은 사건의 해결을 공동체나 사회가 변화할 때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이 ‘연대’하고 정치적 ‘책임’을 함께 실천하며 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재판부를 포함해 법조계에서 반드시 일독해야 하는 책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농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코다·CODA)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지은이가 ‘공감’의 진정한 의미와 방식을 되묻는다. 상실과 결여가 삶을 다른 방식으로 긍정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와 책, 개인의 경험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연대하는 방법을 말한다.
평생을 ‘불쌈꾼’(혁명가)으로 살았던 민중운동가이자 이야기꾼 백기완 선생의 타계 2주년(2월15일)을 앞두고 노동자·농민·활동가·참사 희생자 유가족 등 39명이 고인과의 인연과 추억, 삶의 결의를 담은 글 모음. 불쌈꾼 백기완, 그리움, 한발 떼기, 노나메기 등 4개 장이 그대로 백기완의 ‘한 살매’(일생)를 보여준다.
동물행동학자이자 ‘통섭’의 과학자인 지은이가 찰스 다윈을 잇는 세계적 석학 12명을 만나 방담하고 전자우편으로 문답을 보완한 진화생물학의 향연. 스티븐 핑커, 리처드 도킨스, 마이클 셔머, 피터&로즈메리 그랜트 부부, 제임스 왓슨, 헬레나 크로닌, 대니얼 데닛, 피터 크레인, 마쓰자와 데쓰로, 스티브 존스, 재닛 브라운 등.
뛰어난 연구 업적뿐 아니라 넘치는 유머와 재치로도 유명한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의 일대기. 2005년 국내 첫 번역본이 나왔으나 절판됐다가 18년 만에 새 번역본이 나왔다. 원서 제목이 ‘Genius’(천재)다. 파인먼은 전자의 운동이 최소작용의 원리를 따른다는 것을 밝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사이의 연결고리를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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