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사는 제주도에서 온 쌍둥이 엄마는 제주도로 요리강습을 한번 가자고 나만 보면 졸랐습니다. 자기네 친정과 시댁이 제주 서귀포랍니다. 쌍둥이 아버지는 건설업자인데 일이 별로 없는 겨울에는 제주도에 가서 친정집과 시집을 오가며 한동안 살다 온답니다. 겨울에 자기네 한가할 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제주도까지 강습 가기는 엄두가 나지 않아 말로만 그러지 하며 미뤘습니다.
1992년 1월 초 많이 추운 겨울날, 제주도 강습을 진짜 가게 됐습니다. 막내 시누이가 서귀포 귤농장집으로 시집가게 됐습니다. 시누이 결혼식 9일 전에 남편과 나는 아이들만 남겨둔 채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남편 차에 실습기와 냄비세트를 싣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다섯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부산은 춥지 않고 열대식물도 볼 수 있고 길을 물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따라오면서 가르쳐줬습니다. 부산에서 저녁을 먹고 페리호에 차를 싣는 게 신기했습니다. 멀미약을 사서 먹고 난생처음 배를 탔습니다. 밤바다를 마음껏 구경하고 싶었지만 속이 매스껍고 울렁거려 눈을 꼭 감고 죽은 듯이 갔습니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한 시간 연착될 거라더니 두 시간이나 연착돼 부두에 닿았습니다.
부두에 내릴 때는 따뜻한 햇살이 찬란하게 비쳤습니다. 아이들만 두고 오는 것도 그렇고 뱃멀미해서 안 좋던 기분은 싹 사라지고 ‘아~아아 길조다’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제주도는 딴 세상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야자수가 가로수였습니다. 하나도 춥지 않고 사람들은 밭에서 감자를 캐고 당근을 뽑고 있었습니다. 서귀포 귤농장이 있는 쌍둥이 엄마네 친정집을 찾아가느라고 길을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수까?” 하더니 세커리 지나 네커리에서 꺾어 가라고 합니다. 잘은 몰라도 방향을 가리키는 걸 보니 삼거리 사거리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쌍둥이네 가족이 무슨 친척이라도 되는 듯 반가워해줬습니다. 제주도 특산인 옥돔을 굽고 점심상을 차려줬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여관방을 잡았습니다. 여관집에서 아침과 저녁 두 끼를 준다고 했습니다. 내일부터 요리강습을 하자고 해서 재료를 준비하러 나섰습니다. 슈퍼를 찾아가는 길에서 감자 캐는 밭을 만나 한 자루 샀습니다. 당근도 사고 파도 사고 재료를 거의 밭에서 샀습니다.
다음날 쌍둥이네 친정집에서 강습하는 중에 할머니가 들어왔습니다. 남인 줄 알았는데 쌍둥이 외할머니가 “어멍 어서 오시오” 했습니다. 강습 도중 할머니는 자기 몫의 약식을 할아방 준다고 들고 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들네 집 사랑채에서 따로 끓여 먹고 살았습니다. 다른 나라도 아닌데 고약한 풍습도 다 있다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주도는 며느리들이 해녀로 살며 물질해야 하고 여러 가지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부모까지 공양하기는 힘들어서, 시부모가 집을 마련할 힘이 없으면 사랑채에서라도 따로 살림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파워의 부녀회장을 만나다강습은 날마다 이어졌습니다. 서귀포만 해도 귤농장을 가진 집이 여럿 있고 모두 다 잘사는 듯 보였습니다. 냄비는 좋지만 우리 농촌에선 소득이 별로 없어 비싼 냄비를 살 수 없다고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강습할 때마다 압력솥 하나, 커터기 하나 이런 식으로 팔렸습니다.
제주도에 온 지 닷새가 지났는데도 아직 제주도 구경을 못하고 강습이 끝나면 여관방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쌍둥이 엄마는 미안해하며 경치 좋은 데가 많으니 이왕 온 김에 많이 구경하고 가라 했습니다. 구경을 목적으로 온 게 아니니 좋은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강습이 끝나면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돌면서 바닷가에 잠깐 내려 서 있다가 들어오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8일째 되는 날입니다. 동네 길을 따라 산을 하나 넘어서 무작정 어느 마을에 갔습니다.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제일 좋은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기웃거렸습니다. 개가 죽어라 컹컹 짖어댔습니다. 중년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더니 알아듣기 힘든 제주말로 개를 한참 야단쳤습니다.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어디서 왔수까?” 합니다. 서울에서 요리강습을 왔다고 했습니다. 냄비 좀 구경해보시고 요리강습 자리를 좀 마련해달라 부탁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런 거는 부녀회장이 잘한다며 우리를 부녀회장 집에 데려다줬습니다.
제주도에서 한 마지막 강습입니다. 부녀회장은 파워가 대단했습니다. 값을 많이 후려치고는 경비가 많이 들었을 테니 현찰로 내겠다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만났던 아주머니와 부녀회장, 총무 세 사람이 한 세트씩 계약금조로 현찰을 냈습니다. 다른 몇몇은 열 세트를 현찰 가격으로 카드 12개월 할부로 달라고 했습니다. 냄비를 다섯 세트 싣고 갔는데, 나이 많은 순으로 먼저 냄비를 가져가고 나머지 여덟 세트는 서울 가서 부쳐주기로 했습니다. 남는 것은 별로 없지만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친척들을 만나면 쓸 경비가 없어서 어떡하나 많이 걱정했는데, 돈이 생겼습니다.
막내 시누이 결혼식 전날 서울에서 부모님과 친척들이 비행기로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가본 결혼식의 음식은 떡이 중심인데 제주도 결혼식은 각종 지짐이가 중심이었습니다. 예식장에서 점심을 먹는데도 신랑 집에서 각종 지짐이를 열다섯 가지 해왔답니다. 맛있는 지짐이가 많았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돈집에서 지짐이를 한 상자 싸주셨습니다.
돌아올 때는 목포로 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멀미가 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선실에는 서울 아들한테 가는 할머니도 있고 딸네 집에 가는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육지 사람 몇 명이 같이 탔습니다. 아들네 집에 간다는 할머니는 해녀인데 자기가 물질한 해물을 발이 잘 안 떨어지도록 짊어지고 갔습니다. 할머니는 육지 사람들한테 소라 몇 알과 문어를 몇 조각씩 나눠줬습니다. 얼마나 맛있는지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났습니다. 우리는 지짐이를 나눠먹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보따리 속에서 사과도 나오고 과자도 나왔습니다. 먹으며 이야기하다보니 금방 목포항에 닿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제주도에 며칠 살았다고 “그랬수까? 안 그랬수까?” 하는 사투리가 입에 붙어 한 6개월은 써먹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세일즈우먼의 기쁨과 슬픔’은 1970년대부터 2000년까지,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문방구에서 방판(방문판매)까지,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 게 두려웠던 새댁이 사람들 앞에서 요리를 시연하고 명함을 돌리며 소개를 통해 냄비를 파는 세일즈우먼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칼럼입니다. 산업역군으로 칭송받은 적 없고,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여러 팔 것을 바꿔가며 하루의 휴일도 없이 집안을 건사해간 세일즈우먼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어머니의 절대적 노동의 시간을 곁에서 지켜본 딸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바랍니다. 간략한 내용과 함께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한겨레21>은 세일즈우먼의 이야기를 모아서, 20세기 여성 노동을 재구성할 예정입니다. 전자우편 anyone@hani.co.kr로 보내주세요. 2022년 8월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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