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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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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진실일 수 없는 마음으로 가는 학교

2주간 종일 침대에 누워 있은 뒤 생긴, 마음이 부풀어오르는 일
등록 2021-11-14 15:03 수정 2021-11-15 02:42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일러스트레이션 제천간디학교 이담

이제는 잠을 꽤 잘 잔다. 비록 그것이 약 덕분이긴 하지만, 몇 시간이고 밤의 미로를 헤매지 않는다.

10월22일 금요일 밤에 응급실에 다녀왔다. 그 전날, 아니 사실 몇 주 전부터 아주 아팠다. 흉통이 심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기진맥진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갈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걸 알아도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은 그보다 더 많았다. 시험기간에 무리해서인지 통증이 절정에 이르렀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2주 정도를 꼬박 회복에 쓴 것 같다.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날 수 없어, 모두가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조용히 등교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종일 침대에서만 지냈다. 몸이 얼마나 쇠약해졌냐면, 엄마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5분짜리 하체 스트레칭을 시켰을 때 엎어져 울었다. 하기 싫어, 라고. 운동하기 싫었던 마음도 마음이지만, 무릎이 땅에 닿을 때마다 부은 관절이 너무 아팠다. 몸을 꺾고 늘여야 할 때는 어딘가 잘못된 것처럼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손끝까지 힘이 없었고 주로 누워 있었다. 사실은 학교에 나가지 않을수록, 집에 누워만 있을수록, 미뤄야 하는 일이 많아서 막막해졌기 때문에 울었다. 친구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아파서 계속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아파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제나 나를 주저앉히는 것이 내 욕심이라도, 왜 나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가 하고 낙담스러워진다.

학교에 나가지 않는 동안 학교에 생길 내 빈자리를 생각했다. 원래 스물한 명이 들어야 할 동아시아사 수업은 스무 명이 들을 것이다. 다른 이유로 빠지는 친구가 한두 명 더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자리에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퍼즐 조각이 아니라서 빈칸이 생기더라도 다른 존재로 그곳이 메워져 있다. 곧 메워진다. 그 틈새로도 누군가 자리에 없다고 알아차리는 건 그 사람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필요하지 않은 이상, 아무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필요’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한다. 수업이나 과제를 함께 해야 하는데 일손이 모자란 것만이 필요일까? 옆자리에 없는데 떠올리는 건 필요하기 때문일까? 사람을 필요로만 사귀면 안 된다고들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없으면 나를 욕심내도록. 의외로, 예상치 못하게, 많은 친구가 내가 없는 자리를 알아차렸다. 문자를 보냈다. ‘왜 안 나왔어, 많이 아파? 푹 쉬어’, 하고. 수업을 녹음해서 보내주고, 필기를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다. 할 수 있는 말이 도저히 없을 만큼 마음이 부풀어올랐을 때, 이 감정이 바로 ‘고마움’이라고 새삼 알았다. ‘친구’라는 말이 개별의 소중함을 뭉뚱그리는 것 같아 슬프다. 한명 한명 이름을 나열하고 싶은 내 친구들.

1학기 말 상담할 때 담임선생님이 ‘네가 졸업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눈물 많은 나는 또 조금 울었다. 살아남듯이 학교에 다녔다. 날갯짓을 멈추어도, 태양 가까이 날아도 죽는 이카로스처럼 날아야만 했다. 그러는 중에도 내가 날고 있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도 했다. 그 고단한 여정을 혼자서만 간직한다고 그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람이 알아줬을 때는 미처 잡지 않아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마음이 새어나간다. 날 알아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나는 행운아임이 틀림없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졸업할 때 무슨 말을 할지 가끔 상상한다. 누군가 나에게 마이크를 주고, 나는 이보다 더 진심일 수 없는 마음으로 내가 덕분에 학교를 다녔다고 말한다. 너희 덕분에, 여러분 덕분에, 당신 덕분에. 당신이 한결같음으로 나를 보아주었으므로.

신채윤 고2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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