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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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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대통령이 보던 풍경

청와대 개방으로 완전히 열린 백악산 등산로 탐방기…
600년 시간여행, 조선시대 한양도성과 박정희 시절 군사시설 흔적 공존
등록 2022-05-21 17:39 수정 2022-05-23 11:32
2022년 5월18일 청와대 전망대에서 본 서울시내 전망.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과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2년 5월18일 청와대 전망대에서 본 서울시내 전망.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과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진수 선임기자

능선처럼 내려앉은 빌딩들 뒤편으로 자리한 서울 남산이 파란 하늘에 가닿았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겹겹의 빌딩들 사이로 난 차도는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까지 뻗어 나갔다. 궁궐 돌담길과 이어진 청와대 입구엔 풍물패가 보였다. 꽹과리, 징, 장구, 북 소리가 백악산 중턱까지 울려퍼졌다. 54년 동안 시민에게 닫혔던 청와대 뒷산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올라가 광화문광장을 바라봤다는 청와대 뒷산. 2022년 5월10일부터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시민에게 열린 그곳엔 ‘청와대 전망대’라는 이름이 생겼다.

역사 느끼려면 창의문에서 출발

뉴욕에도 도쿄에도 베이징에도 베를린,/ 모스끄바에도 없는 산

―2007년 북악산 개방을 축하하며 황지우 시인이 쓴 축시 ‘풍경 뻬레스트로이까’, 이하 동일

5월17일, 서울KYC 도성길라잡이의 안내를 받으며 백악산 열린 길과 청와대 뒷길을 함께 걸었다. 백악산 일대와 한양도성길이 전면 개방된 지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시민단체인 서울KYC에서는 ‘도성길라잡이’들이 무료로 한양도성길을 소개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한양도성길 해설은 서울시 공공예약서비스 누리집에서 예약하면 된다.

청와대와 북악산 사이에 새로 개방된 구간을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종로구 경복고 옆 ‘칠궁 뒷길’에서 백악산을 오르는 길로 500m가량 된다. 금융연수원 옆 ‘춘추관 뒷길’로도 올라갈 수 있다. 두 길 모두 ‘청와대 전망대’까지 왕복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마지막으로, 창의문에서 시작해 백악산 1번 출입문을 거쳐 한양도성길을 넘어가는 3㎞ 남짓 되는 길이 있다. 느린 걸음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창의문에서 시작하는 세 번째 길을 서울KYC 도성길라잡이는 추천한다.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의 역사까지 경험하려면 (한양도성의 일부인) 창의문부터 출발해야 해요. 한양도성은 태조 이성계가 종묘와 사직, 경복궁을 짓고 세 번째로 올린 건축물이죠. 분단으로 시민에게 통제됐던 백악산 북쪽부터 남쪽까지의 길이 조금씩 열려온 역사도 몸소 느낄 수 있습니다.” 김석찬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한양도성은 1396년 태조가 수도 한양의 경계를 그리고 외부의 공격에서 지키려 지었다. 경복궁을 가운데 두고 백악산, 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을 따라 18.6㎞ 길이의 성이 이어졌다. 사대문이 세워졌고 대문 사이에 네 개의 소문을 내었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서북쪽에 있는 소문이다. 조선시대 인조반정 때 반정세력이 창의문을 거쳐 광해군이 있던 창덕궁을 향해 가기도 한 곳이다.

단 하루도 산을 못 보면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산이 목숨이고 산이 종교인 나라에

평일인데도 오후 2시 창의문 앞, 삼삼오오 무리 지어 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이 눈에 띄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바닥에 깔린 돌을 밟아보니 신발을 신었는데도 반들반들한 감촉이 느껴졌다. “반들반들하죠? 사람들이 하도 많이 지나가서 그렇습니다. 선조들은 이 문을 통해서 평안도 신의주까지 가곤 했거든요.” 김 해설사가 말했다. 창의문을 지나 부암동으로 난 길을 걸으면 한양도성으로 갈 수 있는 백악산 1번 출입구가 나온다. 검은 쇠창살에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는 경고문이 아직 붙어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한양도성 백악산 바깥길을 개방하며 쇠창살에 걸린 자물쇠를 직접 열었다.

백악산 한양도성길과 그 옆에 설치된 철조망. 서울KYC 제공

백악산 한양도성길과 그 옆에 설치된 철조망. 서울KYC 제공

‘서울의 DMZ’라 불린 이유

1번 출입구를 지나 가파른 계단길을 올랐다. 숲 내음이 가득하고 꿩 소리가 들리고 아카시아꽃 냄새도 풍겼다. 경계초소를 지나니 옛 군견훈련장 터가 보였다. “군사시설이었으니까요. 대공포 진지, 벙커도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이곳이 서울의 디엠제트(DMZ)라고 불린 이유입니다.” 군견훈련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김 해설사가 설명했다. 한양도성길은 500년 넘게 백성과 시민이 노닐던 곳이었다. 조선시대 백성은 소원을 빌며 한양도성을 걸었다. 해방 이후로도 주민들은 백악산에서 땔감을 구하거나 농사를 지었다. 1968년 1월 김신조 등 무장공작원이 청와대를 습격한 뒤 인왕산과 북악산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군사시설로 바뀌며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다.

하여 차출된 팔도 머슴애들의 사투리를/ 잘 짜맞춘 성곽이/ 산허리를 재봉틀질한 것 같은

한양도성도 조선시대에는 군사시설이었을까. 철조망과 철책 너머로 네모반듯한 돌이 차곡차곡 쌓인 한양도성이 보였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한양도성길을 걷다보면 돌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태조 때 쌓은 돌은 작고 불규칙하죠. 세종 때는 좀더 안정감이 생겼고요. 청나라는 병자호란 이후 성을 마음대로 쌓지 못하게 했는데요. 숙종 때는 청나라 정세가 안 좋을 때를 이용해 네모반듯한 사각 모양으로 착착 성을 쌓았습니다. 순조 때는 돌의 크기가 더 커졌고요. 심지어 북파공작원이 남침한 이후 박정희 정권도 대대적으로 성곽을 보수하고 증축했죠.” 한양도성은 청와대를 수비하는 구실도 했다. 도성 안쪽 길이 열리며 철조망은 철거됐지만 189m 길이의 철조망은 ‘기억의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졌다. 철조망을 따라 올라가면 총탄이 새겨진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1968년 김신조 사건(1·21 사태) 때 군대와 경찰이 북한 무장공비와 싸우며 생긴 분단의 흔적이다.

이렇게 풀어버리니 별것도 아니었던 두려움이/ (중략)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아름다움이 되었으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던 한양도성은 조금씩 시민 곁으로 돌아왔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인왕산 일부가 열렸다. 백악산 개방을 시작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 때였다.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백악산 일대 한양도성길을 사실상 전면 개방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청와대 앞길, 2018년 인왕산길, 2020년 한양도성 바깥길(백악관 북쪽), 2022년 4월 한양도성 안길(백악산 남쪽)을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10일 청와대를 떠나 용산 집무실로 옮기자, 청와대 뒷길까지 시민의 공간이 됐다.

청와대가 경복궁 후원으로 복원되면

한양도성길을 따라 청운대 쉼터 인근에서 숲속으로 들어가면 세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숙정문, 법흥사터, 만세동방으로 나뉘는 길이다. 청와대~백악산 신규 개방 구간을 가려면 만세동방으로 가야 한다. 여기부터는 내리막길이 많다.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약수터인 만세동방의 물은 현재 오염돼 마실 수 없다. 한동안 닫혀 있던 길이라서 그럴까. 꽃내음이 확 풍기는 숲길이 시민을 반겼다. “문 열렸네, 감동이다. 열렸다!” 함께 길을 걷던 우미정 서울KYC 사무국장이 환호했다. 청와대 뒷길로 들어가는 대통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대통문 출입시간은 오후 5시까지로 제한돼 있다.

저 권부의 푸른 기와집 그늘에 가려/ 지난 반세기 마음의 위도에서 사라졌던 자리에서

길을 따라 걷던 시민들은 청와대부터 경복궁, 광화문, 남산서울타워까지 보이는 경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 보이네요. 진짜 광화문까지 싹 보인다. 명당이다. 여기 청와대도 보이네.” 우미정 사무국장이 말했다. 경복궁은 13만 평이고 청와대 터는 대략 7만 평이다. 20만 평에 가까운 땅에는 조선왕조 500년과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청와대는 사실 경복궁의 후원이었어요. 이 땅을 후원으로 복원한다면 20만 평의 문화재 공원이 될 것입니다. 경복궁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뒤 군부대가 주둔하기도 했죠.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청와대를 옮겼으면 어땠을까. 숙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 해설사가 말했다.

오늘 이제는 육성으로 이름 불러도 될/ 그대 백악이여

청와대 전망대에서 청와대 춘추관 뒷길로 내려오면 여러 군사시설의 흔적을 접할 수 있다. 이 근방은 한때 미군의 미사일방어시스템인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1차 요새가 한양도성이었다면, 김신조 사건 이후 2차 요새가 됐던 거죠. 남북관계가 악화될 땐 요새화가 더 심해졌고요.”

알고 나니 더 사랑하게 됐다

등산을 마치고 삼청동으로 나오니 오밀조밀한 건물들에 오래된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했다. 문득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쓴 글이다. 청와대 개방을 이유로 걸었더니 백악산이 마음에 들어왔다.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됐으니, 더 사랑하고 더 알아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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