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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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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나만을 위한 시간

긴긴 겨울밤 책읽기 특별 작전, 작전 수행 중 아이들의 생떼에 뜨개질에도 맛들이다
등록 2021-11-07 06:27 수정 2021-11-08 22:26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겨울은 밤이 길어 책을 읽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낮에는 여러 일로 마음 놓고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1980년 겨울 책읽기 특별 작전을 세웠습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 나 혼자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다행히도 나는 초저녁잠이 많아서 초저녁에 한잠 자고 나면 밤을 새워도 괜찮습니다. 반대로 남편은 새벽잠이 많아서 내가 저녁에 자고 일어나 밤새워도 알지 못하고 잡니다. 혹시나 깨면 남편은 “안 자고 뭐 해?” 합니다. 나는 “응, 조금만 더 읽고 잘게” 합니다. 그 겨울 <이민> <가시나무새> <카인과 아벨> <빙점> <양치는 언덕>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습니다. 하루라도 안 읽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책을 읽었습니다.

원하던 책을 꽉 채워놓고 살게 되다니

어린 날 어쩌다 책 한 권 생기면 책 속에 푹 빠져 살다가 몇 장 안 남으면 책을 덮었습니다. 현실이 아닌 책 속의 인물과 함께 울고 웃으며 희로애락을 같이했습니다. 이 책을 마저 읽으면 언제 또 책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책 속 세계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하다가 다들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으면 석유 닳는다고 빨리 불 끄고 자라고 어른들은 성화를 부렸습니다.

언제는 한꺼번에 책이 여러 권 생긴 일이 있었습니다. 책이 궁금해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불 속에 등잔불을 넣고 책을 읽었습니다. 안 자고 책을 읽었는데 사흘째 밤 새벽에 이불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가서 아버지한테 들켰습니다. 생전 욕을 안 하시던 아버지가 “저놈의 간나 호랑이가 물어 가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그렇게 못되고 무서운 짓을 할 수 있냐고 하셨습니다. 이불 속에 등잔불을 넣고 깜빡 졸기라도 해서 이불에 불이 붙으면 너만 죽겠냐고 하셨습니다. 온 가족 다 죽이고 집도 불태우고 집안 망하게 할 년이라고 크게 소리소리 치셨습니다.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시던 할머니도 편들어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숨어서 많이 울었습니다. 나는 재미난 책만 있으면 절대 졸 리 없는데 아버지가 야속했습니다.

살다보니 그렇게 원하던 책을 집에 하나 꽉 채워놓고 살게 되었습니다. 재미난 책이 너무 많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끝없이 많은 책이 있습니다. 밤새워 책을 읽었습니다. 석유 아낄 일도 없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습니다.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를 읽기 시작해 세 권째를 읽던 날입니다. 아들이 “엄마 나도 손으로 뜬 옷을 입고 싶어”라고 합니다. 나는 뜨개질할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체질상 가만히 앉아 조용히 하는 일을 못합니다. 가만히 앉아 수놓거나 바느질하면 속에 천불이 활활 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사랑이 모자라서…”

며칠 있다 아들은 또 손으로 뜬 옷이 입고 싶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뜨개방을 하는 아들 친구는 별나게도 예쁜 뜨개옷을 많이 입고 다닙니다. 엄마들은 뜨개방에 모여 앉아 아들딸의 옷을 너도나도 많이 떠서 입혔습니다. 손뜨개옷을 안 입은 아이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나는 낮에 서점 일을 해야 하고 밤에는 책도 읽어야 하고 네가 보다시피 살림도 하고 너무 바빠서 뜨개질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정 입고 싶다면 뜨개방 선생님께 부탁해서 하나 떠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엄마가 사랑이 모자라서 그렇지 남의 엄마들은 다 하는 일을 못할 리 없다”고 했습니다.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아들한테 사랑이 모자란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읽던 책을 덮어놓고 뜨개질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뜨개방에 가서 대바늘도 사고 코바늘도 샀습니다. 귀가 크고 굵은 돗바늘도 샀습니다. 게이지(일정한 면적 안에 들어가는 코와 단의 수)를 내어 적을 수첩도 샀습니다. 실을 사서 선생님이 코를 잡아주고 하라는 대로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무늬까지 넣어서 잘하는데 나는 쉽지 않았습니다. 무릎 위에 실을 올려놓고 뜨다보면 손이 점점 올라가 눈앞까지 쳐들고 뜹니다. 뜨고 봐도 실땀이 고르지 않고 넓은 데도 있고 좁은 데도 있습니다. 코가 빠진 줄도 모르고 한참을 떴습니다. 뜨개방 선생님은 재주도 좋지만 맘씨도 좋았습니다. 코를 빠뜨리고 몇 단 안 떴으면 코바늘로 끌어올려 다시 해주었습니다. 밤에도 자지 않고 뜨개질합니다. 잘할 줄 몰라서 아는 데까지만 뜨고 책을 읽습니다.

코를 줄이고 늘리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뜨개방을 왔다 갔다 뛰어다니면서 15일 만에 아들 티셔츠를 완성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입는 아들도 좋아하고 나도 뿌듯했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살가죽처럼 옷 갈아입을 생각을 안 합니다. 딸들은 오빠만 떠주고 자기네는 왜 안 떠주냐고 했습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엄마가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잘도 합니다. 차별한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밤새워 큰딸 셔츠를 뜹니다. 안 해보던 일이어서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인데도 온몸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두 번 뜨고 세 번 뜨니까 솜씨가 늘어서 훨씬 뜨기도 수월하고 옷 모양도 더 예쁘게 나왔습니다. 남편만 빼놓을 수 없어서 남편 티도 하나 떴습니다.

식구 돌보느라 가질 수 없었던 시간

그렇게 못할 것 같던 뜨개질이 자꾸 하니 가속이 붙었습니다. 뜨개질도 은근히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옷 하나를 뜨기 시작하면 다 완성될 때까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무늬도 넣어서 뜰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는 ‘날라리 단’(한코고무뜨기단)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에게 옷 한 가지씩 다 떠서 입히고 나는 무늬를 넣어서 걸치기 좋게 길쭉한 조끼를 떠 입었습니다. 열두 번째는 남편의 스웨터를 무늬 넣어서 떴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책읽기 특별 작전 시간을 지켜냈습니다. 일부러 3권, 5권, 10권짜리 긴 시리즈 책을 골라 읽었습니다. 그렇게 한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책을 수십 권 읽었고, 혼자서 어려운 게이지도 내서 선생님 지도 없이 직접 디자인해 옷을 뜨게 됐습니다. 어린 날부터 식구들 돌보느라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본 적 없었습니다. 그해 겨울 나만을 위한 밤들을 보내고 나니 늘 허전했던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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