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관심받을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

선택적 관종 도예은님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2-05-12 15:08 수정 2022-05-13 05:49
❶<캬랑>의 ‘웹에서 여자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해요’ 유튜브 갈무리

❶<캬랑>의 ‘웹에서 여자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해요’ 유튜브 갈무리

❷<일상의 효정>의 ‘PLAYLISTㅣ관음’ 유튜브 갈무리

❷<일상의 효정>의 ‘PLAYLISTㅣ관음’ 유튜브 갈무리

<캬랑>은 괴담, 미스터리 사건을 다루는 채널이다. 영상 ‘웹에서 여자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해요’❶는 유튜버 둘이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여자를 집에 불러 생긴 기괴한 일을 다룬다. 직접 촬영하는 듯한 화면 구도나 흔들림 등으로 보아 실황중계인가 싶지만, 허구를 실제처럼 구성한 페이크다큐다. 문 아래로 엿가락처럼 늘어진 여자 손이 툭 떨궈질 때는 진짜가 아닌 걸 알면서도 오금이 저렸다. 어지간한 고어물을 다 섭렵했다는 추천인은 이 채널이 희귀한 해외 고어물도 잘 발굴한다며 흡족해했다.

<일상의 효정>은 영화·소설 등에서 영감받아 음악을 큐레이션(추천)하는 채널인데, 운영자의 취향이 남다르다. <아가씨> <코렐라인> <박쥐> 등 영감받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 어둡고 격정적이며 공포스러운 음악이 많다. ‘잔혹’이라는 재생목록이 따로 있을 정도. ‘관음’이라고 짧게 제목 붙인 추천 영상❷의 설명창 문구가 섬찟하다. ‘너한테 난 지옥이었지?’

둘 다 호불호가 강한 마니아 채널이다. 추천인 도예은님의 취향이다. 한편 예은님에 대한 타인의 호불호도 이 채널들처럼 극명히 갈린다. 열광하는 사람과 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어릴 때부터 적이 많았는데, 누가 나 싫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더라고. 나 부러워한다는 거잖아.” 예은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들으면 더 몸서리치게 할 멘털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예은님은 나름 인플루언서다. ‘상마니아’만 모였을 <캬랑> 채널 구독자가 무려 37만 명인 것처럼, 예은님을 좋아하는 사람을 전국에서 모으니 1만 명이 넘는다. 음침한 플레이리스트와 달리 예은님은 텐션이 높고 화려하고 끼 많고 몸매 좋고 예쁘다. 유명 포토그래퍼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음반도 내고, 아는 인플루언서도 많다. 올해는 이모티콘도 출시하고, 책도 써보려 한단다.

이런 예은님을 풀타임 인플루언서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 예은님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사내 최연소 팀장에, 1년치 성과를 한 분기 만에 내버리니 평범하다고 말하긴 어려우려나. 21살 때부터 일해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커리어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너 주목받는 거 좋아하잖아. 커리어도 엄청 탄탄한데 이거로 관심받고 싶지는 않아?” “일에서는 유명해지지 않고 그냥 돈만 많이 벌고 싶어. 나처럼 적이 많은 사람은 이름 알려지면 큰돈 못 만져.” 너무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인지 유난히 뒷말이 많았다던 예은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이 떠올랐다. 개의치 않는 듯하지만 분명 내상이 있었겠다 싶다. 매운맛 콘텐츠로 시끄러운 속을 덮는 걸까.

“일이 아니면 유명해져도 돼?” “어느 정도는. 잘해야 하는 게 아니라 완전 재미로 하는 거니까. 그런데 여기서도 너무 유명해지면 귀찮지. 일에도 방해되고, 사는 데도 피곤해.” 예은님은 최근 화제의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 문의도 왔는데 거절했다. ‘제2의 프리지아’가 될 수 있었는데! 더 원하는 게 있다면 관심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적 관종이다. 관심을 즐기면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관심받을 분야는 내가 정한다. 참 산뜻하다.

나는 왜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지 깊게 고민한 적이 있다. 인정욕이 강한데 별다른 재능이 없어, 그나마 비교우위에 있는 ‘일’에 본능적으로 집중하는 것 같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일에서 관종인 것이다. 관심을 최상위 목표로 둔 사람은 선택지가 적어 산뜻해지기 영 쉽지 않다. 선택적 관종인 예은님이 (싫지 않고) 부럽다.

김주은 웹툰 IP 프로듀서 인스타그램 @alt.ctrl.shift

도예은(인스타그램 @_yesilver)의 추천 영상

❶<캬랑>의 ‘웹에서 여자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dcCHAEIpxiE

❷<일상의 효정>의 ‘PLAYLISTㅣ관음’

https://www.youtube.com/watch?v=KisvWoVUZz0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주은 IP 프로듀서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