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라빵은 삼립에서 만든 가정배달용 빵이었습니다. 그동안은 가게에서 삼립빵을 사먹고 살았습니다. 신데라빵은 맛은 제과점 수준인데 가격이 싸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서울 지역에서도 강동구 고덕동 시영아파트가 판매 1위라고 했습니다.
고덕 시영에서는 강원도 속초 사람 자매가 신데라빵을 팔았습니다. 자매가 어찌나 수단이 좋고 말솜씨가 좋은지 엄청나게 많이 팔았습니다. 자매 중 동생은 결혼해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동생은 남편이 자영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굳이 빵 장사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찌하다가 빵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고소득이라 소개받고 맡아 하게 됐답니다. 처음에는 많이 팔리니 신나서 몇 달은 했는데 동생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습니다.
언니가 혼자 맡아 하게 됐습니다. 언니는 당시 서른일곱인데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언니를 ‘신데라 아줌마’라 불렀습니다. 신데라 아줌마는 사람이 아주 시원시원하고 좋았습니다. 신데라 아줌마는 스스럼없이 아무 사람이나 보고 “아줌마, 나 중매 좀 해줘” 했습니다. 사람들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렸습니다. 나보고는 아줌마가 중매해주면 신데라빵을 넘겨주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장가 안 간 남편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사십으로 적당하고 직업도 중학교 선생님이어서 정말 중매하려고 했습니다. 신데라 아줌마는 키가 큰데 남편 친구는 그보다 작았습니다. 결국 중매하지 못했습니다.
사람 좋은 신데라 아줌마는 정말 시집가게 됐습니다. 집도 있고 직업도 괜찮은 마흔일곱 노총각을 만났다고 합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신데라빵을 그만두게 된 신데라 아줌마는 같은 강원도 사람이라고 나에게 하라고 넘겼습니다.
신데라빵을 맡은 건 좋은 일이지만 그때 마침 발목을 삐어서 거동이 한창 불편했습니다. 아파트 3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왼쪽 엄지발가락에 체중이 실리며 주저앉았는데 병원에도 가고 침을 맞아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나한테 돌아올 확률은 없었습니다. 신데라빵은 아주 잘돼서 일을 맡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전임 신데라 아줌마가 얘기를 잘해 줘서 나는 신데라 빵 회사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눈이 허옇게 쌓인 겨울 절름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빵 배달을 하였습니다.
내일 팔 빵은 오늘 오전 중에 주문이 들어가야 합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자기 물건을 체크해놓고 오면 차가 빵을 실어다 아파트 단지 길가에 내려놓고 갔습니다. 원래는 방문판매를 해야 하는데, 길거리에서 팔거나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했습니다. 사람들은 일부러 와서 빵을 사갔습니다. 6학년인 아들이 같이 배달해주었습니다. 대학생인 막내 시누이가 와서 같이 배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빵상자가 두 줄로 내 키가 넘도록 빵을 받아도 다 팔렸습니다. 하루에 외상을 빼고도 현찰이 30만원 이상 들어왔습니다. 늦가을에 삔 다리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낫지 않았습니다. 나는 점점 더 다리를 절게 돼갔습니다. 그래도 그러다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을 계속했습니다.
잘생긴 출구 골목에서 어울려 살며고덕 시영은 출구가 아주 잘생긴 동네였습니다.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정문 쪽 출구를 지나야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길목 좋은 곳에 아주 자리를 잡았습니다. 옆에는 달걀장수 할머니가 달걀을 쌓아놓고 팔고 아들이 배달을 했습니다. 우유배달원도 우유가 남으면 옆에서 팔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작은 노점을 차려 장사했습니다. 아파트 입구가 작은 시장이 됐습니다.
많은 장수가 좁은 길목에서 잘 어울려 살았습니다. 여름이 되었습니다. 연세우유 아줌마가 스티로폼 상자에 얼음을 하나 담아서 나옵니다. 삼육우유 청년이든 훼미리주스 하는 50대 부부든 누구든 길목에서 장사하다가 목마르면 마음대로 시원한 얼음물을 먹었습니다. 얼음이 다 녹으면 동네 사람들이 얼음을 갖다넣었습니다. 온종일 얼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달걀 할머니는 슬그머니 가서 금이 간 달걀을 따끈따끈하게 프라이를 해서 냉면 대접에 가득 차게 담아놓습니다. 아무나 먹고 싶은 사람은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제비를 끓이면 한 대접 갖다줬습니다. 젊은 새댁이 칼국수를 끓여 갖다주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고 같이 먹었습니다.
잘 돌아다닐 수가 없어 잘 아는 사람을 하나 채용해서 배달을 시켰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일을 같이 했는데 항상 마감할 때는 외상을 제하고도 판 것보다 돈이 모자랐습니다. 몇몇 손님은 갖다 먹기만 하고 돈 내는 법이 없어서 절름거리며 돈을 받으러 갔습니다. 한참을 띵동거려도 기척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왔으니 “계세요? 계세요?” 하며 문을 쾅쾅 두드려봤습니다. 그제야 아줌마가 나오더니 너희 배달원이 다 받아 갔는데 무슨 돈을 달라 하느냐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같은 동에 사는 마음씨 좋고 착한 아줌마가 있었습니다. 빵도 많이 팔아주고 반찬도 갖다주고 갖은 친절을 다하는 아줌마였습니다. 혼자 하기 힘든데 자기가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같이 일을 시작한 아줌마는 빵을 팔아보더니 엄청 좋아했습니다. 자기 평생에 이렇게 현찰을 많이 만져보는 게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한 열흘을 같이 장사했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나를 부르더니 그 아줌마에게 빵 장사를 넘기라고 했습니다. 아줌마가 회사에 가서 신데라 아줌마가 많이 아프니 자기한테 맡겨달라고 했답니다. 나는 그렇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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