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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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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공공’ 회복을

인권 잣대로 들여다본 팬데믹, 백재중의 <팬데믹 인권>
등록 2022-04-13 22:26 수정 2022-04-14 11:34

그리스 신화에서 티탄족 거인 아틀라스는 제우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 가이아(대지·지구)의 서쪽 끝에서 우라노스(하늘·천구)를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다. 벌써 3년째 지구촌을 휩쓰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선 세계 보건·의료인들이야말로 ‘21세기 아틀라스’일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감염병에 노출되거나 방역 체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환자와 사회적 약자들이다. 2022년 4월5일 기준, 세계에서 618만여 명(한국 1만7662명)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목숨을 잃었다.

<팬데믹 인권>(백재중 지음, 건강미디어협동조합 펴냄)은 호흡기내과 전문의가 “인권을 잣대로 팬데믹 과정을” 촘촘하게 돌아보고 “인류의 정치·사회 시스템과 패러다임 대전환”을 촉구한 책이다. 팬데믹 첫해인 2020년 여름, 지은이는 20년 넘게 일하던 서울 녹색병원을 떠나 경기도 시흥의 민간 공익병원인 신천연합병원에서 취약계층 환자들을 보살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이자 인권 위기다. 지은이가 진단한 인권 위기는 전면적이고 총체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인권인 ‘생명권’이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사이에 뚜렷한 위계와 불평등을 드러냈다. 확진자들은 감염병 취약집단에 속했을 가능성과 개인 부주의를 이유로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됐다. 보편적 인권인 자유권, 평등권, 교육권은 제한됐다. 특히 어린이·여성·장애인·노인·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는 보건위기 사태의 최대 희생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시설 폐쇄로 돌봄노동이 무너져서다.

마스크 착용 의무, 행적(동선) 추적, 강제격리, 백신 권고, 재택근무와 온라인수업 등 강력한 방역지침은 개인의 선택권 및 인권과 충돌했을 뿐 아니라 잠복했던 여러 인권 문제를 들춰내며 불평등을 심화했다. 팬데믹 초기,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공적 마스크 배급과 전 국민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했던 차별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논리가 공공의료를 크게 위축시킨 폐해는 보건위기 국면에서 도드라졌다. 한국의 공공의료 병상 비중이 약 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3%에 턱없이 못 미치는 꼴찌라는 지적은 뼈아프다. 선진국들이 백신을 독점하고 몇몇 백신 제조업체가 인류의 대재난기에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것도 낯뜨겁다. “백신 제국주의”이자 “재난 자본주의”다.

팬데믹 대응과 기후위기 대응의 공통점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 불필요한 산업생산 감축과 잠시 멈춤의 여유는 바이러스 전파를 막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인다. 지은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가도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며 “공공의 회복과 국가의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포용하고 배려하는 ‘돌봄 패러다임의 전환’이야말로 진정한 ‘사회 방역’이란 얘기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팬데믹 시대에 경계를 바라보다

차용구 외 14명 지음, 소명출판 펴냄, 1만5천원

중앙대·한국외대 HK+ 접경인문학연구단이 2021년 1~9월 <한겨레21>에 연재한 글들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코로나19 시대의 국가·민족·국경, 경계와 만남, 평등과 치유를 향해서 등 3부로 짜였다. 감염병 위기로 강화된 경계와 약해진 연대를 진단하고, 접경 공간의 풍부함을 재조명한다.

약탈자들

게리 하우겐·빅터 부트로스 지음,

최요한 옮김, 옐로브릭 펴냄, 1만3천원

지난 수십 년간 세계는 빈곤층에 더 많은 자원을 지원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는 효과가 있었지만, 동시에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폭력도 늘었다. 지역사회의 형사·사법 체계가 사회적 취약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빈곤과의 싸움은 곧 폭력과의 싸움”이다.

나보코프 단편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문학동네 펴냄, 4만3천원

20세기 영문학에 굵은 획을 그은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 나보코프가 생전에 남긴 68편의 단편소설 전체를 수록했다. 나보코프는 죽음과 삶, 현실과 환상, 재능과 도덕의 경계를 천착했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하다. 장편 대표작으로 <롤리타>와 <창백한 불꽃>이 있다.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2세트

열린책들 펴냄, 각 3만8천원

2023년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출간 100주년을 앞두고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1913)부터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까지 한국 현대시 초기 25년간의 대표 시집 20권을 추린 시선집. ‘하늘’ 세트는 이상적 세계에 대한 향수를, ‘바람’ 세트는 당대 현실의 고통과 새 세상의 희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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