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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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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물렀거라 인왕산로 열렸다

서촌 주민 요구로 인왕산로 1.5㎞ 구간 9월께부터 주말에 ‘차 없는 거리’로 운영
수성동계곡·치마바위·산속카페 등 보고 먹고 즐길 거리 풍성
등록 2022-05-27 00:55 수정 2022-05-27 10:37
2022년 4월9일 주민단체와 시민단체가 함께 연 ‘차 없는 인왕산로 만들기’ 2차 걷기 행사 모습. 인왕산로 차 없는 거리는 주민 주도로 이뤄졌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제공

2022년 4월9일 주민단체와 시민단체가 함께 연 ‘차 없는 인왕산로 만들기’ 2차 걷기 행사 모습. 인왕산로 차 없는 거리는 주민 주도로 이뤄졌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제공

서울 인왕산(해발 338m)은 이미 핫플레이스다.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께부터 젊은 등산객이 몰려들었다. 이젠 서울 도심에서 대표적인 산행 장소다. 인왕산의 매력은 작지만 다채로운 구간과 풍경을 가졌다는 점이다. 국사당 코스는 기암괴석이 많고, 한양도성길인 사직단~창의문 코스는 운동량이 많고, 수성동~석굴암 코스는 가파르고, 양쪽이 모두 벼랑인 기차바위 코스는 짜릿하다.

이런 인왕산에 새로운 명소가 더해진다. 다름 아닌 1969년 만들어진 군사도로 인왕산로다. 2022년 5월14일 서울시는 차도인 인왕산로를 주말에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다. 먼저 5월22일과 29일 시범사업을 한다. 이어 6~7월엔 주민 의견을 듣고, 8월엔 서울경찰청의 교통 심의를 받아 9월께부터 주말마다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할 계획이다.

호랑이상에서 윤동주언덕까지

차 없는 거리 시범운영을 나흘 앞둔 5월18일, 시민들에게 보행로로 개방될 인왕산로를 미리 찾아가봤다. 주말에 보행로로 운영되는 구간은 수성동 부근 호랑이상에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1.5㎞ 구간이다. 호랑이상으로 가는 보편적인 방법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사직단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거리는 1.2㎞ 정도 된다.

사직단 쪽은 볼거리가 많다. 사직단은 현재 복원 공사 중이다. 토지신과 곡식신을 모시는 사직단은 조선 때 종묘와 함께 가장 중요한 국가 제사 시설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시설이 훼손됐다. 사직단 오른쪽 길을 따라 걷다보면 1895년 문을 연 매동초등학교가 나온다. 한국에서 1894년 문을 연 서울교동초 다음으로 오래된 초등학교다. 그 왼쪽으로 종로도서관이 나오는데 이 역시 1920년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도서관이다.

종로도서관을 지나 올라가면 ‘황학정’이 나온다. 황학정은 1899년 경희궁 회상전 부근에 세웠던 왕실 활터다. 1922년 일제가 경희궁에 경성중학교(뒤의 서울고등학교)를 지으면서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원래 여기엔 ‘등과정’이란 오래된 활터가 있었다. 보행로 한가운데 ‘등과정’이란 바위 글씨가 남아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호랑이상이 나온다. 인왕산엔 조선 인조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 호랑이가 출몰했다. 특히 인왕산은 풍수상 한양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이어서 호랑이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풍수를 고려했으면 흰 호랑이상을 세웠어야 할 텐데, 황금빛 호랑이상인 것이 아쉽다.

호랑이상부터가 차 없는 거리의 시작이다.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수성동계곡이 나온다. 수성동은 조선 때 서울의 명승 중 하나이며, 안평대군 이용의 집 비해당이 있었다. 비해당은 안평대군의 주문을 받아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그린 곳이다. 정선도 <장동팔경첩>에 ‘수성동’이란 풍경화를 남겼다. 수성동은 개발 시대에 9동의 시민아파트에 묻혔다가 2012년께 시민아파트를 모두 헐고 옛 모습을 일부 되찾았다. 정선의 ‘수성동’에 나오는 ‘기린교’가 그대로 남아 있어 놀랍다.

잠실 월드타워까지 보이는 뷰맛집

수성동에서 무무대 쪽으로 걷다가 돌아보면 범바위와 치마바위(정상)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무무대라는 전망대가 나온다. ‘없는 것이 없는 전망대’라는 뜻이다. 서울 도심뿐 아니라 멀리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부터 관악산-청계산-남산-아차산-용마산-낙산-백악산-북한산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2022년 5월10일 개방된 청와대 건물들도 잘 보인다.

무무대 아래는 옥류동으로 청계천의 상류인 백운동천의 지류다. 조선 후기 대표적 권력 가문인 장동(안동) 김씨와 중인 문학가들이 활동했던 곳이다. ‘옥류동’이란 송시열의 큼직한 바위 글씨가 아직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엔 악질 친일파인 윤덕영의 거대한 양옥과 한옥이 있었으나, 지금은 윤덕영 첩의 한옥만 허물어져 있다. 해방 뒤 막개발돼 아름다웠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무무대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최근 큰 인기를 누리는 ‘초소책방 더숲’이 나온다. 예전엔 규모 있는 경찰 초소가 있었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리모델링해 멋진 산속 카페를 만들었다. 야외 테라스가 4개층에 걸쳐 있는 것이 매력이다. 다 좋은데 차량이 많아진 것이 흠이다. 초소책방 아래는 청풍계다. 장동 김씨 김상헌의 형 김상용을 모시는 종가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그 집에 있던 ‘백세청풍’ 네 글자만 남아 있다. 그 위로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집이 들어서 있다.

카페를 지나 조금 걸어가면 내리막길이 시작되면서 오른쪽으로 백악산의 옆모습이 나타난다. 백악산을 계속 보면서 내려가면 정자가 하나 나온다. 정자 쪽으로 올라가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시인의 언덕을 오르는 길에 뒤돌아보면 칼날 같은 벼랑인 하얀 기차바위 모습이 멀리 보인다. 시인의 언덕 위에 올라가면 족두리봉에서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비봉 능선이 좌우로 펼쳐진다. 시인의 언덕은 바로 아래에 윤동주문학관이 세워져 붙은 이름이다. 언덕 위에 바위를 세워 ‘서시’를 새겨놓았다. 사실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은 이 근처가 아니라 아까 지나온 수성동 바로 아래 동네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인왕산로 차 없는 거리의 끝인 ‘북악스카이웨이 3교’가 나온다. 이젠 사라진 길 이름이 다리 이름엔 남아 있다. 다리까지는 인왕산로, 다리를 건너면 북악산로다. 다리 건너 바로 오른쪽에 한양의 북문인 창의문이 있다. 여기서부터 백악산 구간 한양도성이 시작된다.

청와대 개방 뒤에야 서울시 허가

주말에 인왕산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 일은 주민 참여 민주주의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사업은 2017년부터 서촌 주민 모임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해온 일이다. 2021년 3월 주민들은 국방부의 조건부 동의를 받아 이 사업을 서울시에 전달했다. 서울시는 그해 11월 이 사업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주민들에게 답변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과 청와대 개방에 따라 이 사업은 되살아났다.

서촌 주민 모임의 류인혜(53)씨는 “4대문 안이 녹색교통지역인데, 차 없는 거리를 하면 인왕산의 자연생태도 보호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행정기관이 일할 때 정치적 목적보다는 주민들 뜻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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