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한 분이 책장 앞에서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꺼내더니 말한다.
“제가 서점에서 처음 사본 책이에요.”
온라인 서점에서만 책을 사다가 최근에야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해,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산 책은 처음이란다. 요즘 청춘은 태어나면서부터 온라인과 가까웠다. 오프라인 대형서점은 멀었을 테고.
동네서점 부활 1세대라 불리는 서울 홍익대 앞 땡스북스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이후 하나씩 하나씩 더 생겨나더니 연남, 합정, 망원에서는 골목길을 돌아서면 서점 하나를 만날 정도가 됐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전에는 동네서점 투어가 열풍이었다. 동네서점은 도심에 산소를 공급하는 작은 숲이라거나 문화계 모세혈관이라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다. 공공기관들은 서점 투어를 기획하고 행사 예산을 지원했다. 동네서점을 방문하고 인증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지역에서 서울의 작은 서점을 보러 오는 사람도 늘었다. 제주에서 왔어요, 저는 전주요, 저는 경주요. 제주에는 140개 넘는 서점이 있다고 들었다. 계속 늘고 있다. 책 좋아하는 지인들은 제주로 서점 투어를 나섰다. 전주는 일찍부터 동네서점 문화가 잘 자리잡았다. 서로 협력해 전주책방문화지도도 만들고 페어도 연다. 경주에는 책을 약봉투에 넣어 이름을 적어주는 곳이 있는데 하도 손님이 많아 자주 책이 동난다. <꿀벌과 천둥>을 들고 환하게 웃던 손님도 책방 열풍 덕에 오프라인 서점에 발을 들이게 된 모양이다. 한 번 들어가보니 신기하고, 두 번 가보니 좋았을까. 문 열면 책 내음이 퍼지고 음악은 은은하고 조도는 나직하다. 책방 주인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인다. 재미나서 다른 서점도 가보고 책도 사고 하다가 재미 붙이는 사람이 꽤 됐다. 맛집도 아닌 서점 입구에 ‘Sold out’(다 팔림) 표지가 내걸리던 꿈결 같은 날들은, 그러나 짧았다.
팬데믹은 오프라인의 위기였다. 하루 종일 책 한 권 못 팔았다는 책방 주인들의 글이 올라왔다. 우리 서점은 미리 온라인 상점을 구축한 덕분에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온라인 대형서점은 어떨까 했는데 한 서점이 한 해 동안 1천억원이나 매출이 올랐다는 기사를 보고 무릎이 꺾였다. 2년은 열풍이 지나가고 추억을 망각하고 습관을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던 즐거움을 독자는 그리워하고 있을까. 팬데믹 시기에 더욱 빨라진 온라인 서점 배송과 인공지능(AI) 추천에 길들여지지는 않았을까. 편리를 정서가 이길 수 있을까.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시대가 온단다. 이미 거리에 사람이 늘고 주말 매출이 올랐지만 걱정 많은 서점 주인은 모처럼의 외출이 즐거운 한두 달 너머가 고민이다. 이동과 모임이 당연해진 뒤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책도 읽고 유튜브도 뒤지며 마음이 바쁘던 중에 흥미로운 팁을 얻었다. ‘관심 분야만 팔로잉하는 계정을 따로 만든 다음, 하루 한두 번 들여다보면 업계 흐름을 읽을 수 있어요’란다. 당장 해봤다.
서점과 출판사를 두셋 팔로잉하니 추천계정이 우르르 뜬다. 서점 100개를 팔로잉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안심이다. 골목골목에 동네서점이 자리잡고 있으니 적어도 잊히지는 않겠다. 작은 나무들은 촘촘하게 자라며 서로 뿌리를 잡아주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도 뿌리째 뽑히지 않는다. 같이 잘하면 된다. 한 책방에 들렀다 재미나서 또 다른 곳에 가고 또 가고 하다가 책방 가는 일이 습관이 된다면 든든하겠다. 촘촘하게 자리잡고, 각자 서로 다른 매력으로 빛나는 세상을 그려본다. 꿈같다 하겠지만 일단은 안심이 된다.
글·사진 정현주 서점 리스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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