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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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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공장에서 연 요리강습회

에이전트가 전화 돌려서 성사된 강습회, 기대하지 않고 갔던 산 밑 허름한 공장에서의 반전
등록 2022-04-28 16:52 수정 2022-05-20 01:42
구둘래 제공

구둘래 제공

최 강사와 함께 일하는 에이전트 우종열씨는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놓고 여기저기 전화를 열심히 합니다.

“여보세요. 거기 뭐 하는 곳이에요? 공장이라고요? 요리강습 한번 안 받아보실래요? 점심시간 한 시간 내주시면 맛있는 것을 제공해드릴 테니 점심 걱정 안 하시고 일하시는 데 지장이 없게 해드릴게요” 합니다. “내일 오라고요?” 하더니 나에게 “전 강사, 내일 강습 없으면 내 강습 좀 해줘요” 합니다. “그냥 전화번호부를 보고 전화했는데 많이 시끄러운 것이 무슨 공장 같아서 요리강습 한번 받아보라고 했더니 너무 쉽게 하라고 하네. 기대는 하지 말고 잘 준비해서 해줘” 합니다.

만두피를 만드는 비장의 기술

파트너인 최 강사는 오래전에 약속한 팀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는 부촌이어서 잘하면 대박이 날 거라고 기대가 대단했습니다. 다음날 자기네 강습 가는 길에 나를 어느 산 밑 허름한 비닐하우스 마을에 내려놓았습니다. 가는 길에 내려놓아서 점심시간이 되자면 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곳은 나이 든 여자 6명과 남자 사장님, 남자 종업원 2명 해서 9명이 일하는 양말공장이었습니다. 공장 사람들은 내 실습기 가방을 들여다보고 많이 궁금해했습니다.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냐고 어떤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거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맛있는 거 많이 해드릴게요” 하며 양말 작업 과정을 구경했습니다. 양말은 짜는 건 기계가 하는데 그 밖에 일일이 딱지 붙이고 포장하는 등 대부분 과정은 수작업이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음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공장 한쪽 구석을 치우고 준비하고 있다가 12시 땡 치면 얼른 요리를 시작해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게 무언가 조짐이 좋습니다. 왠지 재료를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더니 예감이 맞으려나봅니다.

강습이 시작되자 먼저 압력솥에 밤·은행·대추를 듬뿍 넣어 약식을 안쳐놓습니다. 한쪽에는 찜기를 올리고 물을 끓입니다. 커터기(분쇄기)에 밀가루와 물을 넣어 돌려 반죽부터 해놓고, 그다음 동태살과 오징어를 갈고 애호박과 당근·표고버섯을 갈아 섞어 넣고 만두소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배고파 죽겠는데 만두를 언제 빚으려 그러느냐고 쭝쭝거립니다. 도마도 없고 밀대도 준비를 안 하고 다니느냐며 도마도 가져오고 밀대 대신 소주병도 가져옵니다. 내게는 만두피를 만드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장의 기술이 있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밀가루 반죽으로 조그맣게 동그라미를 만들어서 10개를 손에 올리고 양쪽 손바닥으로 꾹 누르고 몇 번 쭈물쭈물 돌리니 큼직한 만두피 10개가 금방 만들어집니다. 만두를 빚고 금방 쪄서 약식과 함께 내놓았습니다.

“아이고야… 그거 신기하네. 완전 요술이네” 하며 먹습니다. 만두소 남은 데다 녹말가루 조금 넣고, 커터기에 몇 번 더 돌려 반죽해 짤주머니에 넣고 차가운 기름 냄비에 가위로 잘라 넣고 잠시 끓여 어묵을 만들었습니다. 커다란 냄비 밑에 준비한 채소를 깔고 그 위에 불린 당면을 올리고 맨 위에 시금치를 올린 뒤 물을 약간 넣고 뚜껑을 덮어 김만 올라오면 양념을 넣어 무치니 잡채가 뚝딱 나옵니다.

부자 동네에 갔던 최 강사 팀은

조금 시간이 걸리는 감자조림은 인덕션에 올려놓아 몇 가지 요리를 하는 동안 매콤하게 조려졌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감자조림이 눌어붙는다고 자기네가 저어주겠다고 수다를 떨어서 저으면 죽이 되니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대답하느라 분주합니다. 다들 호응이 좋으니 분위기가 들뜨고 재미가 납니다.

짧은 시간에 미더덕찜과 오징어볶음을 해내고, 마지막에는 프라이팬에 구운 피자와 함께 매콤한 감자조림을 내놨습니다. 요리강습이 끝나자 사람들이 박수 치고 좋은 음식 많이 먹었다고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모든 재료가 다 준비돼 있고 인덕션 하나와 가스불 두 개를 사용하니 음식이 빨리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일 나이 드신 직원이 “사장님요, 나 월급 좀 올려주소. 나두 죽기 전에 이 좋은 냄비 한번 써보고 죽을랍니다” 합니다. 사장님은 사고 싶은 사람은 물건을 다 사자고 했습니다. 좀 싸게 해서 이자 없이 열두 달 할부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싸면 얼마나 싸게 해줘야 할지 에이전트와 의논하고 해주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냄비를 잔뜩 주문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대박이 났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최 강사는 입이 쑥 나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지나 “전 강사, 오늘 대박 났다면서?” 안 좋은 얼굴로 얘기합니다. 자기는 너무 부자 동네에 갔더니 사람들이 이미 냄비를 다 가지고 있어서 허탕을 쳤다고 합니다. 마침 강습을 마치고 들어오는 이 여사와 마주쳤습니다. 이 여사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이 여사는 저녁을 먹으면서 자기네는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고 합니다. 가끔 회사를 옮겨야 경력이 쌓이고 강사 기본급도 받을 수 있고, 또 에이전트와 강사가 한 팀으로 옮기면 선불금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여사가 없는 사무실은 썰렁했습니다. 오래되지 않아 이 여사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 여사 친구네가 주방기구 회사를 차렸는데 사람들이 좋으니 그리로 옮겨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나는 이 여사가 소개하는 곳이니 무조건 가겠다고 했습니다.

송별회를 겸한 월말 회식날

나는 월말 정산이 끝나면 그만두겠다고 회사에 얘기했습니다. 사장은 이제 한창 일할 만한데 왜 그만두냐고 더 하라고 했습니다. 강사 기본급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회사는 사장과 과장, 몇몇 사원이 동향 사람이었습니다. 강습하고 받은 현금을 에이전트가 다 꿀꺽했는데도 자기네 동향 사람이라고 일방적으로 그 사람 편을 들어 억울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는 회사가 여기 하나뿐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말 회식날입니다. 사장님은 특별히 나를 위해 송별회를 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었습니다. 가장 꼬장꼬장하고 회식 때마다 술 한잔 못 먹는다고 시비가 붙던 손 강사는 달려나와 나를 부둥켜안고 꼭 이렇게 내 눈에 눈물을 빼고 가야 하겠냐며 울었습니다. 최 강사는 괜히 자기 때문에 떠나는 것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다들 술이 거나하게 취하니 누구나 선한 사람으로 변해서 많이 섭섭해하는 이별을 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내가 사랑한 동물들> 저자

*세일즈우먼의 기쁨과 슬픔: 1945년생 작가가 많은 것을 사고팔며 살아온 세월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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