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 수지에 사는 정 권사님이 경기도 남양주 마석에 있는 친구 김 장로님 내외를 초대해 나에게 소개해준다고 오라 합니다. 정 권사님은 일부러 휘슬러 냄비에 많은 음식을 장만해 한 상 가득 차렸습니다. 정 권사님과 남편 장로님은 무슨 친척 어른같이 나를 걱정해주셨습니다. 잘 먹고 다니느냐,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하셨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한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냄비 자랑을 하셨습니다. 전 강사한테 샀는데 남편이 신학생이라고 하니, 김 장로님네도 장한 일을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소개받고 마석 김 장로님네로 요리강습을 갔습니다. 마석도 수지처럼 한센병 환자 정착촌이었기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갔습니다. 주최 쪽인 김 장로님네 외에는 별로 반응이 없었습니다. 김 장로님네도 많이 팔릴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왜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워합니다. 김 장로님네는 강습이 끝나고 게장도 꺼내고 아껴뒀던 굴비를 구워서 점심 한 상을 차려줬습니다. 김 장로님네는 여기서는 안 되겠다고, 인천 만수동도 우리 같은 마을이라고, 친구 장로님네 주소를 주면서 찾아가보라고 했습니다.
바이오 김치통 여섯 개짜리 세트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주소를 들고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김 장로님네 소개로 왔다고 이야기하면서 김치통 세트를 써보시라고 드렸습니다. 무척 반가워하며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연락이 없어 전화하니 조금 더 있어보랍니다. 처음 찾아간 게 한여름이었는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데도 강습하겠다는 연락이 없습니다. 만수동까지 또 찾아갔습니다. 친구 장로님네는 아주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얘기해봤는데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고 아무도 안 산다고 한답니다. “사람들 모아서 장소만 한번 제공해주시면 팔고 못 팔고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글쎄, 여기서는 안 된다는데~ 되지도 않을 일을 왜 해요. 우리는 못해요”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도 강습해주신다고 해서 김치통 세트를 드렸는데요” 하니, 반찬이 든 통을 비우면서 누가 선물을 달라 했느냐고 도로 가져가라고 합니다.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김치통은 많이 써서 김치물이 들었고, 험하게 써서 한쪽이 깨진 것도 있었습니다. 너무 경우 없는 행동을 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말도 못하고 그냥 돌아서 나왔습니다.
웬만하면 일을 그만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남편이 사업을 접고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별 재주도 없는 내가 집안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막상 모든 경제를 내가 담당해야 하니 밤이면 전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니 눈 뜨면 돈 쓸 일이 왜 그리도 많은지 남의 돈이고 내 돈이고 손에만 들어오면 안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일할 때 현찰이 생기면 그때그때 썼습니다. 월말이 가까워지면 마감을 어떻게 하나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들어오는 돈을 그러모아서 막았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기훈이네로그날도 고민고민하면서 강원도 춘천 기훈이네로 강습을 갔습니다. 춘천 기훈이 엄마는 영월에 살 때 뜨개방을 하면서 이웃으로 같이 살았습니다. 기훈이와 우리 아들이 같은 반이어서 서로 네니 내니 하면서 말을 놓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알고 보니 기훈이 엄마는 우리 큰오빠 친구 부인이었습니다. 모르고 결례를 범했다고 많이 미안해하면서 기훈이 엄마가 만류하는데도 존댓말을 썼습니다. 큰오빠 친구가 춘천으로 발령이 나서 기훈이네가 이사를 했습니다. 춘천으로 가서도 여전히 뜨개방을 하고 살았습니다. 아파트 상가에서 날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해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가르쳐줍니다.
뜨개방에 오는 사람마다 편하게 때가 되면 같이 밥을 먹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별식을 해옵니다. 사람이 좋다보니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물건을 팔아달라 부탁해서 뜨개방 안이 무슨 잡화상 같습니다. 물건 판 돈은 고추 값, 양말 값, 참깨 값, 단추 값이라고 쓰인 작은 상자에 넣어둡니다.
파는 것 중 단추는 내 회사 동료인 한 강사님이 아는 사람이 단추공장을 하다가 그만뒀는데, 재고를 얻어다 뜨개방에 맡긴 것입니다. 거저 얻은 것이니 싸게 팔아서 전 강사가 오면 돈을 주라고 했답니다. 기훈이 엄마는 긍정적이어서 만나면 힘이 나는 사람입니다. 나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려울 때 기훈이네 집으로 강습을 갔습니다. 갈 때마다 기훈이 엄마는 생각지도 않은 꽤 많은 돈을 단추 판 돈이라며 여러 번 건네줬습니다.
하루는 잠을 못 자고 근심이 태산 같은 날 기훈이네로 강습을 갔습니다. 열심히 강습했습니다. 강습이 끝나고 주문을 받아야 하는 순간입니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잘 보이질 않습니다. 큰일이 난 것 같습니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벽을 짚으면서 더듬더듬 약방을 찾아갔습니다.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물청심을 달라고 했습니다. 알약도 받아먹고 한참 앉아 있으니 눈이 밝아졌습니다.
기훈이 엄마는 내가 나가자 재빠르게 커피도 타고 빵과 과자를 내놓았습니다. 냉동실에 있던 떡도 쪄서 내놓았습니다. 이것저것 먹느라고 다들 즐겁습니다. 내가 들어왔을 때 아무도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나는 눈이 안 보였던 사실을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많은 주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리며 살았습니다.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는 시골 깡촌 사람이 서울에서 살기에는 많이 벅찬 세월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목표가 있어 꼭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할인하면서 야박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내가 너무 초라하고 못난 듯해 좌절하다가도 좋은 사람들의 격려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어 용기 내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내세울 것 없는 나의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지면을 주신 <한겨레21>에 감사드립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세일즈우먼의 기쁨과 슬픔: 1945년생 작가가 많은 것을 사고팔며 살아온 세월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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