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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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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

아무리 작아도 한명 한명이 다 하나의 세계인 ‘어린이라는 세계’
등록 2022-05-05 05:53 수정 2022-05-06 02:16
채널A 예능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전문가의 처방을 하는 오은영 박사. <금쪽같은 내 새끼> 화면 갈무리

채널A 예능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전문가의 처방을 하는 오은영 박사. <금쪽같은 내 새끼> 화면 갈무리

5월5일은 변함없이, 어린이날이다. 무려 100주년이다.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어른, 어린이 세계를 지나온 사람들이 세계에는 가득하다. 필자는 9살(만 7살) 남자 어린이 주연(가명)이를 키운다. 개인이자 엄마로서,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관찰자다. 놀이터에 앉아 있으면 가끔 아이들이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아이와 함께 지내며 보고 느낀 것을 어린이날을 맞아 모처럼 써보려 한다. 덧붙여 어린이를 상대하는 어른을 인터뷰했다.

미세기 화실에서 나뭇조각, 낙엽 등을 재료로 만든 아이들의 작품. 미세기 화실에서는 미술가인 서재웅, 김아름 선생님이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세기 화실 제공

미세기 화실에서 나뭇조각, 낙엽 등을 재료로 만든 아이들의 작품. 미세기 화실에서는 미술가인 서재웅, 김아름 선생님이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세기 화실 제공

‘문제아’냐 ‘문제없는 아이’냐, 라는 분류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펴냄)는 작가 김소영이 출간한 책 제목이다. 2020년 11월 출간 이후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책은 어린이 관련 서적 중 단연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그간 아이를 키우며 다양한 육아서와 소아과 의사가 쓴 교육 명저, 초등 입학 엄마들의 걱정을 완화하는 책들을 과잉 섭취해왔다. 책마다 다양한 관점과 전문지식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존재감은 없었다. 통상 책 안에서 영유아와 어린이는 매뉴얼과 훈육을 받아야 하는, 문제아와 문제없는 아이로 분류됐다. 이런 책들에 담긴 ‘난 이렇게 키우고 (영어 등을) 가르쳤다’ ‘이렇게 해봐’라는 지침은 꽤 구체적이었으나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묘사는 없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확실히 다른 하나의 ‘세계’였다. 책 페이지마다 읽으며, 어느 구절이든 상관없이 내 마음에 밑줄을 치고 싶었다. 김소영은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으로서, 10년 남짓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었다.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는 점이 추동하는 위치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안다’고 착각하는 엄빠(부모)와는 다른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난 아이들의 면면과 장면을 구체적으로, 또 예민하게 배치한다. 아이들의 신체 크기가 어른보다 작다는 점, 그래서 사물을 사용할 때 어른과 다른 감각을 쓴다는 사실을 어른 사람(=나)은 읽으면서 배웠다. 김소영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어른이라는 환상을 내다버리는 대신 어린이들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세계를 갖고 있음을 묘사한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170쪽) 소설이 아닌 글에서 어린이의 존재를 문제 해결 대상이 아닌 ‘옆에 있는 사람’으로 그린 게 왜 이리 나에게 생생했을까.

그것은 내 옆의 아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 행동과 행동 사이의 머뭇거림을 낚아챘기 때문이다. 울음이 터진 순간보다 울 듯 말 듯 한 기분, 발표하고 싶었는데 손을 들기까지의 부끄러움, 한껏 기대했는데 무던하고 차가웠던 선생님의 표정 같은 것을 아이들은 본다. 김소영의 책을 읽은 이후 내 곁의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이라는 세계’ 이 말을 가끔 떠올렸다. 그러니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이 한 말이 새롭게 기억나곤 했다. 그중 하나만 기억하면 “채윤(가명)이는 비 오는 날이면 지연(가명)이랑 창밖 비 오는 냄새 맡는 걸 좋아해”라는 말이었다. 주연이가 7살 때였는데 비 오는 날마다 같은 유치원 반 여자친구 둘이 창가에서 비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린 시절도 날씨와 이미지, 전체 정황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시절의 운동장 흙냄새, 창밖의 차들이 움직이는 소리, 겨울이면 입었던 자두색 코트, 이유를 몰랐던 의아함 등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아이들이 꽉 채워진 이벤트와 여행, 장난감과 파티 사이에 존재하는 ‘비 오는 날 창밖 보기’ 같은 멍때리는 순간에서 가장 그 아이다운 모습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이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존재하는 묘사 자체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린이를 대하는 개인, 공동체의 태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소영이 쓴 ‘품위’라는 단어와 연관될 것이다. 그는 책에서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고 싶다”(40쪽)고 했다.

김소영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가 하나의 창이라면 근래 오은영 박사(소아·청소년 전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등장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책, 유튜브 영상 등은 하나의 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채널A)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활용한 ‘말하는 파란색 코끼리 인형’은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아이의 마음이라는 문을 툭툭 두드려 아이가 말하게 한다. 이어서 전문가라는 메스를 든 오은영 박사는 실전 훈육과 적용 가능한 처방전으로 어린이의 현재를 공론화한다. 오은영 박사의 발화와 등장은, 소화제 같은 방편을 알려주는 해결책으로서의 ‘문’이다. 처방전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전문성과 위엄을 가진 여성 전문가의 등장, 명료한 모국어로 어린이를 키우는 데 문제에 처한 이들에게 적확한 지식을 제공하고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상승시키는 일은 백번 환영할 일이다. 어릴 때부터 방송에서 새 박사, 건축학자 등등 다양한 남성 지식인들이 아이를 진단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렇지만 오은영 박사처럼 단일한 목소리의 주체가 ‘위로’가 아닌 ‘전문 처방전’을 명문화하는 예는 흔치 않았다.

미세기 화실에서 나뭇조각, 낙엽 등을 재료로 만든 아이들의 작품. 미세기 화실에서는 미술가인 서재웅, 김아름 선생님이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세기 화실 제공

미세기 화실에서 나뭇조각, 낙엽 등을 재료로 만든 아이들의 작품. 미세기 화실에서는 미술가인 서재웅, 김아름 선생님이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세기 화실 제공

미세기 화실에서 나뭇조각, 낙엽 등을 재료로 만든 아이들의 작품. 미세기 화실에서는 미술가인 서재웅, 김아름 선생님이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세기 화실 제공

미세기 화실에서 나뭇조각, 낙엽 등을 재료로 만든 아이들의 작품. 미세기 화실에서는 미술가인 서재웅, 김아름 선생님이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세기 화실 제공

박사의 처방전과 ‘반전의 금쪽이’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은 아이의 부모로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흥미롭게 보기 시작했다. 문제 누설과 문제 해결 장치, 오은영 박사가 자주 말하는 ‘지시는 짧고 간결하게’의 현현을 볼 수 있어서다. 근래 회차에는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금쪽이를 아이가 아니라 아이의 부모’로 뒤바꿔 처방하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금쪽같은 내새끼>는 현실과 드라마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을 시청자는 알고 있다.

그러나 방송 안에서 오은영 박사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보편성’ ‘평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강하게 깃들었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오은영 박사는 2022년 3월11일 방영된 프로그램에서 화장하며 놀거나 치마를 입고 걸그룹 춤을 추는 남자 어린이에게 성역할 관념에 문제가 있음을 우려했다. 또 어린이의 사생활 노출, 프로그램에서의 대상화, 자기결정권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말하는 코끼리 인형을 신기해하며 마음의 문을 여는 아이는,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맥락을 얼마나 이해할까. 연예인 이지현의 아들이 스스로 “(저는) 국민 ADHD입니다”라고 말할 때 어린이의 (카메라 앞의) 인권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까. 프로그램은 ‘가짜로 통제된 상황을 만들어’ 개인을 실험하던 ‘몰래카메라’와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른다.

근 몇 년간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텔레비전 속 ‘일반인 어린이’는 문제아 아니면 영재였다. 오은영 박사와 시청자 앞에서 ‘어린이’는 금쪽이와 영재라는 거대한 가명 앞에서 정상성을 강요받는다. 또 어른이 된 누군가에게 스스로 “역변했다”고 말할 때의 어린이란 얼마나 속수무책인가.

2021년 5월5일 어린이날에 진행된 ‘어린이 기자단 기자회견!’에 당첨된 주연(가명)이는 한화 김민우 선수를 인터뷰하는 기자단에 참여했다. EaglesTV 화면 갈무리

2021년 5월5일 어린이날에 진행된 ‘어린이 기자단 기자회견!’에 당첨된 주연(가명)이는 한화 김민우 선수를 인터뷰하는 기자단에 참여했다. EaglesTV 화면 갈무리

아이는 어른들의 가늠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연이에게 텔레비전 속 오은영 박사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다. 내가 어린이를 키우며 느낀 것은 대부분 아이는 항상심과 향상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너무 긍정적인 방향을 바라보는 것인가 싶지만, 정말 그렇다.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규칙적으로 매일 하던 것을 또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나도 작가 김소영처럼 어린이에게 배운다. 9살 남자아이를 키우며 어린이들은 의리가 있다는 걸 배운다. 7살 때 우연히 야구팀 한화를 응원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주연이는 지금까지 한화 팀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실패까지도? 오랜만에 겨룬 결승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한화 어린이 기자단이 돼 2021년 5월5일 어린이날에는 한화 김민우 선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주연이가 현장에서 던진 질문은 “야구 선수들은 경기 중 왜 껌을 씹나요?”였다. 아이들은 때로 상대방에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린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어른들이 가늠하는 것 이상으로 더 잘 알고 있다. “엄마는 나를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 8살 때 주연이가 한 말이 내게는 참 신기했다.

현시원 독립큐레이터·시청각 랩 대표

그림에는 아이들의 성격이 그대로

미세기 화실의 김아름 선생님 인터뷰
어린이를 키우며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아이는 어른의 나이를 가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세기’ 화실의 예체능 선생님들은 ‘다람쥐’ ‘올챙이’ ‘치타’ 등의 예명을 사용하는데,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2년 전 문을 연 동네 화실 ‘미세기’는 나뭇조각, 열매, 나뭇잎, 돌멩이 등 자연의 재료를 활용하고 주 단위로 재료 중심으로 주제를 바꾸어 어린이와 다양한 방식의 만들기와 그리기를 하고 있다. ‘미세기’의 김아름 선생님에게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물었다.

미세기라는 화실에서 만난 어린이들을 보며 예상과 가장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한다고 느끼세요?

“어린이들의 ‘열린 사고방식’입니다. 2년간 여러 어린이가 화실에 왔습니다. 화실과 가까운 동네에 사는 어린이부터 먼 동네에 사는 어린이 등 다양했습니다. 미국에서 오거나 중국에서 살다 온 어린이 등 한국 외 지역에서 생활한 어린이가 꽤 있었습니다. 언어가 달라서 의사전달이 원활하지 않았을 때도 무언가를 만들 때면 서로 주고받으며 계속 변형하고, 상상하고, 이야기를 지어냈습니다. 며칠 전에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라는 단어를 한 어린이가 말했는데 다른 아이가 ‘다이’(Die)는 ‘죽는다’는 뜻이라 말하고, 또 다른 아이가 ‘다이 노 마이트’(Die no mite)는 ‘No’가 들어가니 ‘죽지 않는 폭탄’이라 하더군요. 그러고는 함께 ‘죽지 않는 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상상하고, 그것을 함께 만들 때 가장 좋아한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만든 작품이나 그림이 아이의 성격과 관계가 있나요?

“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통된 주제와 재료를 줘도 그것을 어떻게 변형하는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어떻게 그리는지 작품을 보면 어린이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을 크게 그리는 아이, 작고 디테일하게 그리는 아이, 구조적으로 만들기를 하는 아이,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는 아이, 이야기를 만드는 아이 등 저마다 개성 있는 어린이들의 성격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엄하지 않게 규칙을 피드백하던데요. 아이들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어떤 원칙이 있나요?

“피드백을 줄 때 먼저 아이들의 그림을 함께 바라보고 제가 궁금한 점을 물어봅니다. 그림에서 이건 무엇인지, 왜 이런 색을 칠했는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등을 질문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작품을 만든 과정을 한번 되짚어보고, 저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색이나 재료를 선택하고 작업한 점을 위주로 칭찬해줍니다. 저는 아이들이 선을 하나 그어도 다 훌륭하고 멋져 보여요. 그래서 칭찬을 많이 해주는 편입니다. 수업에 규칙이 있어야 할 때는 어린이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주고, 어린이의 상상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정하게 말하려 노력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가위나 칼 같은 도구를 사용할 때 함께 조심하기 위해 간단한 규칙을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서로 기분 나쁠 수 있는 장난은 단호하게 중단시킵니다. 아이들은 규칙이 있다고 해서 싫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키려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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