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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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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TV 보면, 어쩐지 책이 사고 싶어진다

10만 구독자 목전에 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의 성공 비결
등록 2022-04-09 15:20 수정 2022-04-10 01:55
민음사의 ‘2020년 하반기 마케팅 대회’ 영상. <민음사TV> 갈무리

민음사의 ‘2020년 하반기 마케팅 대회’ 영상. <민음사TV> 갈무리

제법 진지한 분위기의 회의실. ‘민음사 하반기 마케팅 대회’라고 적힌 화이트보드에는 부제가 하나 더 달려 있다. 바로 마케터인 ‘조아란을 웃겨라’라는 미션. 곧 출간될 신간을 작업 중인 네 명의 편집자가 모여 각자 “내 책만 사달라”며 기상천외한(?) 마케팅 방법을 성심껏 어필한다. ‘조아란을 웃겨라’는 미션을 성취하기 위한 네 편집자의 묘한 경쟁심리가 가감 없이 표출되는데다 중간중간 각 편집자의 속마음 인터뷰를 따로 삽입한 이 영상은 마치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것만 같다. 실제로 진행해야만 하는 회의일 텐데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그렇게 웃다보면 자연스럽게 민음사가 곧 펴낸다는 책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인지 알게 된다.

출판사 민음사가 운영하는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은 대개 이런 식이다. 일단 재밌다. 웃음이 나온다. 편집자, 마케터 등 영상에 출연하는 민음사 직원들에게 왠지 친근감이 생긴다. (실제로 댓글창을 보면 ‘아란 부장님과 편집자분들 너무 좋아요’라는 댓글이 다수다.) 영상을 다 보고 나면, 어쩐지 책이 사고 싶어진다.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 부장의 ‘신년 목표 세우기’ 영상. <민음사TV> 갈무리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 부장의 ‘신년 목표 세우기’ 영상. <민음사TV> 갈무리

‘말줄임표’ 영상 시리즈에 출연한 민음사 한국문학팀 정기현(왼쪽), 김화진 편집자. <민음사TV> 갈무리

‘말줄임표’ 영상 시리즈에 출연한 민음사 한국문학팀 정기현(왼쪽), 김화진 편집자. <민음사TV> 갈무리

재미가 먼저, 광고는 나중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은 2019년 시작한 지 약 3년 만에 10만 구독자 달성(2022년 4월7일 기준 9만8600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출판사 유튜브로는 이례적인 인기다. 다른 출판사에 견줘 뒤늦게 유튜브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 놀라운 성취다.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 중 오래 운영해온 회사 이름을 이렇게 전면에 내건 것은 흔치 않다. 이렇다보니 최근엔 출판계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도 “유튜브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팁 좀 알려달라”는 문의가 빗발친다고. ‘이문열’과 ‘세계문학전집’으로 표상돼온 민음사가 요즘엔 이 유튜브 채널 덕에 “가장 젊고 트렌디한 출판사”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한정돼 있다’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 언제나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란 말을 경구처럼 새겨온 출판계에서 발생한 이 ‘돌풍’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유튜브 채널을 담당하며 기획, 운영을 해온 조아란(36) 민음사 마케팅부 부장을 4월1일 서울 강남출판문화센터 민음사 유튜브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재밌는 걸 해야 한다, 일단 사람을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채널을 론칭할 때 마케팅 부서에서 세운 큰 틀은 ‘재미’다. 회사에 “책 광고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 부장은 “(기존 SNS 채널처럼) 책을 소개하거나 아카이빙하는 채널은 의미는 있지만 파급력을 가진 포맷은 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작가 인터뷰를 하거나 신간을 소개하는, ‘출판사라면 누구든 할 수 있고 이미 모두가 해오던’ 콘텐츠를 반복한다면 굳이 인력과 예산을 투자해 새로운 채널을 시작할 이유가 없었다.

“아예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투자할 기회를 준다면 (유튜브 채널을) 새로 기획해서 시작해보겠다고 했어요. 다행히 (회사에서) 그 방향성에 동의해줬고, 지금도 방향 등에 대해선 회사의 관여가 전혀 없어요.”

실제로 이 채널에서 10만 회 이상 조회 수를 얻은 인기 동영상을 살펴보면 △3년째 똑같은 도시락 먹는 마케터의 회사생활 정착템과 책 추천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작품 세계 이해하기 △민음사 천재 디자이너와 함께 북 디자인 A to Z △12년차 직장인이 출근하자마자 하는 것 5가지 △마케터 & 에디터가 추천하는 직장인 삶의 질 상승템 6가지 △힙스터 편집자는 책상을 어떻게 꾸밀까 등이다.

민음사 직원들이 출연하고 민음사를 배경으로 촬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대부분 콘텐츠에 책을 곁들이게 되지만 “책은 소중하고 가치 있으니 꼭 사라”는 식의 고루한 메시지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먼저 고민했기에 가능했던 시도다.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 부장은 같은 팀 성연주 마케터와 함께 2019년부터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을 꾸려오고 있다. 조 부장은 “무게를 내려놓고 구독자와 쉽고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 부장은 같은 팀 성연주 마케터와 함께 2019년부터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을 꾸려오고 있다. 조 부장은 “무게를 내려놓고 구독자와 쉽고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좋아하는 채널의 이유를 찾아보니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채널은 ‘어떻게 하면 책을 알릴까’에서 시작했다면, 유튜브는 ‘재밌는 채널’을 만들어보자는 데서 시작했어요. 일단 재밌어서 봤더니 ‘알고 보니 민음사가 하는 거였네? 책 소개도 하네?’ 이런 정도의 포맷으로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제가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채널이 뭔지 생각해보면 결국 (그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의 매력이 드러나는 것이더라고요. 영상의 질은 좀 조악하더라도 오히려 사람의 매력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저희 채널도 (유튜브의) ‘얼굴’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죠.”

그렇게 처음 출연한 이들이 민음사 한국문학팀의 김화진·정기현 편집자다. 이들이 진행한 ‘말줄임표’ 영상 시리즈는 ‘한국문학 교양예능’을 표방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두 편집자는 교과서 속 문학작품을 리뷰해본다거나 조대한 평론가와 함께 추억의 베스트셀러를 돌아보는 ‘문학 탑골공원’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하고, 편집자 개인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를 촬영하거나 각자의 가방과 책상에 어떤 물품이 있는지 소개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조 부장은 “출판사 편 <무한도전>을 찍는 것처럼 이것저것 도전했다”며 인기 요인으로 “김화진, 정기현 두 편집자의 케미스트리(화학반응, 사람 사이의 호흡, 조화를 가리키기도 함)가 잘 맞은 점”을 꼽았다. 본업을 하면서 유튜브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출연료도 반드시 예산에 포함했다고. 두 편집자를 시작으로 다양한 직원이 출연했는데, 이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지속가능한 동력을 얻기 위해선 필수 요소라고 봤다.

유튜브 생태계를 가장 잘 아는 피디(PD)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반영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3명의 외주 PD가 촬영, 편집, 기획까지 ‘멀티’로 일해요. 이들이 개개인의 캐릭터를 잘 이끌어내기도 해서 영상을 통해 좋은 점이 잘 부각되는 것 같아요.”

민음사는 기존에도 ‘동네서점 에디션’ ‘쏜살문고’ ‘워터 프루프 북’을 내는 등 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전히 ‘책’을 중심에 두고 이뤄진 시도였다는 것. 유튜브는 조금 다르다. <민음사TV> 유튜브 채널은 책을 1년에 수십 권 구매하고 읽는 골수 독자가 아니더라도 책에 관심 있는 이들을 느슨하게 연결해주는 일종의 커뮤니티 구실을 한다. 콘텐츠를 파는 회사는 궁극적으로 “콘텐츠 판매에서 커뮤니티 구축으로 옮겨가고, 커뮤니티를 구축한 다음에는 콘텐츠와 커뮤니티 사이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2021년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이란 말처럼 <민음사TV> 구독자라는 커뮤니티가 기존 독자와 대중 사이에 자리하게 된 셈이다.

<민음사TV> 채널 메인 화면. <민음사TV> 갈무리

<민음사TV> 채널 메인 화면. <민음사TV> 갈무리

기본 ‘좋은 책’ 위에 얹어야 할 ‘고민’

예컨대 민음사 직원들이 자신의 ‘인생 곡선’을 그리며 개인사를 털어놓는 영상은 책과는 큰 관련이 없다. 하지만 구독자와의 끈끈한 유대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직장인으로서 회사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아이템을 소개하거나,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하울’(대량 구매), ‘언박싱’(쇼핑한 물품을 공개하는 일) 영상을 본떠 ‘문화생활비 언박싱’ 영상 시리즈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구독자를 당장의 책 구매로 이끈다기보다 민음사와의 느슨한 연결고리를 만들려는 시도다. 조 부장은 유튜브에서 “(구독자가) 책과 관련한 꿈과 로망, 즉 무형의 자산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선배 세대만 해도 ‘좋은 책은 결국 팔린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하지만 좋은 책을 만드는 건 ‘기본’으로 깔고 이제는 그 이상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13년차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데, 입사 초기에 오프라인의 중·대형 서점들이 망하는 걸 눈으로 직접 봤거든요. 특히 오래된 지역 서점들이 망해서 직접 책을 빼러 가는 일도 있었고요. (그런 경험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독자가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3040 여성이 책 구매를 많이 하는데, 지금 1020세대가 30대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오늘부터 책을 사볼까’ 그러진 않잖아요. 사실 책 외에 재밌는 것도, 즐길 것도 너무 많고요. 그러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책과 관련한 크고 작은 노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구매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책에 관한 ‘로망’을 하나 남겨주고 싶어요. 예컨대 ‘나중에 독립해서 세계문학전집을 모아볼까?’ 이런 것처럼요.”

10만 구독자 이벤트는

<민음사TV>의 이런 시도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구독자의 80%는 여성이다. 연령대를 살펴보면 절반은 25∼34살이고, 30%가 18∼24살이다. 통상 20대 후반부터 3040 여성은 이미 출판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지갑을 여는 독자층’으로 자리잡았지만 10대 후반으로부터도 열렬한 반응이 올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다른 SNS 채널보다 젊은 색깔을 띠다보니 18∼24살 구독자가 많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반응을 보면 ‘화진, 기현 편집자님 너무 좋아요’ ‘언니들 멋있어요’ ‘저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국문과 가고 싶어요’ 이런 댓글이 달려 놀랐어요.”

조 부장은 앞으로도 책과 관련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재밌는 시도를 하고 싶다고 한다. “‘책’ 하면 어렵고 재미없고 나랑 상관없고 공부해야 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깰 수 있는 시도를 해 연결고리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해요. 다른 공산품과 달리 책은 엄청 권위가 있고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전에 담긴 명문장 365개를 뽑아 만든 <인생일력> 시리즈처럼 책이 다양한 형태로 독자 앞에 놓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민음사TV> 채널이 자리잡으면서 다양한 코너가 만들어지고 구독자와의 소통도 점차 늘고 있다. 최근엔 한 달치 편성표를 미리 만들어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영상을 공개한다. 10만 구독자를 달성하면 어떤 이벤트를 할 건지 슬쩍 물었다. “구독자를 직접 초청할까 생각하고 있어요”란 귀띔이 돌아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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